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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0일 여섯 명이 공권력 진압 과정에서 불타죽은 용산 4가, 남일당 참사 현장 바로 뒤편에 있는 레아호프 2층에 앉아 이 글을 쓴다. 고 이상림 열사가 운영하던 가게다. 일흔 하나. 이 동네에서 갈빗집만 30여 년을 했던 평범한 서민이었다. 이상림 열사는 아들과 함께 망루에 올랐다. 아들 내외는 근처에서 노점상을 했었다. 장사가 안 돼 2006년 부자가 돈을 모아 이곳 레아호프를 열었다. 평생을 일했지만 인테리어 하고 나니 돈이 없어, 전세도 못하고 월세를 주며 살았다. 생활집은 건물 4층 옥탑을 얻어 살았다.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고소득 세입자들의 실제 모습이다.

 

부자는 가족들에게 어딘가에 잠시 며칠 다녀온다는 말만 남기고, 망루로 올랐다. 가족들을 지키겠다는 굳은 결의였다. 결과는 어떠했는가. 이상림 열사는 의문사를 당했고, 아들은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왔지만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그마저도 병원에서 치료받던 중 강제 구인되어, 방화치사로 구속되었다. 아버지를 아들이 방화를 해서 죽였다는 검찰 발표였다.

 

그 가게를 다시 열었다. 아래층에선 미술가들의 개인전이 열리고, 위층엔 촛불미디어센터가 들어섰다.

 

용산 참사의 진실을 밝혀 나가기가 힘들다  

 

지난 다섯 달.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용산 참사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언론은 간간이  용산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사람들은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갔다. 정부는 단 한 차례의 추모집회도 허가하지 않고, 모든 추모의 거리를 봉쇄하고 있다. 연대하는 촛불 시민들 300여 명을 전문시위꾼으로 찍어 연행하고, 범국민대책위 핵심 관계자들을 수배, 구속, 소환하며 전방위적인 공안 탄압을 펼치고 있다.

 

1980년 광주 이래 국가공권력에 의한 최대의 양민학살이 분명한데도 사람들은 무덤덤하다. 일상 속에서 너무도 많은 죽음을 경험하며 살고 있으니 이해도 된다. 890만 비정규직, 300만 청년실업자, 이미 고사 상태에 들어간 300만 농민, 밀려날 대로 밀려나 더 이상 밀려날 곳이 없는 도시 빈민, 영세상인들. 이처럼 살아서도 죽은 목숨들이 도처에 깔려 있는 이 공동묘지와 같은 사회에서 어느 누가 타인의 죽음을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고 애도할 틈이 있겠는가.

 

"여기 사람이 있다"라는 외침을 들을 살아 있는 귀가, 눈이 어디에 있겠는가. 만약 그런 눈과 귀가 도처에 깔려 있다고 생각했으면 저들이 단 하루만에 경찰특공대를 동원해 화공약품 투성의 망루를 쳤겠는가. 12시간만에 유가족들의 동의도 없이 사체를 부검하고 사건을 은폐, 축소했겠는가.

 

그래서 더더욱 용산 참사의 진실을 밝혀 나가기가 힘들다. 저들의 탄압은 지금 시작된 것이 아니라 수년 전부터, 수십 년 전부터 계획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용산 참사의 진실을 밝히려면 이 숨겨진 구조들과 음모와 협작과 배후들을 건드리지 않으면 안 된다. 왜 평생 경찰서 출입 한번 해보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생존권적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지. 최소한의 저항이 곧 체제전복의 불온 세력이 되어야 하고, 가장 절박한 목소리들이 테러리스트로 지목되어야 하는지, 상식적인 요구가 브로커들의 요구로 매도당해야 하는지. 그 드러나지 않은 뿌리들과, 머리들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중 현 단계에서 가장 먼저 넘어서야 할 것은 오히려 우리 내부에 있는지도 모른다. 용산 투쟁 과정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사실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 경찰, 검찰의 예상된 대응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시민사회 내부의 냉소와 패배감이었다. 무기력이었다. 작은 사심들이었고, 합법주의에 갇혀 다른 창조적 행동을 기획하지 못하는 길들여진 의식들이었다. 가슴과 분노가 빠진 채 정세에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이며 힘없는 그림을 그려가는 차가운 머리들이었다.

 

관심이 줄어들수록 탄압은 더해갔다

 

수만 명의 분노한 대열은 금세 5천으로, 2천으로, 1천으로, 5백으로 줄어갔다. 언론에 나오는 빈도도 그 수만큼 줄어들어 갔다. 그럴수록 탄압은 두 배로, 세 배로, 네 배로 더해갔다.

 

하지만 진실규명 투쟁을 멈출 수는 없었다. 명백한 공권력 학살을 그냥 덮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 이 싸움은 철거민들만의 싸움이어서는 안 되었다. 부문으로 설정될 싸움이 아니었다. 용산 학살을 통해 우리가 만들어야 할 싸움은, 항쟁은 이 땅에서 배제당하고, 소외당하고, 쫓겨나는 모든 이들의 투쟁이어야 했다. 자본의 이해를 위해 2년마다 쫓겨나야 하는 비정규직들이나, 세계 곡물자본들의 이해를 위해 농사를 빼앗기는 농민들이나, 평생을 일해도 제 집 한 채, 제 가게 한 채 가질 수 없고 오히려 건설자본의 이해를 위해서 언제나 쫓겨날 수 있는 철거민들이나, 언론자유를 빼앗기는 언론인이나, 일자리 하나 제공받기 힘든 청년실업자들 등 모든 피억압민중의 존엄이 걸린 물러설 수 없는 투쟁이었다. 이런 모든 일상적 학살의 정점에 구체적으로 생물학적 목숨까지 빼앗은 용산 학살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하지만 우리가 외치는 모든 민주주의는, 변혁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삶과 목숨이 존중받는 사회를 향해 있다. 삶의 과정에서 소외받지 않고, 서로 고루 평등하며, 평화롭기를 바라는 소망이다. 소수 자본과 가진 자들의 초과 착취를 위한 폭력으로 그 단순한 소망이 가능치 않은 미친 사회지만, 우리는 꿈을 잃을 수 없다. 꿈마저 포기하고 나면, 희망마저 포기하고 나면 남는 건 기계적인 삶, 동물적인 삶, 살아서도 살아 있음을 느껴볼 수 없는 유령의 삶뿐이기 때문이다.

 

용산 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쉽지 않을 거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많다. 하지만 우리는 믿어야 한다. 이것은 명백한 공권력 타살이고, 타살에 대한 책임을 이명박 현 대통령과 정부가 져야 한다고. 우리는 그런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우리 스스로 가진 힘을 믿어야 한다. 우리 모두 가지고 있는 양심을, 연대의 마음을, 저항의 힘을 믿어야 한다. 저들의 탄압과 폭력과 야만이 현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상식이 현실이 된다고 믿어야 한다. 연대하는 것이 무작정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인간다움을 확인해 나가는 벅찬 과정이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3류 시인이 꾸는 꿈

 

난 3류 시인이다. 좋은 시는 쓸 줄 모르지만 꿈꿀 줄은 안다. 늘 사람들이 안 된다는 한계와 경계 너머에도 수많은 가능성들이 우글거리고 있는 것들을 본다. 벽이 있으면 길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물은 어디로든 흘러간다. 막히면 돌아가고, 도저히 안 되면 땅 속으로 스며서라도, 증발해서라도 어디론가 흘러간다. 세상 모든 것들의 생명이 위대한 것은 그렇게 쉬지 않고 움직이는 행동과 미래 가능성에 있다. 불변하거나 영원히 막혀 있거나, 닫혀 있는 것들은 없다. 생명의 본성은 움직인다는 것이다. 움직이는 것들을 막으려는 노력은 부질없거나 부패한 것들이다. 용산의 진실은 그렇게 묻을 수 없는 진실이다.

 

다섯 달, 지칠 법도 하지만 다시 조금씩 움직이자. 그제부터는 남일당 분향소 앞에서 천주교 신부님들이 단식기도를 들어갔다. 보기 힘들던 국회의원들도 수시로 찾아든다. 문화예술인들이 헐벗은 철거 지역을 추모의 문화공간으로 꾸며가고 있다. 모든 시국선언이 용산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불가능은 없다. 용산 참사의 진실을 향해 우리 모두 조금씩만 움직이자. 순천향병원 분향소와 차가운 냉동고에 감금당한 우리의 민주주의를 풀어주자. 아기 입술처럼 조그만 새싹들이 여기저기서 피어나 어느 순간 온 천지가 푸르른 봄이 되듯 우리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들을 모으면 새로운 민주주의의 여름을 왜 만들지 못하겠는가. 까닭없이 불타죽은 가난한 철거민들의 장례가 아니라, 이 못된 독재 정권의 장례를 왜 못 치러주겠는가.

 

다섯 달. 우리의 가슴도 모두 함께 타들어간 통한의 다섯 달. 와서 보라. 이 피맺힘을. 이 분노를. 이 절박함을. 당신의 힘 하나가 필요하다고 외치는 이 간절한 호소와 절규를.

덧붙이는 글 | 장례도 못 치른 다섯 달…. 범국민 추모행사에 함께 합시다

1. 용산참사 150일 규탄! 150일 추모문화제
- 6월 18일(목), 4시 / 대한문 앞, 7시 / 용산참사 현장
2. 용산참사 다섯 달, 6.20 범국민 추모대회
- 6월 20일(토), 4시, 용산 참사 현장
3. 농성에 함께 해주세요. 
 - 유가족과 사회각계 현장 농성 60일 째,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단식기도회 등, 모두의 힘이 모여 가고 있습니다. 동조, 연대 농성에 함께 해주십시오. 매일 저녁 7시, 추모기도회와 추모제가 진행됩니다.

청와대와 정부, 검찰에 항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 정부는 그간 유가족, 범국민대책위와 단 한번의 대화도 시도하지 않고, 공권력 탄압만 일삼았습니다. 국가공권력 집행 과정에서 평범한 민간인들이 죽었습니다. 5.18 광주 이후 최대였습니다. 대통령의 사과와 위로, 무자비한 진압 책임자 처벌은 당연합니다. 서민들만 죽이는 재개발/뉴타운 정책의 변경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 검찰은 구속자들 재판에서 핵심 수사 기록인 3000쪽을 법원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법원은 어쩔 수 없다며 국선변호인을 선임해서라도 재판을 강행하겠다고 합니다. 구속자들은 석방되어야 합니다.


태그:#용산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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