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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공정위가 신문고시 폐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으며, 8월 말까지 결론을 내리겠다"고 밝혔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뉴스를 접하는 순간, 몇 달 전 아침 제 방문을 두드리며 00일보 구독을 권하던 아저씨 얼굴이 생각났습니다.

 

"10만 원짜리 백화점상품권 드릴 테니 1년 정기구독 하시죠"

 

한두 달 되었을까요. 토요일 아침 오랜만에 조조할인 영화를 보겠다는 욕심에 치장을 하는데 초인종이 요란하게 울려댑니다. 9시도 안 된 시간에 누가 저리도 초인종을 요란하게 눌러대는 것인지. 가스검침원 아주머니와 택배 아저씨 빼고는 찾아오는 이 없는 자취방에 이른 아침부터 벨이 울리니 당황스럽더군요.

 

집에서 반찬거리를 보내놓고 연락을 못 주셨나 싶어 부스스한 머리를 정리하고 문을 열었습니다. 문을 여니 40대 후반은 돼 보이는 아저씨가 한 손에는 편지봉투 꾸러미를 들고 상냥한 얼굴로 인사를 합니다.

 

"00일보에서 왔습니다."

 

'00일보'라면 제가 얼마 전까지 지인이 "네가 00일보 싫어하는 건 아는데 구독료를 내줄 테니 받아봐라. 나도 사정이 있어서 그렇다"며 권해 마지못해 받아보는, '라면받침'으로나 쓰던 신문입니다. 지인과 약속한 3개월이 지나자마자 방문에 '신문 넣지 마시요'라는 글을 써 붙이고 지국에서 걸려오는 전화는 받지도 않고 버텨온 게 한 달인데 결국 지국장이 찾아왔나 싶었습니다.

 

"무슨 일이시죠? 저 그 신문 절독했는데요. 그리고 저 개인적으로 그 신문 논조에 상당한 불만이 있는 사람인데 지인 때문에 마지못해 받아본 거거든요."

 

제가 퉁명스럽게 나가자 아저씨는 좀 당황한 듯싶었습니다. 말을 바로 못 꺼내고 쭈뼛쭈뼛 거리시더군요. 그러더니 제게 아까부터 들고 있던 편지봉투 하나를 슬그머니 내밉니다.

 

"뭐죠?"

 

처음에는 지인이 구독료를 안 내서 저한테 영수증을 청구하러 온 것인가 했습니다. 지인에 대한 배신감을 살짝 느끼면서 편지봉투 안을 살펴보니 빳빳한 종이 한 장이 들어 있더군요.

 

"00백화점 10만원 권 상품권입니다. 선생님이 저희 신문 구독해주신 것에 감사도 드리고, 또 앞으로 1년간 무료로 넣어드렸으면 해서요. 몇 번 찾아왔었는데 안 계셔서 이렇게 아침에 찾아왔습니다."

 

10만원이면 연간구독료의 50%가 넘는 돈이고 신문고시상의 불공정 행위입니다. 그런데도 이 아저씨는 태연하게 불공정 행위를 권하더군요. 이 아저씨, 사람을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보신 게지요. 아저씨와 실랑이를 벌인 덕에 조조할인영화는 이미 물 건너갔고 저도 참을 수가 없어 백화점 상품권을 아저씨 손에 쥐어주며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아저씨, 00일보 어디 지국장이에요? 제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겠습니다. 제 원망은 마세요."

 

준법 강조하며 지국장을 불공정행위 전도사로 내모는 '00일보'

 

이쯤하면 돌아설 줄 알았던 아저씨는 이번에는 편지봉투 두 장을 건넵니다.

 

"아이고 선생님. 신고는 하지 말아주세요. 사실 저희 같은 사람들이 힘이 어디 있습니까. 본사에서 구독부수 늘리라고 하니까 하는 거지. 그리고 정부에서도 이 신문고시 곧 없앤다지 않습니까. 그러니 노여움 푸세요."

"됐으니까 가세요."

 

'노여움을 풀라'는 한마디에 대화의 의지마저 상실하고 묻을 닫아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도 한참을 있다가 아저씨는 제 방문 앞에서 발길을 돌리신 듯했습니다. 아침부터 수만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젓고 다니더군요. 제가 순간 느낀 노여움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건 아마도 이날 아침 제 방 초인종을 요란히 눌러댄 아저씨에 대한 노여움은 아니었을 겁니다. 오히려 그 잘난 준법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도 그 아저씨 같은 분들을 불공정 행위 전도사로 내모는 00일보에 대한 노여움이었겠지요.

 

신문고시를 없앤다고? 신문 판촉 살인사건이 반복되길 바라는가

 

나중에 알고 보니 저 말고도 이런 경험 해보신 분들이 많더군요. 자전거를 주겠다고 한 곳도 있고, 심지어 현금을 직접 주겠다고 한 곳도 있답니다. 신문고시가 엄연히 존재하지만 솜방망이 처벌이 대다수이니 이럴 수밖에요.

 

부끄럽지만 저 역시 이날 아저씨를 공정위에 신고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에 대한 연민이 앞서, 신문고시를 알면서도 저 스스로 지켜내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날 이후에도 집 앞을 지나며 몇 번 그 아저씨를 마주쳤습니다. 그날처럼 한 손에는 편지 봉투를 가득히 든 채 아저씨는 이 건물, 저 건물을 오가는 듯했습니다. 몇몇 분들은 상품권의 유혹에 00일보를 1년간 받아 봐야 할 것이고, 몇몇 분들은 저와 같은 노여움을 느끼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

 

그 아저씨의 바쁜 발걸음을 보면서 1997년 신문고시가 탄생하게 된 배경을 생각해 봅니다. 1996년 구독부수 확장전쟁을 벌이던 중앙일간지 지국장 간의 '판촉 살인사건'이 아직도 생생한데 많은 사람들은 그 사건이 준 교훈을 벌써 잊은 듯해 씁쓸하기만 합니다.


#신문고시#판촉살인사건#신문고시 위반#불공정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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