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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창사48주년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선덕여왕 역할을 맡은 배우 이요원. MBC <생방송 오늘 아침>이 지난 23일, 선덕여왕과 박근혜 전 대표가 닮았다는 내용의 방송을 내보내 누리꾼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MBC 창사48주년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선덕여왕 역할을 맡은 배우 이요원. MBC <생방송 오늘 아침>이 지난 23일, 선덕여왕과 박근혜 전 대표가 닮았다는 내용의 방송을 내보내 누리꾼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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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볼거리와 탄탄한 스토리로 30%가 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MBC 월화드라마 선덕여왕!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통치권자의 이야기를 그린 이 드라마가 주목을 받으면서 정치권에서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드라마가 시작되기 전부터 박근혜 전 대표가 선덕여왕과 종종 비교돼 왔었기 때문!

실제로 선덕여왕과 박근혜 전 대표는 지지기반이 신라의 영토인 대구라는 점, 최고 지도자의 딸로 태어나 일찍부터 알게 모르게 대권 수업을 받았다는 점, 40대 후반에 정계에 입문해 여성 최고의 지도자가 됐다는 점 등 비슷한 부분이 많아 더욱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데…. - 6월 23일 MBC <생방송 오늘 아침> 방송 중 일부

이 글을 쓰기 전까지 나는 몇 번이나 망설였다. 이런 치졸한 논의에 나까지 휘말려들어 한몫 보태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불문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불현듯 <야망의 세월>(1990~1991)이라는 주말 연속극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주인공을 일약 영웅으로 만든 그 드라마는 실화인 것처럼 세상에 알려졌다. 그 드라마에 터무니없는 과장과 왜곡이 있었다는 것이 알려지기까지는 애석하게도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주인공의 모델이 된 인물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고 덤으로 주인공 역을 연기한 그 낯익은 배우는 장관 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만약 그 드라마가 없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그 드라마가 없었더라면 조중동이 그를 지원했을까? 아울러 그가 서울시장에 당선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드라마는 참으로 위대했다. 그의 온갖 무능과 독선과 아집도, 게다가 흔히 '전과 14범'이라고 명명되는 그 지워질 수 없는 기록까지도, 드라마가 제창한 '성공신화'에 송두리째 호도되어 버리고 말았으니까.

박근혜 전 대표와 선덕여왕이 닮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게 <조선>과 <동아>는 선덕여왕과 박근혜가 비슷하다는, 이 기사 같지도 않은 기사를 주요하게 보도했다. 특히 <동아>는 일간지는 물론 <주간동아>에까지 역사학자를 동원해서 파격적인 지면을 할애했다.

한국 현대사에서 1952년 임진생으로 이렇듯 운명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런 맥락에서 박근혜는 우리 시대의 '살아 있는 역사'로 10년 남짓한 정치 일정 중 갖은 세파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의 뜻을 초지일관하는 냉철함을 견지해왔다 하겠다. 그는 '국민의 희망' '무관의 제왕' '얼음공주' '수첩공주' '구원투수' '아테네 여신' 등으로 불리면서 박근혜 신드롬을 불러일으켜 국민의 두터운 지지를 이끌어냈다.

대구 동화사의 말사인 부인사에 가면 선덕여왕의 영정이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데, 그의 미소에 박근혜의 미소가 오버랩되면서 1400년 전에 죽은 선덕여왕이 환생한 듯 보인다. 공교롭게도 박근혜의 정치적 기반 또한 옛 신라의 영토인 대구다. 선덕여왕과 박근혜는 여러 면에서 '닮은꼴'임이 확인되는데, 무엇보다도 애민의식을 첫손에 꼽을 수 있다. 여왕이 즉위년에 진휼책으로 백성을 구제했듯 박근혜도 외할머니 이경령(李慶齡), 어머니 육영수(陸英修)의 영향을 받으며 그들의 베풂을 어릴 적부터 보고 자란 덕분에 후덕한 인심을 지녔고 불우한 소외계층을 위한 복지사업에 남다른 관심이 있다.

선덕과 박근혜는 둘 다 최고지도자의 장녀로 태어나 일찌감치 알게 모르게 대권수업을 받았으며, 독실한 종교인이라는 점도 닮은꼴이다. 또한 두 사람 다 무자(無子)로 40대 중반 이후 정계에 입문해 여성 최고지도자가 됐으며, '조국과 결혼했다'는 투철한 국가관을 가졌고, 통일을 지향한 것도 닮은꼴이라 하겠다. - <주간동아> 이영철 목원대 겸임교수

이만 하면 이미 2012 대선 공작은 시작된 셈이다. 보수언론들은 이토록 미래지향적(?)인데 이른바 진보언론이라고 하는 <한겨레>나 <경향> 그리고 <오마이뉴스> 등의 '박근혜 보도'는 무디기 짝이 없다. 왜 그런 것일까?  박근혜 전 대표는 차기 대선에서 부동의 1위를 한 번도 놓쳐 본 일이 없다.

차라리 <조선>과 <동아>에 보이는 누리꾼들의 지적이 더 날카로워 보인다.

코너에 몰린 MBC가 교활한 수법으로 박근혜를 등에 업고 이용하려고 아부를 하는구나. 속 보인다 이 넘들아!! - '동아닷컴' 최창락

저런 드라마가 어떤 인물을 간접적으로 띄우는 목적으로 방영되는 경우도 있지만, 역으로 특정 정치인의 능력과 철학은 외면하고 비현실적인 면을 부각시킨다면 정치인에겐 마이너스로 작용할 소지가 크다. 특히 시청자가 무의식적으로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비교하며 시청하게 할 때는 역작용의 가능성이 더 커진다. 솔직히 MBC를 믿지 못하겠다. - '조선닷컴' 임규덕

MBC는 다음 질문에 좀 답해봐라. 선덕여왕 애비가 총칼로 집권했냐? 선덕여왕 애비가 남산에 시민들 불러다가 고문했냐? 선덕여왕 애비가 낮에는 막걸리 먹다가 밤에 시바스리갈 먹다가 총 맞아 죽었냐? 선덕여왕 애비가 다른 사람 장학회 빼앗아서 자식들에게 물려줬냐? - '조선닷컴' 남정호

선덕과 박근혜, 사람 대하는 법부터 다르다

선덕여왕과 박근혜 전 대표는 정말 닮은 것일까? 아래 설화를 보자.

"신라시대에 지귀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선덕여왕의 아름다움을 사모하여 너무나 고민한 나머지 몸이 점점 여위어 갔다. 어느 날 여왕이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갔다가 지귀의 이야기를 듣고 그를 부르도록 했다. 여왕이 절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는 동안 지귀는 탑 아래에서 지쳐 잠이 들었다. 기도를 마치고 나오던 여왕은 잠든 지귀의 측은한 모습을 보고 자기의 금팔찌를 뽑아서 그의 가슴에 조용히 올려놓고 갔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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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누군가를 흠모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하지만 상대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의 감정을 세상에 드러내 상대를 불편하게 만든다면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선덕은 지귀를 조금 모자란 사람으로 보아 측은히 여긴 나머지 금팔찌를 풀어주었다. 반면 박근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살아계실 때 박근혜 전 대표와 저와 혼담이 있었다… 서로가 좋게 보는 그런 사이"라고 토로한 허아무개씨에 대해 "대꾸할 가치도 없는 비정상적 비이성적 내용으로 이를 다루는 것 자체가 품격의 문제다"라고 말한 데 이어 명예훼손죄로 고소했다. 그는 현재 복역 중이다.

드라마에서는 선덕여왕을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은 여성 지도자로 부각시킬 것이라고 한다. 신라의 삼국통일이 정당했는지에 관한 논의를 하지 않는다면 선덕여왕은 비교적 양질의 국가 지도자였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박 전 대표를 선덕여왕과 닮았다고 말하는 것일 터이다. 또 이런 심리의 저변에는 그가 국가 지도자가 되기를, 다시 말해 차기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면 박근혜는 국가 지도자로서 자격이 있는 인물인가? 사람들은 그가 박정희의 딸이라는 점을 높이 산다. 반대로 박정희의 딸이므로 안 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문제는 그가 박정희의 딸이라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박정희를 정당하다고 확신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또 사람들은 그가 박정희에게 지도자 수업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것이 지도자 수업일까? 박정희는 18년 통치 기간 중 8년 반 동안 계엄령이나 위수령 등의 비상대권을 남용했다. 그에게 재산을 강탈당한 이도 있고 무고하게 투옥된 이는 1만4000명에 이르며 억울하게 죽은 이들도 부지기수다. 이런 것을 보고 배우는 것도 지도자 수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

21세기에 조국근대화 바라는 이가 미래지도자?

박정희는 7·4남북공동성명을 유신독재의 연장책으로 이용했다. 다시 말해 민족 문제를 자신의 권력 연장에 써먹은 것이다. 박근혜 역시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이회창과의 차별화를 위해 북에 가서 김정일을 만나고 온 적이 있다. 그는 한때 김정일에 대한 미담을 늘어놓았다. 그러더니 노무현 정부 때에는 대북 강경파로 표변했다. 이런 행태는 그가 아버지를 닮았다는 혐의를 지우지 못하게 한다.

현대는 머무르기만 해도 뒤떨어지는 경쟁의 시대다. 그런데 박근혜의 시각은 여전히 '조국근대화'라는 구닥다리 시간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이건 이명박 대통령도 마찬가지지만).

"조국 근대화라는 아버지의 40년 전 소망을 평생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파독 광부를 회상하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조국근대화, 너무 낡은 개념 아닌가?박 전 대표는 변화를 거부하는 정도가 아니라 어느 면에서는 변화를 혐오하는 수준이다. 그래서 보안법도 사학법도 작통권도, 그 아무 것도 손대면 안 된다고 결사반대했다. 이런 인물을 미래의 지도자감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박 전 대표가 선덕여왕을 닮았다는 주장은 한 마디로 말해 어불성설이다. 무엇보다도 그것에는 불온한 저의가 담겨져 있다. 그는 단지 여론 지지율 30% 정도의 차기 대권 주자일 따름이다. 이 정도 지지율은 박찬종이나 이인제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그를 국가 지도자의 반열에 올려놓으려는 발상은 성급하고도 어리석다.


태그:#선덕여왕, #박근혜, #대사관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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