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 공주형무소 재소자와 보도연맹원을 총살하는 과정에 경찰이 직접 개입했음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땅 속에서도 드러났다.
충남 공주 왕촌 금강변에서 유해발굴작업을 벌이고 있는 '진실화해위원회 공주 왕촌 유해발굴팀'(팀장 충북대 박선주 교수)은 5곳의 집단암매장 추정지 중 2번째 구덩이에서 경찰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칼빈소총 탄피가 무더기로 나왔다고 25일 밝혔다.
유해발굴팀은 발굴 12일째를 맞고 있는 이날 현재까지 5곳의 유해 암매장추정지 중 2곳의 땅 속을 파헤쳤다. 지금까지 발굴된 유해는 약 70~80여 구에 이른다.
각각 폭 2m와 길이 20여m에 이르는 구덩이 속은 당시의 처참한 살해 현장을 고스란히 재현해 내고 있었다.
두 번째 구덩이 유해발굴과정에서는 칼빈소총 탄피가 M-1 소총 탄피와 함께 무더기로 발굴됐다. 첫 번째 암매장지에서는 M-1 소총 탄피만이 주로 나타났었다.
박 교수는 "증언에 따르면 당시 군인들이 M-1 소총을 사용했고, 경찰이 칼빈소총을 사용했다"며 "칼빈 소총 탄피는 총살과정에 군인은 물론 경찰이 직접 개입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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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번째 암매장지 발굴과정에서 발견된 칼빈소총 탄피. 경찰이 군인과 함께 학살과정에 직접 참여한 물증으로 꼽히고 있다. |
ⓒ 심규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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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 당시 암매장지로 끌려가고 있는 학살직전 사진. 오른쪽 뒷쪽 헌병과 공주형무소 특경대원(오른쪽 앞쪽), 경찰로 보이는(왼쪽 앞쪽) 사람들이 총을 들고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다. 이 사진은 당시 영국 사진기자가 촬영한 것이다. |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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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당시 영국 사진기자가 촬영한 총살 직전 희생자들을 트럭에 태워 끌고가는 현장 사진 속에도 M-1 소총을 든 헌병과 칼빈 소총을 든 경찰 및 형무소 특경대원의 모습이 담겨 있다.
두 번째 구덩이에서 희생된 사람들은 대부분 보도연맹원 등 민간인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박 교수는 "첫 번째 구덩이에서는 주로 재소자들이 입었던 회색 단추가 발견된 반면 두 번째 구덩이에서는 흰색 단추가 주로 발굴되고 있다"며 "두 번째 구덩이에서 희생된 사람들은 형무소 재소자가 아닌 민간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총탄이 관통해 두개골에 동그랗게 구멍이 뻥 뚫린 유해도 모습을 드러냈다.
유해발굴팀장인 박선주 교수는 "두개골에 총상을 입은 희생자도 확인된다"며 "많은 탄피량 등으로 미루어 볼 때 군경이 총을 구덩이 안 사람들을 향해 난사한 듯하다"고 말했다.
다른 한편 두 번째 암매장지의 경우 유해 상당수가 다른 사람들에 의해 도굴된 것으로 나타났다. 발굴팀은 당시 불치병 등에 약재로 사용하기 위해 유해를 도굴해 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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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쏟아져 나오는 집단희생자 유해. 유해가 서로 뒤엉켜 있다 (제1암매장지) |
ⓒ 심규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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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단희생암매장지 제 2지점 발굴 현장. 앞쪽에 비해 뒷쪽이 유해발굴량이 적은 것은 다른 사람에의해 도굴된 때문으로 추정되고 있다. |
ⓒ 심규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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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팀은 내달 초 무렵 중간설명회를 열고 지금까지의 유해 발굴 내용과 이후 발굴 계획을 유가족 및 언론에 설명할 예정이다.
공주 왕촌 살구쟁이 집단희생 현장은 1950년 7월 중순경 당시 공주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재소자와 국민보도연맹원 500~700여 명이 트럭으로 실려와 국군과 경찰에 의해 집단 희생된 곳이다. 이곳에서 발굴된 유해는 충북대 내에 위치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 추모관'에 안치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