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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8일 오전 11시 경북 의성군 다인면 봉정리에 위치한 적막한 고찰 대곡사(大谷寺)에 때 아닌 불청객들이 모여 들었다. 산세가 봉황이 비상하는 것 같아 비봉산(飛鳳山)으로 불리는 이 산은 해발 671m이다.

비봉산 대곡사 일주문.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에 이르는 문은 크고 또 그 길이 넓어서 그리로 가는 사람이 많지만,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또 그 길이 험해서 그리로 찾아 드는 사람이 적다”
 비봉산 대곡사 일주문.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에 이르는 문은 크고 또 그 길이 넓어서 그리로 가는 사람이 많지만,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또 그 길이 험해서 그리로 찾아 드는 사람이 적다”
ⓒ 유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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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 중턱에 위치한 고찰 대곡사에 포항지역을 포함해 영천과 성주, 안동, 영주, 울진 등 경북 전역에서 이른 아침부터 달려온 이들은 '경북시민광장' 회원들이다.

지난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직후부터 누군가의 입에서부터 이곳 대곡사가 노무현 대통령과 인연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파되기 시작했다. 사연인 즉, 1975년 이전 주경야독을 하며 고시공부를 하던 때, 이곳 대곡사를 찾아와 약 20일 동안 공부를 하며 머물렀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전해숙(연꽃)님과 대곡사 주지 등목 스님이 회원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전해숙(연꽃)님과 대곡사 주지 등목 스님이 회원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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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이 검찰수사로 압박을 받고 있던 올해 봄, 봉하마을 사재로 찾아뵙을 때 지난 시절을 회고하면서 의성 대곡사와의 인연을 이야기 했습니다. '시간이 나면 한번 가 보고 싶은데... 지금은 가 볼 형편이 안되네' 하고 말씀을 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전해숙(닉네임 연꽃)씨는 칠곡에서 의성 대곡사를 찾아 주지 스님을 만났고, 노 전 대통령의 이야기를 전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갑작스럽게 노 대통령이 서거를 하게 되었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의성의 최대삼(닉네임 총대)씨가 영정사진을 대곡사로 가지고 갔고 위패와 함께 명부전에 모시게 되었다.

당시 대곡사 주지 등목스님은 "공부를 하기 위해 이 절에 잠시 거처를 했지만 그 인연은 매우 소중한 것이다"라고 말하며 영정과 위패를 모셨다.

대곡사 명부전에 모셔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과 위패
 대곡사 명부전에 모셔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과 위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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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이어, 두 분 스님은 1시간 동안 고 노무현 대통령의 극락왕생을 빌며 염불과 독경을 계속 이어 나갔다. 지역의 몇몇 여성신도와 경북시민광장 회원 모두는 영전에 두 번씩 절을 했다.

40여명의 회원들은 절에서 제공한 점심공양을 마친 후, 주지스님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이어 비봉산 정상 바로 아래 위치한 적조암까지 가벼운 등산을 했다.

경북 전역에서 이른 아침부터 달려온 경북시민광장팀
 경북 전역에서 이른 아침부터 달려온 경북시민광장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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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 곳 대곡사는 그리 유명한 사찰로 소문이 나지는 않은 곳이다. 그러나 의성지역에서 과거 법조인을 꿈꿨던 이들 사이에서는 사시합격을 보장해 주는 명당으로 입소문이 나
있었다고 전해진다.

오후 4시경. 원칙과 상식을 지키며 희망의 증거가 되고자 했던 고 노무현 제16대 대통령을 추모하며 서로의 삶터로 돌아가기 위해 헤어졌다.

인걸은 갔지만 희망의 증거로 남은 산천과 기억은 영원하다.
 인걸은 갔지만 희망의 증거로 남은 산천과 기억은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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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지금 인걸은 가고 지금은 없지만 대곡사에서 바라본 산천은 희망의 빛깔을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경북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노무현 고시공부, #의성 대곡사, #경북시민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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