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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일)

새벽 5시, 자연의 빛이 주는 밝음에 깨어났다.
밖에 나가보니 어제 내렸던 비와 어우러진 이슬이 지천이다.
무엇보다도 잔디와 오이풀에 맺힌 이슬이 영롱했는데, 개망초에 맺힌 이슬은 이전에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옷과 신발이 흠뻑 젖는 줄도 모르고 이슬의 찬 기운을 온 몸으로 느끼며 햇살이 따가워질 때까지 이슬사진을 담았다.

개망초에 비이슬과 이슬이 맺혀있다.
▲ 개망초 개망초에 비이슬과 이슬이 맺혀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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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밥상>

소박한 밥상이라기보다는 '거룩한 밥상'이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어제 먹다 남은 상추와 왕씀배, 고추와 된장만으로 아침을 먹으니 설거지도 쉽다. 몸과 자연 모두가 좋은 식탁이다. 게다가 그들을 완전히 죽음으로 내몰지 않고 일부를 취하는 것이니 생명윤리와도 연결이 된다. 육식문화는 생명경시의 문화다. 생명줄을 온전히 끊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본의 법칙에 따라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다보니 결국에는 광우병 같은 것이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나 홀로 여행 기간 중 가장 푸짐했던 식단이다. 야채만 먹어도 배가 불렀다.
▲ 거룩한 밥상 나 홀로 여행 기간 중 가장 푸짐했던 식단이다. 야채만 먹어도 배가 불렀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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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몸 산책>

아침을 먹고 산책을 했다.

아무도 없는 곳이라 자연과 호흡하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다. 삼림욕도 할 겸 알몸으로 산중에 섰다. 얼마 만에 자연 앞에 '알몸'으로 서보는 것일까? 어릴 적 냇가에서 알몸으로 물놀이를 한 이후로는 처음인 듯하다. 알몸으로 마주대하는 자연, 그들도 알몸이다. 옷에 가려져 나조차도 제대로 보지 못했던 피부가 눈에 들어온다.

요즘이야 어느 곳에든지 보는 눈이 있어 요원한 일이겠지만 알몸으로 산림욕을 할 수 있는 곳이 생긴다면 어떨까도 싶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알몸산책, 오랜만에 몸이 좋아라 춤을 춘다.

알몸산책 중 만난 우리 꽃, 매화노루발, 그들도 알몸이다.
▲ 매화노루발 알몸산책 중 만난 우리 꽃, 매화노루발, 그들도 알몸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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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

12시쯤 되니 졸리다.

다른 때 같으면 졸음을 쫓았을 터인데 '실컷 잠을 자라'는 것도 혼자 노는 방법 중의 하나이이 자리에 누웠다. 곤하게 자고 있는데 불청객 파리가 잠을 깨운다. 문틈으로 두어 마리가 들어왔는가 보다. 귀찮은 존재지만 있을 땐 일어나야 할 때를 알려주는 고마운 존재다. 파리에게 감사를……. 그러나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파리채의 희생제물이 되었다. 공존할 수 없는 존재도 있는 법이라 합리화 시켰다.

점심은 고추 2개와 산책할 때 따온 산초이파리, 된장이 반찬이다. 이 역시 거룩한 밥상, 뻐꾸기 울음소리가 낮부터 들려온다.

아침 햇살에 일어난 곤충이 이슬을 마시고, 몸단장을 하고 있다.
▲ 칡덩굴에 맺힌 이슬과 곤충 아침 햇살에 일어난 곤충이 이슬을 마시고, 몸단장을 하고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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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문명의 이기를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지만 핸드폰과 텔레비전, 인터넷, 신문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줄어드는 것 같다. 내가 없으면 안 될 것만 같은 일들, 내가 없어도 여전히 잘 굴러갈 거다. 내가 없으면 안 된다고 착각하지 말 일이다.

인공소음이 없으니 작은 소리에도 민감해 진다.

벌이 날아가는데 마치 무슨 비행기가 지나가는 소리처럼 웅장하다. 메뚜기들이 발자국 소리에 놀라 뛰는 소리까지 딸깍딸깍 들린다. 도시에서 사라진 것들은 눈으로 보는 것만이 아니라 귀로 듣는 것까지 사라져버렸다. 보는 것과 듣는 것이 막히니 마음도 막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비 온뒤 물골의 하늘은 구름으로 치장을 했다.
▲ 맑은 하늘 비 온뒤 물골의 하늘은 구름으로 치장을 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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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비가 온 뒤인지라 구름으로 치장한 하늘이 좋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이 정도 더위면 도시에서는 에어컨 없이 견뎌내기 쉽지 않을 듯하다.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 낸 것들에 대한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또 다른 것을 만들지만 결국 그것 때문에 또 불편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지구온난화가 그 대표적인 표상이다. 그런데 지구환경을 파괴시키는 문명의 이기는 부유한 사람들 혹은 부유한 나라가 독점하고 있다. 아주 일부만 나눠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로인한 피해는 가난한 사람 혹은 제3세계 국가가 짊어지고 가도록 강요당한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성서의 말씀은 진리다.

이제 그들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
▲ 청개구리 이제 그들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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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오랜만에 펜으로 공책에 글을 쓰는 것도 좋지만, 도시에서 쥐어짜듯 쓰는 감동 없는 공허한 글이 아니라서 너무 좋다. 한낮인데도 개구리들이 논에서 울어댄다. 그리고 하모니를 이루듯 산새소리가 들려오고, 바람이 한 번 '휘익!' 지나가면 나뭇잎들도 사각사각 부대끼며 소리를 낸다.

글이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똑같은 문장을 썼다고 하더라도, 그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느냐가 그 글의 의미를 살려내는 것이다. 삶과 괴리되어있는 만큼 맛없는 글이 되는 것은 결국 '……이다!'가 아니라 '……이고 싶다!'는 허구적인, 자기도 살아보지 못한 글일 수밖에 없다.

오늘 만난 이슬, 청개구리, 곤충, 꽃, 바람…….

수없이 많은 글감들이 메마른 샘을 채워주고 있다. 어제와 오늘 같은 날들이 한 달여 만 주어진다면 사진과 글이 어우러진 정제된 책 한 권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돈>

도대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무엇일까?

내가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근저에도 결국 돈이라는 놈이 깊이 자리하고 있다. 그동안 나의 삶의 태도에 있어 성실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최선을 다해왔다고 자부했지만 직장과 집, 개인적으로도 돈 문제가 나를 괴롭히고 있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맘몬의 신조에 충성하는 현대인들과 '그것만이 아니야!'라며 살지만 결국 돈 문제로 고민하는 나와는 거리가 멀지 않다. 돈은 현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돈이 나쁜 것이 아니라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돈의 효용이 달라지는 것이니 애써 부자가 되지 않겠다고 하고, 부자를 경멸하는 것은 자신의 능력 없음을 포장하는 포장지가 아닐까 싶다.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나다. 돈에 대해 초연한 척 하면서도 돈 없으면 불안해서 못 견디는 사람 말이다.

영롱한 이슬방울이 싱그럽다.
▲ 이슬 영롱한 이슬방울이 싱그럽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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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있는 훈련>

홀로 있는 시간을 가져본 것이 몇 년 만인지 알 수 없다.
사색은 하되 홀로 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딱히 그간의 삶의 여정에 홀로 있었던 시간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물론 단편적인 시간들 속에서는 있었지만, 이렇게 작정하고 3박 4일을 혼자 있겠노라고 세상과 결별한 적은 없었다. 원하지 않게 혼자 있는 시간이 있었지만 그때 얼마나 사람을 그리워했는가?

전화 한 통이면 30분 거리에 있는 후배에게 전화를 하려다가 말았다. 괜스레 이번 여행의 목적이 허망해질 것 같아서이다.

낮에 냇가로 나가 견지낚시나 해서 매운탕을 끓여 먹을까 하다 생각을 바꿨다. 여기 있는 동안에라도 거룩한 밥상에 충실해야겠다는 생각, 나의 탐심을 위해 생명을 죽이는 일이 그리 좋은 일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젖을 빠는 아이들, 그들의 식탁은 얼마나 거룩한가? 그러나 아이들이 이유식을 먹고 점점 다양한 음식들을 하나 둘 배워가면서 죽은 음식을 접하게 된다.

덧붙이는 글 | 3박 4일간의 여행기 두 번째 입니다. 물골에서 '나 홀로 여행'을 하며 썻던 일기를 정리했습니다. 곧 휴가철, 나 홀로 여행을 계획하는 것도 좋을 듯하여 소개해 드립니다.



태그:#나 홀로 여행, #거룩한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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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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