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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자라고 있는 우리 참외밭이다. 스무 그루를 심었다.
 한창 자라고 있는 우리 참외밭이다. 스무 그루를 심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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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우리 집에 손님이 다녀갔다. 손님은 집안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우리 텃밭을 둘러보고 말이 많았다.

"가지가지 많이도 심었네! 만물상이야! 옥수수, 토란, 고추, 고구마, 콩, 오이, 참외, 수박, 토마토, 가지, 그리고 야채…. 실하게 잘 크고, 밭이 말끔하네! 호미를 들고 사는 모양이지. 이렇게 가꾸려면 얼마나 수고가 많을까?"

손님은 빨간 방울토마토 몇 개를 따 입에 넣고서 너무 맛있다고 했다. 나를 따라 밭을 한 바퀴를 둘러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손님은 나더러 전문 농사꾼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아마추어한테 전문 농사꾼이라니! 그래도 듣기는 좋았다.

한참 손님의 말을 들어주다 내가 대꾸를 했다.

"이렇게 자라는데도 아직은 몰라! 작물이란 게 비바람이 불면 쓰러지고, 병충해에 녹아나고, 그러다 가물면 소출은 줄고. 거둘 때 가봐야 아마추어인지 프로인지 판가름이 나지!"

참외밭에 참외가 숱하게 달리다

잎을 들추면 숱하게 달린 참외가 드러난다. 노란빛을 띠기 시작한 것도 있다.
 잎을 들추면 숱하게 달린 참외가 드러난다. 노란빛을 띠기 시작한 것도 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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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렇다. 작물은 거둘 때 가봐야 안다. 자라면서 열두 번도 더 변한다. 입찬소리는 금물!

텃밭은 수시로 표정을 달리한다. 한낮 따가운 햇살에는 잎이 쳐지면서 시들시들해지다가 해거름에는 기운을 차린다. 이른 아침이면 싱싱함을 더한다.

가뭄이 심할 때 작물의 얼굴과 적당히 비를 맞은 뒤 얼굴은 딴판이다. 열매를 맺을 때까지는 표정이 싱그럽다. 장대비나 센 바람에는 폭격을 맞은 것 같이 푹석 주저앉기도 하지만 며칠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일어난다. 자연은 스스로 복원하는 힘이 있다.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병충해에 시달릴 때도 약을 치고 영양을 공급하면 깨어나기도 한다.

그리고 결국, 무성하게 자라 꽃을 피우고, 결실을 맺어 자손을 퍼트린다. 사람한테는 수확의 기쁨을 주면서….

손님과 함께 발길을 참외밭으로 옮겼다. 줄기가 뻗어 판지를 메우고 자라는 기세가 등등하였다.

"어! 참외도 가꿀 줄 아나봐?"
"그럼. 해마다 스무 포기 남짓 가꾸는 걸!"
"참외는 기술이 있어야 된다던데. 순을 잘 쳐줘야 크게 달리지?"
"그거야 기본! 손이 좀 많이 가지!"

내가 손자덩굴을 집어 순을 쳐주자 손님도 따라했다.

참외 원 줄기를 엄마덩굴이라 부른다. 엄마덩굴에서 아들덩굴이 서너 개만 뻗도록 유인한다. 아들덩굴에서 수도 없이 곁가지를 친 게 손자덩굴이다. 손자덩굴에서 암꽃이 피며 열매가 달린다. 손자덩굴은 보통 세 잎 정도 남기고 순을 잘라야 튼실한 열매를 기대할 수 있다.

벌은 중매쟁이. 암꽃, 수꽃을 옮겨 다니는 벌이 눈에 띄었다. 이파리를 들쳐보는 손님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널찍한 잎 뒤에 숨은 푸른 참외가 숱하게 드러난 것이다.

"와! 뭐가 이리 많이 달렸나? 벌써 굵어진 것도 많네! 며칠 있어야 따먹을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참외가 정말 많이 달렸다. 벌써 어른 주먹크기로 굵어진 놈은 누런빛을 띠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열매들이 엄청나다. 굼실굼실! 손자덩굴에 달린 암꽃에서도 기대되는 것들이 숱하다.

자손을 퍼트리는 자연의 능력은 참 대단한 것 같다. 절로 감탄사가 난다. 손님은 다음에 오면 참외서리를 해야겠다고 한다. 노란 참외가 지천일 때 꼭 연락을 주란다.

작년 전철을 또 밟으려나? 흰가루병이!

비가 그친 아침, 태양이 눈부시다. 아내와 함께 참외밭에 나왔다. 참외밭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아내의 표정이 좋지 않다.

흰가루병에 걸린 잎이다. 병에 걸리면 밭 전체로 번져 참외밭이 망가진다.
 흰가루병에 걸린 잎이다. 병에 걸리면 밭 전체로 번져 참외밭이 망가진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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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참외밭이 좀 이상하지 않아요?"
"뭐가? 난 괜찮아 보이는데…."
"잎에 흰가루가 낀 것 같아요? 작년처럼…."
"그럼 흰가루병? 그러면 안 되는데!"

그러고 보니 참외 원줄기가 뻗어가는 주위 잎에서 흰가루가 눈에 띈다. 흡사 하얀 밀가루를 뿌려놓은 것처럼. 징후가 좋지 않다. 내나 잘 자라던 참외밭이 쑥대밭 되는 거 아냐! 겁이 덜컥 난다. 뭐가 잘못된 걸까? 밑거름으로 돼지똥과 깻묵도 뿌려주고, 고랑에 난 풀도 제초제에 의존하지 않고 호미로 긁어주느라 수고가 많았는데 말이다.

참외 잎이 좀 이상하다. 흰가루병에 시달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참외 잎이 좀 이상하다. 흰가루병에 시달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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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도 그랬다. 참외가 노래질 때쯤 잎에서 흰가루가 생기더니 밭 전체로 퍼졌다. 어느 순간, 잎이 말라죽고 줄기는 거덜 났다. 덜 익은 참외는 익기도 전에 말라비틀어졌다.

이를 어쩐다? 고민이다. 아내에게 물었다.

"여보, 참외밭에 소독을 할까?"
"글쎄. 그래도 우린 농약치지 맙시다. 지금 달린 것만 익어도 넘치잖아요."
"하기야!"

농약 대신 목초액이라도 뿌려보자!

그래도 병에 녹아나는 것을 볼 수만 없다. 너무 억울할 것 같다. 다 된 밥에 코 빠뜨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요즘, 농약에 의존하지 않고 농사짓는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이른바 유기농은 힘이 곱절은 든다. 그런데 아내는 손수 가꿔먹는 작물에다 농약을 뿌려대는 것은 질색을 한다.

아내가 목초액을 생각해냈다. 어디서 목초액은 친환경농업에 널리 이용하고, 살균 성분도 있다는 소리를 들은 모양이다.

농약통을 짊어졌다. 목초액을 타서 뿌려보기로 했다. 목초액은 살균작용과 함께 작물의 성장에도 도움을 준다고 한다. 목초액으로 참외 흰가루병이 방제될 수 있을까? 그래도 하는 데까지 해보는 수밖에.

목초액을 500배로 희석하여 참외밭에 골고루 뿌렸다. 제발 흰가루병이 더 이상 번지지 말았으면 좋겠다.

일을 마치고 땀을 닦는 아내가 내게 시원한 음료수를 건네준다. 꿀맛이다.

아내의 희망사항이 야무지다.

언제쯤 따먹을 수 있을까?
 언제쯤 따먹을 수 있을까?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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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초액 뿌렸으니 참외가 잘 클까요? 입이 심심찮게 따먹고, 손님이 오면 안겨 드리고! 올핸 끝물 참외까지 거둬 된장에 묻어 장아찌도 담가보자구요! 정말 그럴 수 있으면 참 좋겠네!"


태그:#참외, #참외밭, #흰가루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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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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