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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나에게도 여행이 밥 먹는 것만큼이나 쉬웠던 적이 있었다. 주말이면 혼자든 아니면 여럿이든 산으로 들로 빨빨 거리고 돌아다녔다. 하지만 아이 둘을 가진 지금의 나에겐 여행이란 한없이 풀기 어려운 숙제다. 더군다나 혼자만의 여행이란…. 며칠 전, 화분에 물을 주다 베란다 가득 들어온 햇살을 보고 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행이 꼭 멀리 가야만 여행인가? 길 따라 걸어가면 그게 여행인 게지.' 거실로 들어온 나는 놀고 있던 둘째 아이를 안고 옆집으로 달려갔다.
 

"세 시간만 맡아줘."

 

"추운 게 제일 징해!"

 

아파트를 벗어나 큰길로 향했다. 걸어갈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 저 앞에 개미마을로 가는 마을버스가 서는 게 보였다. 이미 늦었을 터였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승강장을 향해 냅다 뛰었다. 버스는 내가 정류장에 채 도착하기도 전에 출발하고 말았다. 다음 버스를 기다릴까 하다 그냥 걷기로 했다. 그러고는 헐렁거리는 운동화 끈을 바짝 조였다.

 

문화공원을 지나고, 동성교회를 지나 홍제3동 동사무소 근처에 이르자 오르막길이 시작되었다. 비탈진 길을 걸으며 몇 해 전에 보았던 개미마을을 떠올렸다. 서울 안에 있으면서도 서울 같지 않은 곳, 작고 아담한 뜰과 돌로 쌓은 담, 좁은 골목길이 있어 고향 마을 같이 푸근함을 주던 곳, 내 사는 동네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세상에 온 듯한 느낌을 들게 했던 곳이었다.

 

개미마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금강빌라를 지나자 오밀조밀 모여 있는 낡은 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돌리니 멀리 산비탈 꼭대기까지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집들의 행렬도 보였다. 마을 초입에 있는 구멍가게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친구를 배웅하러 나온 주인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멋쩍은 마음에 살 것도 없으면서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아이스크림이 담긴 냉장고 문을 여니 할머니가 넣어둔 생선이며, 나물, 떡 등이 아이스크림보다 자리를 더 많이 차지하고 있었다.

 

"여기 있는 거 다 팔아요?"

"그럼 다 팔지."

"떡도 팔아요?"

 

실없는 농담에 할머니가 피식 웃었다. 그 틈을 타 궁금한 것을 물었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개미처럼 죽어라 일만 해서 먹고 산다고 개미마을이라고 붙여졌지. 한 30년 가까이 살았나? 전라도 남원에서 올라와 처음 자리 잡은 곳이 이곳이여. 여기서 3남매 키우면서 쭉 살았는데 딸 둘은 결혼했고, 아들은 올 가을에 장가 가. 다른 것은 괜찮은데 추운 것이 제일 징해. 그것만 빼면 살만 하지. 보상? 땅 가진 사람들이야 괜찮을지 몰라도 우리 같이 건물만 가진 사람들은 보상도 얼마 못 받어. 나야 그냥 여기서 집 고쳐서 살믄 좋겄어. 그래도 가라고 하믄 가야지 어쩔 수 있남. 아, 근디 왜 자꾸 찍어? 이쁘지도 않은 얼굴을."

 

아이스크림 냉장고에서 생선 비린내가 묻어나는 아이스크림 하나를 꺼내 들고 밖으로 나왔다. 가격이 예전 그대로인 게 조금 마음에 걸렸다. 마을에는 개발에 대한 주민의 의견을 담은 구호들이 담벼락 곳곳에 적혀 있었다.

 

'개미마을이 친환경 황금마을로-황금마을 일명 개미마을공동주택추진위원회'

'공사비가 많이 들어가는 난개발 반대. 개미마을은 가난해서 이주가 좋아.'

 

구호 속에 기대와 불안이 담겨 있었다.

 

"우리는요 산도 가지고 있어요"

 

마을은 고요했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어쩌다 보는 사람들도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나를 경계하는 듯했다. 나와 마주칠 때면 할머니도, 여중생도, 아주머니도 걸음이 빨라졌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내가 미안해질 정도였다. 개미마을 위쪽으로 느릿느릿 걸어가는데 아이들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마을에 와서 유일하게 들은 소란스러움이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길에서 1미터 정도 내려간 곳에 있는 마당에서 여자아이 둘과 남자 아이 한명이 놀고 있었다.

 

"엄마, 누가 와서 사진 찍어."

 

말은 그렇게 해 놓고 아이는 나를 향해 가까이 다가왔다. 다른 두 녀석도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뒤를 따랐다.

 

"몇 살이야?"

"일곱 살요. 애도 나랑 같은 일곱 살이고요, 얘는 내 동생 소정인데요. 네 살이에요."

"어느 유치원 다니니?"

"**캠퍼스요."

"아, 영어유치원?"

"네."

 

영어로 인사를 해 보라는 말에 아이는 자기소개까지 했다.

 

"애는 영어 이름이 미르고요, 나는 앤이에요."

"그래? 멋진 이름이네. 아줌마도 일곱 살짜리 아들이 있어."

 

그 말에 아이들은 아이 이름이 뭐고, 어디 유치원 다니냐 물으며 길 위로 올라왔다. 그러더니 시키지도 않았는데 미르가 텀블링을 하고, 뒤이어 앤은 발레 동작을 해 보였다. 보여줄 게 마땅치 않는지 막내 소정이는 내 앞에서 연신 V자를 하며 귀여운 표정을 지었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재롱을 떠는 아이들 모습이 발랄했다. 아이들과 한참을 노닥거리다 일어서는데 남자아이가 자랑스레 말을 했다.

 

"우리 집은요, 산도 있어요."

"산을 가지고 있다고?"

"네."

"집이 어딘데?"

"저기요."

 

아이가 가리킨 쪽을 보니 계단을 한참 올라가야 나오는 산꼭대기 집이었다. 대답을 마친 미르가 마을 아래쪽으로 뛰어가더니 가겟집을 향해 꾸벅 인사를 하고는 골목으로 사라졌다. 

 

사라지고 없는 골목

 

개미마을에서는 번듯한 집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부분 되는 대로 재료를 가져다가 모양새를 갖춰 집을 지었을 뿐 허술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지붕이 날아갈까봐 돌이나 낡은 그릇, 타이어 따위로 지붕을 눌러 놓은 집, 비닐로 창을 대신 한 집, 각각 모양이 다른 나무판자들로 벽을 이어붙인 집, 언제 칠한 것인지 모를 정도로 심하게 벗겨진 페인트 등은 안쓰러움마저 느껴졌다.

 

빈 집도 적지 않았다. 예전과 달리 삭막하게 느껴지는 마을 풍경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마을버스 종점에 다다랐다. 기억대로라면 그곳부터 담쟁이가 우거진 돌담이 시작되고, 정겨운 골목길이 갈래갈래 나눠지며, 작은 뜰을 가진 집들이 앙증맞게 자리하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기억과 달리 그곳엔 흙더미와 함께 굴삭기 소리만 요란했다. 공원 조성을 위한 공사 중이라는 안내판만 덩그러니 서 있을 뿐 기억 속의 골목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씁쓸한 마음으로 잠시 서있는데 마을 공동 화장실에서 작업복 차림의 남성이 나왔다. 공사를 담당하고 있는 직원 중 한명이었다.

 

"철거된 지는 좀 됐죠. 마지막까지 남아 계시던 분들 중에는 보상 때문이 아니라 고향 같은 곳을 떠나기 싫어하던 분들도 있었어요. 왜 안 그렇겠어요? 몇 십 년을 여기서 사셨는데. 그래도 마을은 개발이 돼야 해요. 이 아래 있는 집들도 집 모양만 갖췄지 낡아서 언제 무너질지 몰라요. 쓰레기는 또 얼마나 나오는지. 골목도 좁고, 계단이 많아서 청소차가 거기까지 못 들어가니까 산에 갖다 묻어요. 공사하면서 보니까 전부 다 쓰레기더라고요."

 

비오는 날 다시 찾은 개미마을

 

비 내리는 토요일 오전에 마을버스를 타고 다시 개미마을을 찾았다. 미르네 집도 한 번 가보고 싶었고, 나뭇가지처럼 뻗어있는 골목과 산비탈 위에 요새처럼 버티고 있는 집 구경을 하기 위해서였다.

 

버드나무 가게, 연탄창고 삼거리, 개미마을이라는 소박한 이름을 가진 승강장들을 지나 종점에 도착했다. 마을은 여전히 조용했고 집안에서는 사람들 말소리는 물론, 텔레비전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어느 집 화장실 앞에서는 나프탈렌 냄새가 독하게 풍겨나왔고, 어느 골목에서는 거미줄처럼 엉켜있는 낮은 전깃줄을 피하느라 고개를 숙여야 했다. 끊길 것 같은 길은 산 속 깊은 곳까지 이어졌고, 도무지 사람이 살 것 같지 집의 좁은 마당에도 상추며 쑥갓같은 푸성귀가 자라고 있었다.

 

발소리를 죽여 가며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도둑고양이처럼 골목 여기저기를 기웃기웃하다 어느 빈 집 앞에 놓여진 의자 하나를 발견했다. 떠나간 주인은 그곳에서 무엇을 바라보았을지도 궁금하고,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후들거리던 다리도 쉬게 할 요량으로 의자에 앉아 보았다. 서울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산으로 둘러싸인 게 어느 깊은 산골에 위치한 오지마을 같았다.

 

그렇게 십여 분을 앉아 있는데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어쩌다 한번 와서 보는 내 눈에는 분명 평화스럽고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곳이었지만, 불편함을 안고 그 마을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런 감상이 미안하게 느껴져서였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줌마네웹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반나절 여행, #오지마을, #개미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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