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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후반인 안찬숙씨의 휴대폰 컬러링은 독특하다.

"조선일보가 신문이면, 우리 집 화장지는 팔만대장경입니다. 조∙선∙폐∙간"

기천이라는 전통무예를 함께 하면서 안씨를 알게 되었다. 우리는 기천을 몸 공부라고 표현한다. 습관적으로 반복하지 않고 몸이 작동하는 방식을 이해하려는 훈련이다. 제대로 힘을 쓰고, 그 힘을 극대화하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몸이 구조적으로 정렬되어야 한다.

모든 근육과 감각에 신경써야 한다. 무엇보다 항상 깨어 있는 게 중요하다. 그는 올해 들어 다른 '운동'에도 적극적이다. 바로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언소주). 그가 참여하는 운동이 관심을 받고 있다. 그를 인터뷰하기로 한 날 눈치 없이 최근에 구입한 삼성 노트북을 들고 갔다.

"어! 삼성이네."

자리에 앉자마자 그녀가 이 말부터 꺼낸다. 나의 허점을 놓칠 그녀가 아니다. 나는 선공을 뺏겼고 기세에서 한없이 밀리기 시작했다. 인터뷰가 진행되던 2시간 내내 자판을 두드리는 나의 손가락은 뻐근했다. 얼굴 대신 손가락이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그는 작년 6월부터 언소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매일 광화문에서 촛불을 켰지만 미국산 소는 수입되었다. 무엇보다 광우병 정국을 바라보는 언론의 시각에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사람들은 요즘 사회에 대해 할 말이 많아졌다.

하지만 문제의식이 있음에도 현실에 뛰어들어 일상적으로 참여하고 실천하는 이들은 드물다. 나는 안씨가 문제의식의 단계에서 실천의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이 궁금했다. 그가 생각하고 극복했을 고민의 지점을 따라가 보고 싶었다.

촛불 때문에 20여년 만에 '현실' 참여

조중동 광고불매운동을 벌였던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과 민생민주국민회의, 미디어행동, 민언련 등 600여개 시민단체는 8일 오후 서울 태평로 조선일보사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선일보>에 편중 광고한 광동제약 제품에 대해 불매운동을 선포했다.
 조중동 광고불매운동을 벌였던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과 민생민주국민회의, 미디어행동, 민언련 등 600여개 시민단체는 8일 오후 서울 태평로 조선일보사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선일보>에 편중 광고한 광동제약 제품에 대해 불매운동을 선포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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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소주 활동을 하고 있다.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
"87년 6월 항쟁 당시 언론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월간 <말>을 사서 봤다. 전두환 정권 때 특별한 사진전시회가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렸다. 사진에는 흔히 볼 수 없는 살육 사건이 광주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이게 사실일까 싶을 정도로 처참했다. 그런데 진실을 알 길이 없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한겨레>가 나왔고 공감했다.

당시 생활비를 쪼개서 아들 이름으로 주식 10만 원 어치를 샀다. 첫 직장이 은행이었는데 구조조정 때문에 노동운동이란 걸 해보기도 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에서 주최하는 언론학교 강의도 챙겨 들었다. 배우고 느낀 것이 많았다. 그러다 딸아이를 낳았고 육아로 시간에 쫓기게 되면서 민언련 활동을 계속 할 수가 없었다."

- 20여년 만에 '현실' 참여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무언가 다시 행동하고 실천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촛불시위 때였다. 민언련은 그 사이 많이 커져 있었다. 가끔 들어가던 '사람 사는 세상'(노무현 대통령) 홈페이지에서 사람들을 만났고 언소주 활동을 소개받았다. 처음엔 조중동 광고 불매운동을 했다. 조중동에 광고를 내는 업체에 항의전화하면서 시작한 것이다. 이 활동의 기본은 광고주가 조중동에 광고를 내지 않도록 설득하는 작업이다.

조중동 광고는 이들이 하는 왜곡보도의 생명력을 계속 키워주는 거니까. 촛불 이후 광고주에 전화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다만 불매운동 자체는 불법이 아니라고 했다. 그럼 합법적인 틀 안에서 한번 해보자고 했다. 우리 운동이 진화했다고 한다. 새로운 시도임에는 분명하다. 물론 광고주에게 항의전화하는 게 불법이라는 판결에 대해서는 항소를 했다.

- 언소주가 삼성에게 싸움을 걸었다. 
"최근에 조중동에서 우리를 많이 띄워주었다. 사실 우리를 탄압해야 한다고 교시를 내린 건데 그게 우리를 홍보해준 꼴이 되었다. 삼성 측이 이를 불편하게 생각한다는 이야기도 들리더라. 어느 날부터 조중동에서 삼성 불매운동 관련 기사가 나오지 않더라. 삼성은 김용철 사건 이후 한겨레 광고를 중단했다. 기업은 이처럼 자금력으로 자기 관련 기사에 압박을 가할 수 있다. 언론은 광고주에게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구독료보다 광고비 비중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럼 언론 소비자는 어떤가. 내가 언론 기사와 서비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 언론의 논조가 바뀔 것 같은가."

- 조중동은 자기 신문을 안 보면 될 것 아니냐고 할 텐데?(웃음)
"이들이 쏟아내는 왜곡보도의 피해 당사자는 바로 시민이다. 언론이 바뀌려 하지 않을 때 언론 소비자로서의 시민은 어떻게 해야 할까. 특정 기업에 불매운동을 한다고 그 기업을 망하게 하겠다는 건 결코 아니다. 우리가 기업의 물건을 팔아주면 가격에 광고비도 포함되어 있다. 한 사람의 소비자로서 내가 지불하는 물건 값에 포함된 광고비가 적어도 문제가 있는 언론에는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운동을 시작했다. 언론은 소비자 말은 무시할 수 있어도 광고주의 말은 무시하지 못한다. 그래서 소비자들은 광고주를 압박하고 불매운동을 할 수밖에 없다. 최근에 회원이 많이 늘었다. 조중동 덕분이다."

- 그럼에도 조중동을 선호하는 이들이 생활정보와 문화정보는 괜찮다고 말한다.
"도저히 끊지 못하겠으면 한겨레나 경향도 구독해서 비교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주위를 봐도 그렇지만, 돈을 내고 조중동 보는 사람은 열에 두셋 정도나 될까 싶다. 공짜로 준다니까, 뭐 끼워준다니까 보는 거지. 주위에는 일정한 기간을 보기로 하고 무료로 구독하는데 중단하면 위약금 내는 걸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파트 단지에서 현금을 흔들어대면서 보라고 권하기도 한단다. 회사에서 어쩔 수 없이 보는 사람, 기한에 묶여서 무가지로 보는 사람, 식당에서 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 얘기해서 한겨레와 경향신문을 새로 받아보게 되었다. 원래는 조선일보만 보고 있었다. 집에서 조중동을 보더라도 회사에 나와서 한겨레와 경향을 읽으면 적어도 한쪽으로 치우치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 종이 신문 시장이 많이 축소되고 있다. 이 시장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겠지만 언론들이 긴장은 많이 하고 있을 것이다. 조중동에서 방송을 장악하려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친일파 신문은 괜찮나요?"

오른쪽 다섯 번째 안찬숙 씨가 촛불을 들고 있다.
▲ 신영철 대법관 탄핵 오른쪽 다섯 번째 안찬숙 씨가 촛불을 들고 있다.
ⓒ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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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중동 폐간 운동을 하면서 주위 사람들과 부딪힌 적은 없었나?
"우리 회사 전무님이 한동안 경향을 열심히 가져다 읽으셨다. 그래서 저 분이 경향 애독자가 되신 건가 생각했다. 어느 날 갑자기 경향을 끊으라고 하셨다. 빨갱이 신문이라는 거다. 그래서 '빨갱이 신문은 안 되고 친일파 신문은 가능하세요?'라고 말씀 드린 적이 있다."

- 전무님의 반응은 어땠나?
"전무님이 '조선일보 얘기 하는 거야? 그건 사장님이 보시는 거잖아'라고 했다. 나랑 논쟁하기 싫으니까 사장님 핑계를 대면서 자리를 피했다."

- 노무현 대통령 서거에 대해 언론 책임이 있다. 조중동은 물론이고 한겨레와 경향도 이 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떻게 보는가?
"서거 당일 조카 결혼식 참석하러 전주 내려가다가 비보를 들었다. 내게 그 소식을 처음 전했던 이는 전화기 너머로 '엉엉' 울고 있었다. 버스에 타고 있던 이들에게 소식을 알려주자 모두들 술렁거렸다.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봉하마을로 갔다. 가서 밤을 샜다. 충격이 컸고 아직도 멍하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이 죽였다고 생각한다. 참 속 좁은 정부다. 최근 내부게시판에 글 올린 국세청 직원을 징계하는 것을 보며 분명하게 느끼고 있다. 국세청에서 먼저 세무조사하고, 국세청장이 대통령과 독대해서 보고했다는 의혹도 있지 않나. 국세청이 재계 1, 2위도 아닌 600위권 기업을 조사했다. 지역 세무서도 아닌 서울에서 내려가서 조사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대통령에게 독대로 보고했다는 의혹도 그렇고, 얼마 안 있어 한상률 전 청장은 해외로 도피했다. 짜고 치지 않으면 어떻게 가능했겠는가?

물론 언론의 책임 또한 적지 않다. 검찰에서 흘려보내는 것을 언론은 열심히 받아썼다. 피의사실을 공표하는데 어느 언론도 문제제기하지 않았다. 언론고시까지 통과한 기자들이 그걸 몰랐겠나? 심지어 없는 사실을 왜곡하기도 했다. 그들은 하이에나였다. 지난 3월 봉하에 갔을 때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때는 노 대통령 얼굴이 잠깐만 비춰도 신문들은 소설을 써댔다. 감옥보다 못한 생활이었을 것이다. 감옥은 그나마 햇빛보고 산책이라도 할 수 있지. 한겨레, 경향 할 거 없이 물어뜯었다."

- 노 대통령은 재임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금 새삼 새롭게 다가오는 것 같다. 그는 우리에게 어떤 유산을 남긴 걸까?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 때 민주주의를 만끽할 수 있었다. 이명박 정부가 우리에게 그걸 일깨워주고 있다. 참 역설적이다. 권력의 힘에 아부하지 않고 마음껏 의사를 표현할 수 있었던 시대였다. 그는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를 위해 조중동과 싸웠다.

지금은 언론의 왜곡보도에 대해 늘 감시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 그들의 프레임에 갇히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중동은 언론이 아니라 언론권력이다. 굳이 길바닥에서 시위를 하지 않아도 좋다. 일상에서 그리고 각자의 위치에서 고민하고 실천했으면 좋겠다. 시민들이 부당하다고 느끼면 어떤 방법으로든 표현하면 좋겠다."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 어떻게든 표현했으면...

그녀는 딸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은 조금이라도 달랐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금은 힘들더라도 희망의 메시지를 이야기 하고 싶다고 했다. 노 대통령 밑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그 일을 해 주길 바라고 있었다. 그의 자산과 유산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이들이 우리 사회에 희망의 씨앗을 뿌려주기를 원했다. 그가 하려고 했던 것을 차근차근 설명하고, 그 길을 같이 가자고 손잡고 끌어 주는 게 중요하다고 믿었다. 그녀를 만난 후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가 오버랩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 다음에 무엇이 올 것인가? 그것은 그때 다수 국민이 품게 될 소망이 어떤 것이냐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소망을 만드는 것은 오늘의 현실에서 슬픔과 노여움을 느끼는 사람들의 몫이다. 각자가 선 자리에서 대한민국 헌법이 부여한 권리와 책임을 일상적으로 실천해 나가는 '각성한 시민'이 많아질수록, 그런 시민들이 만드는 작은 공동체와 그들 사이의 연대가 끈끈해질수록, 그 연대를 기반으로 한 시민 행동의 폭과 깊이가 넓고 깊어질수록 우리의 민주주의는 더 단단해지고 사회는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 <후불제 민주주의> 가운데

마지막으로 그녀의 독특한 컬러링 얘기를 꺼냈더니 딸 아이 컬러링을 소개한다.

"조선일보가 신문이면 야동은 예술영화입니다."

그녀는 그렇게 딸아이의 든든한 동조와 후원을 받고 있다. 그녀가 각성시키고 있는 건 그녀의 딸만이 아닐 것이다. 인터뷰가 끝나고 울산에 계시는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경향이나 한겨레를 구독했으면 해서다.

10년 전 처음으로 중앙일보를 보던 날 집에는 자전거도 한 대 배달되어 있었다. 여태껏 아버지는 신문지국장과 친해서 끊겠다는 말을 못한다고 하신다. 신문 값도 1만 원밖에 안 내신단다.

안부를 마저 묻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차라리 내가 대신 지국에 전화해서 끊어드리겠다고 할 걸 그랬나.'

안씨가 보여준 적극성이 내게는 조금 부족한 것 같다. 다음에 전화 드리면 꼭 이 말을 해야겠다.


태그:#언론개혁,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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