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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집은 양평의 한적한 마을에 있습니다. 나지막한 산을 병풍 삼고, 논과 밭을 마당삼은 곳. 먹이를 구하기 힘든 겨울이면 고라니도 앞마당에 들어와 접시에 담아놓은 새 모이를 집어먹는, 자연과 벗 삼은 동네지요. 그 부모님의 집 앞엔 빨간 우체통이 하나 놓여 있습니다. 우편물로 채워질 날이 얼마나 있을까 싶긴 하지만 풍경으로만 보아도 나쁘지 않습니다.

지난해 4월이 끝날 무렵, 그 빨간 우체통에 새로운 주인이 나타났습니다. 조그만 노랑 턱 멧새 부부가 파란 이끼와 마른 나뭇가지를 물고는 부지런히 우체통을 드나들었습니다. 어느 날인가는 하얀 개털을 잔뜩 주워 나르더니 우체통 안에 오목한 접시를 닮은 작은 집을 지었습니다. 마침 진돗개가 털갈이 중이었는데, 마당에 굴러다니는 털이 제법 요긴해 보였나 봅니다.

이때부터 우체통은 노랑 턱 멧새 부부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이 작은 이웃을 위해 우체통에 팻말을 붙이셨습니다.

  노랑턱 멧새의 보금자리
▲ 빨간 우체통 노랑턱 멧새의 보금자리
ⓒ 정구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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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편물은 바깥에
▲ 우체부 아저씨께 우편물은 바깥에
ⓒ 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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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부 아저씨, 우체통에 새가 집을 지어요. 우편물은 바깥에.'

우편배달부 역시 멧새 부부의 보금자리를 피해 바위 위에 편지들을 가지런히 놓아두었지요. 저 역시 그때부터 멧새 부부의 보금자리에 호기심이 잔뜩 일었습니다. 

얼마쯤 지났을까요! 우체통 둥지 안에서 작은 몸집인 어미 새가 무려 여섯 개의 알을 낳았습니다. 한 2주쯤 지나자 알이 부화되었고, 아기 새들 여섯 마리가 태어났습니다. 허전했던 우체통이 여덟 마리의 생명으로 가득 찼습니다. 

자연스레 저의 호기심은 더욱 커졌습니다. 엄마, 아빠 새가 먹이를 구하러 외출한 틈을 타 우체통 가까이 다가가 보았습니다. 다가오는 소리를 감지한 듯 아기 새들이 비비! 비비! 예쁜 소리를 냅니다. 문을 살짝 열면 누구 입이 더 큰가 시합하듯 투명하고 얇은 입을 벌려 먹이를 내 놓으라 아우성입니다. 그 소리에 듣고, 그 모양에 보고 있노라면 아무것도 주지 못해 오히려 미안해지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한 닷새쯤 지나자 아기 새들의 반응이 달라졌습니다. 제가 다가가면 얼른 고개를 파묻고는 죽은 듯 조용합니다. 아마도 사람을 조심하라고 엄마 아빠 새에게 단단히 교육받은 모양입니다. 하지만 엄마나 아빠 새가 애벌레를 물고 오면 우체통 안은 다시 요란해집니다.

"비비! 비빅! 비비! 삐빅!"

아기 새들의 합창
▲ 아기 새들 아기 새들의 합창
ⓒ 정구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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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며칠이 지나자 털도 없이 빨갛고 볼품없던 아기 새들이 몸에 조금씩 털도 나고 부리도 제 모습을 갖춰 갔습니다. 부화한 지 20여 일이 지나자 턱과 이마의 노란 색은 선명하지 않지만 제법 그럴듯한 외모를 갖춥니다. 이때부터 아기 새들은 새로운 경험을 시작합니다. 한 마리씩 우체통 입구에 앉았다 들어가기를 반복합니다. 어느새 우체통 입구엔 한가득 똥을 묻혀 놓았네요.

 집을 떠나기 전
▲ 막내멧새 집을 떠나기 전
ⓒ 정구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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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처럼 드나들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포르르 한 마리씩 하늘로 날아갑니다.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멀리 떠나지 못하고 근처 나뭇가지 위를 날며 우체통 근처를 배회하더군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습니다. 날기 시작한 지 삼사일이 지나자 더 이상 아기 새들의 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새들이 떠나고 나니 마치 돌보던 아이를 멀리 떠나보낸 듯 마음이 허전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일주일쯤 지났을까요? 6월이 한창인데, 노랑 턱 멧새 부부가 우체통에 다시 찾아 왔습니다. 원래 이 노랑 턱 멧새는 애벌레를 구하기 쉬운 5월 중하순 경에 새끼를 키우기 위해 4월 말에서 5월 초쯤 알을 낳는다고 합니다. 그것에 비하면 늦은 감이 있는데도 이 정열의 노랑 턱 멧새 부부는 새로 여섯 개의 알을 낳았습니다. 이 알들이 부화한 후에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정성스레 돌보더니 한 마리도 상하지 않고 잘 키워 어느 여름 날, 모두 날려 보냈습니다.

그로부터 1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올해는 노랑 턱 멧새 부부가 방문하지 않습니다.  지난해처럼 두 번 알을 낳았다면 지금쯤 우체통을 보금자리 삼아 한창  두 번째 새끼들을 돌보고 있었겠지요.

조류학자 윤무부 교수님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는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야산에 사는 멧새들이 90% 가량 개체 수가 줄었다고 합니다. 그 때문일까요? 아니면 두 번째 추가 번식을 할 때, 제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자꾸 우체통을 들여다 본 걸 알고는 안전성에 의구심을 갖게 된 건 아닐까요? 만일 그렇다면 참 미안한 일이네요.

어느덧 여름이 되었지만, 저는 여전히 그 빨간 우체통 근처를 기웃거립니다. 우체통엔 여전히 어머니의 글귀가 붙어 있습니다. 우체부 아저씨도 이제는 당연하다는 듯이 우편물을 바위에 두고 갑니다. 이제 이 우체통에 돌아올 이는 노랑 턱 멧새 부부만 남았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다면 올해도 만나고 싶습니다. "치짓! 츄이~, 치짓! 츄이~"하며 날던 노랑 턱 멧새들을.


태그:#노랑 턱 멧새, #노랑턱멧새, #멧새, #우체통, #보금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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