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그간 고속도로 많이 생겼네

천왕문에서 바라 본 무량사
 천왕문에서 바라 본 무량사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이번 답사의 목적지는 충남 보령이다. 보령 지역의 문화유산 중 성주사지와 오천성을 보고 가까운 곳에 있는 몇 가지 문화유산을 더 보기로 했다. 그런데 성주사지에서 고개만 하나 넘으면 무량사가 있다. 그래서 부여군 외산면에 있는 만수산 무량사를 답사지로 추가하게 되었다.

무량사를 가려면 서해안 고속도로를 탈 수도 있지만 공주서천간 고속도로를 탈 수도 있다. 우리는 최근에 개통된 천안논산간 고속도로를 이용한 다음 공주서천간 고속도로를 타기로 했다. 그런데 이 두 고속도로는 바로 연결되지 않는다. 공주분기점에서 잠깐 대전당진간 고속도로로 들어선 다음 서공주 분기점에서 서천방향으로 가야 한다.

부여군 관광지도: 왼쪽 위에 무량사가 보인다.
 부여군 관광지도: 왼쪽 위에 무량사가 보인다.
ⓒ 부여군

관련사진보기


천안에서 논산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는 2002년 12월에 개통되었으니 역사가 한 7년 정도 되었다. 이에 비해 대전당진간 고속도로와 공주서천간 고속도로는 지난 5월28일 개통되었다. 최근에 공주를 지나가는 고속도로가 갑자기 세 개나 생긴 셈이다. 이로 인해 그동안 고속도로의 혜택을 별로 보지 못하던 공주와 청양 지역의 교통이 상당히 좋아졌다.

우리는 중간에 부여 나들목에서 나가 40번 국도를 이용,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에 있는 무량사로 향한다. 40번 국도는 부여와 보령을 잇는 중요한 도로이다. 부여의 은산과 내산 그리고 외산을 지난 다음 보령의 미산으로 이어진다. 면 소재지의 이름이 온통 산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지역으로는 산이 많은 편이다. 

녹음이 무성한 길을 따라 극락 세상으로

무량사 절집으로 가는 숲길
 무량사 절집으로 가는 숲길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외산면 소재지에 이르니 시골티가 물씬 풍긴다. 한 20년쯤 세월을 거꾸로 돌이킨 느낌이다. 면소재지에서 약 2㎞쯤 들어가면 무량사에 도착할 수 있다. 무량사 절집 아래에는 사하촌이 형성되어 있다. 이곳에서 법당까지는 다시 1㎞ 정도 숲길을 걸어야 한다. 무량사로 가다 보면 먼저 광명문(光明門)이라는 일주문을 만난다. 여기서 조금 더 숲속으로 걸어가면 다리가 나온다. 이 다리가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다리이다.

다리는 돌과 콘크리트로 만들었는데 이름도 없다. 다리에 이름을 붙이는 건 세속의 풍습이다. 속세를 떠나 극락으로 가는데 이름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극락에 들어서니 녹음이 더 푸른 것 같다. 여름에 극락은 푸른색인가 보다. 극락으로 들어가는 첫 관문은 천왕문이다. 그런데 천왕문으로 들어가기 전 오른쪽으로 당간지주가 서있다.

무량사 당간지주
 무량사 당간지주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이 당간지주는 마주보고 있는 두 개의 돌기둥이 완전한 상태다. 기둥 끝은 안쪽 면에서 바깥쪽으로 둥글게 다듬었고, 앞뒷면의 가장자리에는 테두리 선을 돌렸다. 전체적으로 소박하고 단아하다.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따라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계단을 따라 천왕문 안으로 들어선다. 안에는 모든 절들이 그렇듯 사천왕이 지키고 있다. 눈을 부릅뜨고 이를 드러내고 있지만 전혀 무섭지 않다. 우리에게 너무 친숙해서 그럴 것이다. 사천왕을 처음 보는 외국인들은 그로테스크와 유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로테스크와 유머는 현대예술이 가지는 대표적인 속성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천왕상은 예술적인 의미에서 상당히 현대적이다.  

극락전 주변에 모여 있는 보물들

석등과 오층석탑
 석등과 오층석탑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사천왕문에서 정면으로 박석이 깔린 길이 있다. 일종의 참도에 해당한다. 그 길이 끝나는 지점에 석등이 있고 그 뒤로 5층석탑이 있다. 그리고 석탑 뒤로 극락전이 있다. 석등과 석탑, 부처님이 일직선상에 있으며, 이들 세 가지 상징이 용(用)과 체(體) 그리고 상(相)을 보여준다. 등과 탑 그리고 전이 하나의 공간에 겹쳐 보인다.

가장 먼저 석등을 본다. 8각 석등이다. 불을 밝히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네모난 바닥돌 위로 3단의 받침돌을 쌓았다. 화사석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어 전체적으로 간결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옆에서 본 석등과 오층석탑
 옆에서 본 석등과 오층석탑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아래 받침돌은 연꽃 8잎이 조각되어 있다. 복련이다. 가운데 받침돌은 8각기둥으로 길게 세워져있다. 단순미가 특징이다. 윗 받침돌에는 8개의 앙련이 새겨져 있는데, 조각이 단순 소박하다. 중심인 화사석은 8면 중 4면은 넓고 4면은 좁다. 그리고 넓은 4면에 창이 뚫려 있다.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의 치켜 올림과 처마의 경사가 잘 어울려 경쾌한 모습이다. 전체적으로 지붕돌이 약간 큰 감이 있으나 경쾌한 곡선으로 인해 무거움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지붕돌 위에는 연꽃봉오리 모양의 장식이 있어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만들어진 시기는 나말여초인 10세기로 추정된다.

오층석탑
 오층석탑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석등 뒤에 있는 오층석탑은 익산 왕궁리 5층석탑과 같은 양식을 보여주는 고려 초기 작품이다. 1층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이 있고 그 위로 상륜이 있다. 기단은 둥글게 다듬은 두툼한 석재를 포함한 층단으로 괴임을 만들고, 그 위에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을 세웠다. 탑신(塔身)은 지붕돌과 몸돌을 한 층으로 하여 5층을 이루고 있다.

전체적으로 알맞은 비례를 보이고 있어 우아하면서도 장중한 느낌을 준다. 지붕돌은 얇고 넓으며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가 끝에서 가볍게 들려있다. 지붕돌과 밑의 받침은 딴 돌로 구성되어 있고 받침의 수는 위로 올라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탑의 꼭대기상륜은 노반과 복발 앙화로 이루어져 있다. 오층탑의 높이는 7.5m이다.

1971년 오층석탑을 해체 복원할 때 9점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탑신의 1층 몸돌에서는 금동제 아미타여래좌상, 지장보살상, 관음보살상의 삼존상이 나왔다. 3층에서는 금동보살상이 나왔고, 5층에서는 사리구(舍利具)가 나왔다. 사리구 수정병 안에는 청색 사리가 1개 들어 있었다. 오층석탑에서 나온 이들 유물은 충남 유형문화재 제100호로 지정되었다.

극락전에 모셔진 불상은 종교성도 예술성도 부족하다

무량사 극락전
 무량사 극락전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무량사의 중심건물은 누가 뭐래도 극락전이다. 그런데 이 건물이 중병을 앓아 수리 중이다. 건물 전체에 비게를 설치하고 작업을 한창 진행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어수선한 분위기다. 극락전은 흔치 않은 2층 불전으로 무량사의 상징이다. 외관상으로는 2층이지만 내부에서는 아래 위층이 구분되지 않고 하나로 트여 있다.

건물은 하층이 정면 5칸 측면 4칸이며, 상층은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위층은 아래층에 세운 높은 기둥이 그대로 연장되어 4면의 벽면기둥을 형성하고 있다. 원래는 빛을 받아들이기 위해 낮은 벽면에 창문을 설치했었는데 지금은 나무판으로 막아놓았다. 극락전은 다포식 건물로 18세기 가구기법(架構技法)과 세부기법(細部技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장중한 느낌이 든다.

극락전 아미타삼존상
 극락전 아미타삼존상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극락전 안에는 아미타삼존상이 모셔져 있다. 1633년에 만들어진 이 소조불은 가운데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있다. 이들 불상은 크기가 4-5m에 이르는 대불이다. 그래서 그런지 큰 법당 안이 꽉 차는 느낌이다. 그런데 부처님들이 크기만 하지 미적 감각이 조금은 떨어지는 것 같다. 예술성뿐 아니라 종교적인 경건성도 역시 떨어진다. 일반적으로 부처님에게서 볼 수 있는 원만한 미소가 부족하다.

법당 안 서쪽 나무 상자에는 무량사 괘불탱이 들어 있다. 미륵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여덟 구씩 16기의 화불을 그렸다고 하는데 볼 수가 없다. 자료 사진을 보니 미륵불이 연꽃을 들고 있다. 그리고 화려한 보관을 썼는데 보관에 6구의 불상이 그려져 있다. 붉은색과 녹색을 대비시켜 전체적으로 화려한 느낌을 준다. 이 괘불탱은 조선 인조 5년(1627)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무량사 괘불탱
 무량사 괘불탱
ⓒ 문화재청

관련사진보기


부여 무량사 지역은 생활권이 보령이다

무량사를 보고 나오는 길에 주차장 부근에 있는 광명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런데 시골 지역인데도 집안이 너무나 시원하다. 한 여름의 더위를 한방에 날려 보내는 차가운 기운이 느껴진다. 에어콘이 가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집의 대표 음식은 산채비빔밥이다. 만수산에서 채취한 산나물과 표고버섯을 사용할 뿐 아니라 바로 뜯어온 푸성귀를 곁들여 나물과 푸성귀의 맛을 잘 조화시켰다. 거기다 시원한 물김치를 함께 먹으니 비빔밥의 뻑뻑함이 한결 덜하다. 또 이 집은 재배한 표고버섯을 팔고 있다. 이 집은 윤종식씨 부부가 함께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무량 마을 입구의 비석들
 무량 마을 입구의 비석들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절을 나오면서 보니 이곳이 만수리 무량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고 그 옆에 공덕비들이 세워져 있다. 차를 내려 잠시 비석을 살펴보니 현감과 이장 등에 대한 송덕비이다. 무량사가 있는 이곳 외산면은 행정구역이 부여지만 생활권은 보령이다. 서해안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사람들은 이제 서울도 보령을 거쳐 간다.  

덧붙이는 글 | 무량사: 신라 문성왕(839-856) 때 범일국사(810-889)에 의해 창건되었다. 고려 고종(1213-1259) 때 중창하여 대가람을 형성했다. 임진왜란으로 불탄 후 인조(1623-1649) 때 재건되었다.
극락전을 비롯한 보물이 5점 있고 시도유형문화재, 유형문화재, 문화재자료 등이 다수 있다. 5점의 보물은 오층석탑, 석등, 극락전, 미륵불 괘불탱, 김시습 영정이다. 무량사는 매월당 김시습이 만년을 보내고 입적한 절로 유명하다.



태그:#무량사, #극락전, #오층석탑, #석등, #아미타삼존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