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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라는 생소한 장르와 '할아버지와 소'라는 낯선 주인공으로 관객들에게 다가온 '워낭소리'는 독립영화 사상 최초로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이례적인 흥행을 일으켰다.

 

이 영화는 흔히 말하는 스타급 연예인들이 주연을 맡은 것도 아니고 감독의 인지도도 약했을 뿐더러 제작비도 2억 원에 불과했다. 오락성이 강하고 자극적인 영화에 길들여진 이 시대에 투박한 일상을 바탕으로 한 '워낭소리'의 흥행 요인은 무엇일까.

 

할아버지와 소의 특별한 교감

 

'워낭소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할아버지(최원균 분)와 소의 변함없는 교감을 보여준다. 40년 이상의 세월을 함께해온 소는 할아버지의 생계수단이자 자가용이자 친구로 등장한다.

 

소는 매일 같이 할아버지를 위해 꼴을 지고 밭을 갈며 헌신한다. 할아버지도 소를 집에서 기르는 짐승의 개념을 뛰어 넘는 존재로 인식한다.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들의 모습은 지극히 일상적이어서 자칫 관객들에게 지루하게 다가갈 수도 있다. 하지만 지루함을 넘어 '워낭소리'에서만 엿 볼 수 있는 꾸미지 않은 여유로움과 느긋함이 매력으로 다가온다. 특히 할아버지와 소와의 관계가 아득한 한국적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이것이 감동의 요인이자 흥행의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실제로, 빠르게 변화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뒤쳐지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느림의 미학이 사라진 우리 사회의 '빨리빨리' 문화는 삶의 곳곳에 뿌리 내리고 있다. 하루가 달라지게 발전하는 기계 문명 뿐만 아니라 단번에 많은 것을 얻으려는 로또나 신데렐라 열풍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 같은 현실 속에서 '워낭소리'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잊혀진 시간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 오고 느긋함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영화는 할아버지가 죽은 소를 잊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며 막을 내린다. 동물과의 우정을 통해, 감성이 부족한 현대인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따뜻한 위로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 것.

현대 스크린을 압도하는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자극적인 스토리를 과감히 버리고, 평범한 주인공의 일상을 통해 삶의 여유와 진한 우정을 보여 준 것이 관객들에게 크게 어필한 것으로 보인다.

 

서정적인 아름다움과 친자연적인 편안함

 

'워낭소리' 속에서는 석양지는 저녁하늘, 벼 사이를 헤엄치는 물방개, 비온 뒤 처마 밑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등 아름다운 자연을 그대로 담았다. 인위적인 것에 의존하지 않고 평범한 풍경으로 영화를 제작하였다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현란한 CG효과와 편집기술, 화려한 음향에 길들여진 영화들 속에서, '워낭소리'는 자연의 순수함을 담은 신(scene)들과 함께 색다른 느낌으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한 현대 사회에서 자연을 사랑하는 할아버지가 이례적인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현대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잔잔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언제부턴가 동식물의 빠른 성장을 위해 사용한 인체에 해로운 농약이나 사료의 부작용이 보고되고 있다. 영화 속 할아버지는 사료를 주지 않고 소가 먹을 꼴을 직접 벤다. 할아버지의 행동은 관객들이 친자연적인 마음을 갖도록 조용하게 일깨운다.

 

'워낭소리'는 직접적인 대사나 강한 상징을 통해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지 않는다. 다만 주인공의 일상과, 동물과 인간, 자연을 여과 없이 보여줌으로서 강요하지 않는 평범한 진리를 담아낸다. 그러므로 관객들은 엔딩 자막이 올라갈 때 워낭소리의 긴 울림을 들으며 편안함으로 만족스럽게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태그:#워낭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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