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광장을 빼앗긴 시민들

 

이명박 정부의 '광장 트라우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국면에서 치명적인 상태임이 드러났다. 정부는 서울광장에서의 집회나 시위는 고사하고 추모제와 문화제마저도 불허했다. 경찰은 5월 23일부터 6월 3일까지 서울광장을 경찰버스로 봉쇄하고 시민들 통행까지 막았다. 시민들은 광장과 기본권을 빼앗긴 채 대한문 앞으로, 덕수궁 돌담길로, 시청 지하도로로 헤맸고 분노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와 서울시는 오히려 경찰에게 행정상 책임뿐 아니라 도의적 책임 없는 물리적 폭력 사용을 후하게 허하는 방식을 택해 시민들을 억누르고, 입맛대로 광장을 열고 닫는데 급급하다.

 

결국, 소통과 대화, 정치 영역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까지도 법적 공방으로 옮겨가는 수밖에. 폭력을 휘두른 경찰관과 책임자를 찾아내서 기어이 고소하겠다고 엄포를 놓게 만들고 유치하게 노 전 대통령 추모제 행사차량을 감금한 경찰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하고, 시민들 기본권 침해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등. 그래서 요즘 한국 시민들은 더욱 피곤하다.

 

이명박 정권의 순기능?

 

 

물론, 이 과정에서 이미 해결했어야 했지만 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튀어나와 뒤늦게나마 시민들의 광범위한 공감을 얻은 것은 이 정권에게 눈물 나게 고마운 순기능인지도 모르겠다. 집시법이나 경찰관직무집행법이 시민들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개정하려는 것을 비롯해서 '서울특별시 서울광장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 개정' 움직임이 그것이다.

 

잔디보호가 헌법에 보장된 집회시위의 자유보다 높은 가치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에게 '광장'은 서울시나 그들의 주장처럼 단순한 시설물이 아니다. 김선욱 교수가 6월 12일자 <경향신문> 금요논단에서 잘 지적하고 있듯, 우리에게 광장은 '상실한 공동체성이 발현되는 공간'이다.

 

만민공동회가 세 차례나 열렸던 당시의 서울 인구가 17만 명 정도였는데 집회 인원은 1만~2만 명이었고, 십 수 일간의 철야집회에 밥장수는 장국밥을 수백그릇 날라 오고, 술장수는 가게의 술을 모두 날라 오고, 어떤 이는 집을 판 돈을 기부하는 등 일종의 공동체가 만들어졌다.

 

80년의 광주에서는 개인의 재산에 집착하지 않고 서로 물건을 나누었으나 남의 재산을 함부로 하지는 않았고, 자기 목숨은 아끼지 않았으나 남의 생명은 아껴주었다. 그들은 토론과 논쟁을 통해 조직과 행동을 결정했으며 인간존엄성의 가치를 목숨 걸고 추구했다. 학자들은 이런 모습을 '절대공동체'라 불렀다.

 

수십만이 광장에 모였던 작년의 촛불집회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김밥과 생수를 나누고, 곳곳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각종 퍼포먼스를 통해 축제의 밤들을 연출했던 일들 말이다.

 

우리의 경험과 유사한 예는 69년 유럽의 6.8혁명 정도이다. 이 사건을 해명하면서 찰스테일러는 근대가 발전하면서 상실한 인간의 근본적 공동체성의 순간적 발현이라 했다.

 

서울광장 조례개정, 그 험난한 과정

 

그래서인가? 귀중한 것은 취하기 어렵기 때문에 귀한 것처럼, 광장사용 권리를 시민들이 돌려받는 과정은 험난하다. 현행 지방자치법 제15조에 따르면, 만 19세 이상 주민 총수의 100분의 1 이상이 청구인(조례개정운동에 동의하는 서울 주민) 서명을 해야 서울시의회에 조례개폐를 청구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또한 서명요청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대표자로 등록된 사람과 대표자에게 서명요청권을 위임받은 수임인만이 서명요청을 할 수 있다.

 

게다가 19세 이상 서울 주민 총수의 1%인 8만 968명에게 서명을 받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중요한 개인정보(성명/주민등록번호/주소/전화번호/정자로 된 서명이나 도장)를 요청해야 한다. 구별 구분은 물론 동 단위까지 분류하란다. 청구인들을 찾는 것도 어렵지만, 청구인들에게 설명하고 제대로 된 서명을 받아내는 것도 전혀 녹록한 작업이 아니다. 무엇보다 서울 주민들의 자발적인 동참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한 작업이다.

 

첫 수임인 모집을 시작한 지난 6월 10일, 많은 시민들에게 활동가들이 한참을 설명했지만 내용이나 절차가 어려운 건 시민이나 활동가들이나 마찬가지였다.

 

"수임인이 뭔데요?"

"예. 저희와 함께 서울광장 조례개정 서명을 받아주실 분이세요."

"뭐가 이렇게 복잡해. 그냥 오늘 서명만 하면 안돼요?"

"아직은 안 돼요. 한 2주 후에 서울시가 공표를 해줘야 그 때부터 서명이 가능해요."

"그럼, 오늘 이걸 신청하면 서명용지를 주시는 거예요?"

"아뇨. 서명도 수임인으로 허가증이 나온 사람만 받으러 다닐 수 있어서요, 서울시가 공표한 후부터 수임인 신청서를 등록해서 허가증이 나오면 서명용지랑 보내드려요. 그때부터 서명을 받아서 저희한테 보내주세요"

"와, 이거 뭐 조례개정을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그러나 이렇게 복잡한 절차임에도 600명이 넘는 서울 주민들이 6월 10일 그 자리에서 수임인 신청을 해주셨고, 100여 명이 넘는 시민들이 신문과 인터넷을 통해 소식을 듣고 수임인 신청을 해주셨다.

 

광장을 시민품으로... 광찾사(광장을 찾는 사람들)가 되어주세요!!

 

 

조례개폐청구는 주민감사청구, 주민소송, 주민소환제 등과 함께 대표적인 직접민주주의 제도 중 하나다. 그래서 1999년 조례개폐청구권 제도가 시행된 이후 지금까지 서울에서만 4번의 조례개폐청구가 시도되었다. 이 중 14만 명이 참여한 학교급식 조례개정운동은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그리고 최근 대학생, 시민단체가 함께 대학생들의 등록금 대출이자를 서울시가 부담하게 하는 내용의 '등록금 이자 지원 조례' 제정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광장을 시민품으로 되찾아오려는 서울광장 조례개정 운동도 한 개의 단체나 조직이 한다고 가능한 문제도 아니고, 해서도 안 된다. 꾸준히 관심을 갖고 수임인이 되어 주변 사람들에게 서명을 받고, 이것을 서울시의회에서 어떻게 처리하는지 감시하는 것까지 모두 시민들 몫이다. 시민들이 광찾사, '광장을 찾는 사람들'이 되어줄 때 서울광장의 사용권리가 시민들에게 되돌아 올 것이다.

 

* 자세한 내용 참고: 광장조례개정 서울시민캠페인단 공식 홈페이지 www.openseoul.org 

덧붙이는 글 | 광찾사가 되는 방법:
- 공식 홈페이지 www.openseoul.org 에서 수임인이 되어주세요.
* 만 19세 이상의 서울 주민만 수임인 신청과 청구서명을 하실 수 있습니다.
- 서울 주민이 아니셔도 응원의 한마디, 후원이 가능합니다. 홈페이지를 참고하시거나 사무국에 연락바랍니다.
* 사무국 참여연대 T) 02-723-5302


태그:#서울광장봉쇄, #서울광장조례개정운동, #집회시위의자유, #광장트라우마, #수임인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