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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날도 좋다. 저 뜨거운 햇살 아래 이불 빨래를 해서 널면 정말 좋겠구나. 마늘을 몇 접 더 사서 겉껍질 까서 말려 놓으면 좋을 텐데.. 후다닥 베란다에 이불을 빨아 널고, 대출 해 온 책을 챙겨서 나갈 준비를 합니다. 따가운 햇살이 덥다기보다 그 햇살에 해야 할 일을 우선순위로 매겨보는 아줌맙니다. 마늘은 다음에 사서 말리기로 하고 대출해 온 책을 챙겨서 집을 나섭니다.

 

책이야 아무데서나 읽을 수 있지요. 설거지 하다가도, 빨래를 하다가도(세탁기가 해주는 동안), 읽을 수 있지만 도서관에 가서 읽고 싶었습니다. 집에서 걸어 10분 거리에 멋진 도서관이 있습니다. 책에 관심 있는 엄마들에게 문자를 어제 보냈습니다.

 

'번개, 낼 수욜 00도서관 일층 10시에서 11시까지 참석 유무 문자부탁.'

 

아주 절친한 사이들은 아닙니다.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정도지요. 전업주부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들 책을 많이 읽습니다. 전업주부지만, 직장을 가진 엄마들처럼 바쁜 것도 공통점입니다. 참석 가능한 사람은 저와 다른 한 사람이군요.

 

책 번개를 제안했던 것은 그냥 오로지 책이야기만 하고 싶어서입니다. 모두 걸어서 도서관에 10분 정도면 도착하는 거리에 살고 있으니, 이동거리는 왕복 20분으로 하고요. 도착하자마자 30분 동안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빌립니다. 어떤 책이라도 좋습니다. 그러고 나서 30분 동안은 그 책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왜 빌렸는지, 잠시 읽었더니 이런 것이 좋더라... 번개 모임을 위해 미리 읽고 와야 하는 부담도 없고, 내가 선택한 책이니 상대방에게 할 이야기도 있고, 도서관에 온 김에 식구들 것까지 책을 더 빌릴 수도 있고. 그리고 11시가 되면 정리를 바로 하고, 서로 헤어지는 것입니다.

 

1시간 20분 정도로 오로지 아줌마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지요. 매실차를 물통에 넣고, 얼음을 동동 띄워가지고 다기를 준비해서 가져갔습니다. 책은 <아직도 가야할 길>과 <현의 노래>를 준비했습니다. 도서관 일 층 옆에는 작은 정원이 있습니다. 탁자와 의자를 그늘로 옮겨 놓고 다른 아줌마를 기다립니다. 그 분은 오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의 마을>이라는 어린이 동화책을 가지고 오셨군요. (그 분은 전직 사서입니다.)

 

서로 책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은 읽으면서 그냥 잔잔한 분위기를 느꼈어요., 이런 내용은 불교경전에서 읽은 내용이고 어느 부분들은 이미 그렇게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어요. 그러나 같은 내용을 서양인의 관점에서 더 쉽게 풀이하면서 인생을 신이 관리하는 측면으로만 보지 말고, 스스로가 인생의 문제들을 직접 해결해 가며 살아보라는 언어표현은 읽기에 경전보다 더 쉽게 다가오기도 했어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의 마을>은 일단 그림이 예뻐서 골랐어요. 첫 장을 넘기니 울긋불긋 꽃 대궐 같은 마을 모습이 예전 직장에서 근무할 때 보았던 마을 모습 같아요. 그런데 이렇게 평화롭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끝에 반전이 있어요. 지은이는 일본사람인데, 아프가니스탄의  한 마을을 여행하면서 겪은 경험을 책으로 펴 낸 거네요."

 

"전쟁이 무섭지요. 내일이 6.25니 아이에게 잘 맞는 책을 고르셨네요."

 

오전이지만, 햇살은 점 점 더 넓어지고 그늘은 점 점 더 짧아지는 군요. 바람이라도 있어 다행입니다. 11시. 중등, 초등 두 아이를 키우고, 시부모님을 모시고 있고, 친정아버지가 병상에 계신 아줌마는 그 와중에도 이렇게 나왔습니다. 가방에 책을 가득 담아서 우린 헤어질 때도 번개처럼 빠르게 각자 갈 길을 갑니다. 언제가 될 지 알 수 없지만, 다음에 또 책 번개를 하기로 하면서...


#도서관#책#번개#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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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위생사 . 구강건강교육 하는 치과위생사. 이웃들 이야기와 아이들 학교 교육, 책, 영화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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