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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쏟아지니 제대로 산행을 할 수도 없고

미륵리 사지 석불입상 앞에 모인 우리 회원들
 미륵리 사지 석불입상 앞에 모인 우리 회원들
ⓒ 김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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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 월악산 국립공원에 있는 박쥐봉을 산행하기 위해 모였다. 수안보에서 미륵리로 넘어가는 고개인 지릅재에서 출발, 박쥐봉 정상에 오른 다음 만수골 휴게소로 내려올 예정이었다. 그런데 비가 많이 와 산길이 미끄러울 수 있으니 박쥐봉 산행은 포기한다. 그 대안으로 우리는 어디를 갈까 논의를 한다.

나는 미륵리 사지의 문화유산을 보고 하늘재까지 산행을 하면 어떠냐고 제안을 한다. 하늘재는 보존이 잘된 우리나라의 몇 안 되는 옛 고개고 또 옛길이다. 또 주변에 도요지와 산성이 있어 숲과 자연 외에도 볼거리가 많다. 그런데 다른 회원이 덕주사로 해서 마애불을 보고 월악산 영봉 쪽으로 난 산길을 오르자는 의견을 낸다. 우리는 분명히 결정을 하지 않은 채 미륵리 사지 쪽으로 차를 몬다.

수안보를 지나 미륵리 사지에 이르는 동안 여전히 세차게 비가 온다. 미륵리에 도착, 차에서 내려 모두들 우산을 쓰고 절로 향한다. 절로 들어가는 길은 두 갈래다. 최근에 지어진 안심당 쪽으로 가는 길이 있고, 하늘재 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다 오른 쪽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우리는 가까운 안심당 쪽 길을 택한다. 안심당을 지나면 철제 다리가 하나 놓여 있다. 다리 이쪽은 최근에 조성된 미륵세계사 사역(寺域)이고, 다리 저쪽은 1,000년을 넘게 이어온 미륵리 사지 절 지역이다.

미륵리 사지에 있는 귀부는 천문관측 기구였다

귀부 뒤로 석탑, 석등, 석불이 보인다.
 귀부 뒤로 석탑, 석등, 석불이 보인다.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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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리 사지는 북향을 하고 있는 절로 북쪽 입구에서부터 당간지주, 귀부, 오층석탑, 석등, 석불입상이 차례로 이어진다. 안심당 옆 다리를 지나면 처음 만나는 것이 귀부다. 귀부는 보통 비석 받침이다. 그런데 이 귀부는 좀 특이하다. 조각이 정교한 것도 아니고 그 위에 비석이 세워져 있지도 않다. 지금까지 이 귀부는 비석받침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최근에 이 귀부가 천문관측용 기구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 천문연구원 김효령 박사가 연구한 자료에 의하면 귀부는 진북을 가리키고 있다. 이것은 야간 북극성 촬영을 통해 확인되었다. 거북의 등줄기 선이 머리를 거쳐 북극성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진북은 천문관측을 위해 필요하다고 김 박사는 말한다.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는 필자는 앞으로 김 박사와 함께 이 귀부에 대한 과학적, 문헌적, 역사적 연구를 계속할 예정이다.

귀부 홈의 바닥면에 대한 수평과 길이 측정
 귀부 홈의 바닥면에 대한 수평과 길이 측정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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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귀부에 대해 회원들에게 이와 같은 최근의 연구 상황을 설명해 주니 다들 관심을 가진다. 귀부 등 중앙에 만들어 놓은 홈은 길이가 150cm, 폭이 36cm이다. 홈이 척추선과 수직을 이뤄 정동과 정서 방향으로 나 있다. 홈의 바닥면이 수평을 이루지만 아주 매끄럽지는 않다는 점 등이 연구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미륵리 사지에서 만난 탑과 석등 그리고 부처님

귀부에서 남쪽으로 부처님을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오층석탑이다. 고려시대 세워진 6m 높이의 5층탑으로 조금은 둔중한 느낌이 든다. 오늘은 비가 와서 탑이 더 무거워 보인다. 돌과 돌 사이 간격도 넓고 짜맞춤 역시 부실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이 탑은 이 절을 대표하는 석탑으로 종교적인 대표성은 있지만 미학적인 아름다움은 부족한 것 같다.

빗속의 오층석탑
 빗속의 오층석탑
ⓒ 김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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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의 사각석등
 빗속의 사각석등
ⓒ 김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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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탑에서 다시 남쪽으로 가까이 석등이 있다. 이 석등 역시 한 여름의 비를 맞고 서 있는데, 탑에 비해서는 덜 쓸쓸해 보인다. 8각 석등으로 연화대석과 상대석의 연꽃 조각이 특히 아름답다. 옛날에 이 화사석의 화창 사이로 보이는 오층석탑과 석불입상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오늘은 비가 와 그런 모습을 담을 수가 없다. 이들 옆으로는 또 특이한 형태의 사각석등이 있다.

다음으로는 이 절의 상징인 석불입상 앞으로 간다. 회원들 중 한 사람이 석불 입상의 몸돌이 딱 맞지 않은 걸 보고 옮겨진 것이 아닌가 하고 묻는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 절의 문화유산들이 자연석의 모습을 최대한 이용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주 중요한 부처님 상호는 선과 조각이 분명해 밝고 원만한 모습이다. 또 부처님이 갓을 쓰고 있어 비를 맞지 않으니 탑과 석등보다는 훨씬 덜 힘겨워 보인다.

비에 젖은 양귀비꽃
 비에 젖은 양귀비꽃
ⓒ 김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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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과 석등 뿐 아니라 절터 한쪽으로 조성된 꽃밭의 개양귀비 꽃도 비를 맞아 고개를 떨구고 있다. 우리 사람들은 우중임에도 불구하고 문화유산을 찾고 즐기지만, 탑과 석등 그리고 석불입상은 정작 비를 맞으며 힘들게 서 있는 것 같다. 그나마 양귀비꽃은 이번 비로 인해 그간의 갈증을 벗어날 수 있으니 다행이다.

석불입상까지 보고 난 우리 일행은 이번에는 당간지주를 보러 간다. 이곳 미륵리 사지에 있는 당간지주는 연화문이 조각되어 있어 특이하다. 우리나라에 세 개 밖에 없는 연화문 당간지주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 당간지주가 누워있다. 복원되어 제 자리에 놓여야 하는데 아직 그런 인연을 만나지 못한 모양이다. 이곳의 주지인 덕관 스님이 불사에는 관심이 많은데, 문화재에는 관심이 덜한 것 같다.   

만수계곡 너머로 보이는 용암폭포

용암폭포
 용암폭포
ⓒ 김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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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리는 송계계곡의 발원지이다. 포암산과 월항삼봉 쪽에서 내려온 물이 미륵리 사지에서 만나고, 조금 더 내려가면 박쥐봉 쪽에서 내려온 물이 또 다시 합류한다. 이렇게 합쳐진 물이 돌과 소나무가 어우러진 송계계곡을 이룬다. 송계계곡 옆으로는 597번 지방도로가 나 있어 수안보와 한수를 이어준다.

이 길을 따라 북쪽 하류로 내려가면 충주와 제천의 경계인 만수교가 나온다. 우리는 만수교 옆에 차를 세우고 만수계곡 자연관찰로로 들어간다. 만수계곡은 만수봉에서 흘러내린 물이 만드는 계곡이다. 만수봉과 용암봉 쪽을 바라보니 꽤나 큰 폭포가 보인다. 비올 때만 보이는 용암폭포다. 우리는 그 폭포를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한 장 찍는다.

하늘말나리
 하늘말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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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관리공단 직원이 우리 옆을 지나가면서 만수봉으로의 산행이 금지되었음을 알린다. 우리는 자연관찰로의 꽃과 나무를 관찰하고 나올 예정이라고 그들에게 말해준다. 함께 한 이순욱 선생이 생태전문가이니 이곳 자연관찰로에서 꽃과 나무에 관해 또 한 수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계곡으로 들어가자 오른쪽 계곡으로 힘찬 물소리가 들린다. 왼쪽 길옆에 조성된 야생화 단지에는 온갖 꽃들이 피어 있다. 요즘은 나리 종류가 많다. 그 중에 여기 있는 것은 하늘말나리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참나리, 말나리, 하늘나리, 땅나리, 솔나리 등 나리의 특징들을 설명해준다. 나리 외에 비비추도 자주 보인다.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처녀치마도 보이고, 둥글래도 보인다. 사실 이런 식물들은 설명을 하니까 알지 내 혼자라면 다 그냥 지나칠 것들이다.   

꽃만이 아니라 나무들도 있다

나무와 물 그리고 바위가 어우러진 만수계곡
 나무와 물 그리고 바위가 어우러진 만수계곡
ⓒ 김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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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자연관찰로에는 꽃만 있는 게 아니다. 산이기 때문에 오히려 나무들이 주인이다. 키가 큰 교목, 키가 작은 관목 그리고 덩굴나무들이 함께 숲을 이루고 있다. 이날 만난 나무들로는 복숭나무, 소나무, 물푸레나무, 신갈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 갈참나무, 생강나무, 일본 입갈나무(낙엽송), 쇠물푸레, 느릅나무, 단풍, 당단풍, 떡갈나무, 꼬리진달래, 다릅나무, 고로쇠나무, 층층나무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날 공부한 것 중 머리에 남는 것은 단풍나무과 식물들이다. 크게 단풍나무, 당단풍, 고로쇠나무가 있는데 이들은 잎과 나무 크기, 수액 등으로 구별한다고 한다. 단풍은 잎의 뾰족한 돌기가 5-7개이고 당단풍은 9-11개라는 것이다. 그리고 고로쇠는 단풍나무과 식물 중에서는 키가 큰 편이라고 한다. 또 고로쇠 수액은 먹지만 단풍나무의 수액은 먹을 수 없다고 한다.

또 층층나무를 보니 지난 해 함평에서 만난 최 화백이 층층나무에 나의 커리커쳐를 그려주던 생각이 난다. 자연관찰로를 내려오면서 이름도 생소한 다릅나무를 만난다. 이 나무는 나이테가 분명하고 목질이 아주 강해 목걸이 등 장식물로 쓰인다고 한다. 이런 저런 설명을 들으며 자연 관찰로를 한 바퀴 도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빗속의 월악산
 빗속의 월악산
ⓒ 김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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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우리 회원들은 덕주사 쪽으로 더 오를 건지 아니면 산행을 마감할 건지 논의를 한다. 비가 조금 줄어들면 조금 더 산행을 할 텐데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일기예보도 오늘 하루 종일 100mm 넘게 비가 온다고 했으니 아직도 상당량 더 올 것 같다. 우리는 조금 이르지만 점심을 먹으러 덕주사 입구 식당으로 간다. 자주 가는 집이라 주인이 반갑게 맞는다. 우리는 따뜻한 버섯두부전골에 점심 그리고 술 한 잔을 하면서 하루의 산행을 마감한다.


태그:#월악산 국립공원, #미륵리 사지, #송계계곡, #용암폭포, #만수계곡 자연관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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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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