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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3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민주당이 확 달라졌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전까지 10%대 지지율과 내분을 안고 지리멸렬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 졌다. 의원총회장에는 자신감과 결기가 가득하다. "장관 해임건의안도 제출할 수 없는 84석"이라던 한숨과 패배주의도 보이지 않는다. 바야흐로 '야성을 회복한' 민주당의 시대가 오고 있다.

 

민주당이 달라진 확실한 이유가 '노 전 대통령 서거' 때문이라는 것은 분명히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단지 '조문 정국' 덕을 봤다는 말로 현재 민주당을 설명하기에는 분명히 부족한 점이 있다. 과연 무엇이 불과 1개월 만에 민주당을 확 바꿔놨을까.

 

민주당 의원들은 '장외투쟁의 효과'를 이유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단순히 국회 등원을 거부하고 농성하는 수준이 아니다. 편한 책상과 의자를 박차고 나와 비바람 들이치는 거리와 천막에서 '풍찬노숙'을 마다하지 않은 결과라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재선의원은 "오로지 현장으로 가서 국민들 이야기를 듣고 다시 시작해야 민주당에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깃발 아래 시민들이... 감개무량하다"

 

그의 말대로 민주당은 지금 발 빠르게 현장마다 '올인' 하고 있다. 16일 한상률 전 국세청장을 비판한 나주세무서 김동일 계장의 '파면'이 결정되자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곧바로 국세청으로 '쳐들어' 갔다. 허병익 차장과 1시간 30분 설전을 벌여서도 별다른 소득 없이 돌아 나오게 됐지만, 적어도 권력에 맞선 약자(내부고발자)를 보호하는 정당이라는 이미지는 심을 수 있었다.

 

같은 날 저녁 민주당 전국여성위원장인 김상희 의원과 당직자들은 장례도 거부한 채 148일째 진상규명 투쟁을 벌이고 있는 용산참사 유족들을 찾아갔다. 지난 1월 이후 민주당은 용산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지만, 참사 현장에서 유족들과 나란히 앉은 적은 없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민주주의와 서민경제 위기'를 주장해 온 민주당은 주저 없이 용산 유가족들의 손을 잡고 있다. 지난 11일부터는 김상희 의원을 비롯해 이춘석, 최재성, 최영희, 백원우, 홍영표, 조정식 의원 등 10명이 매일 돌아가면서 용산참사 현장을 지키고 있다.

 

지난 6월 9~10일 '6·10 범국민대회'를 개최하기 위해 서울광장에 천막을 치고 1박 2일 투쟁을 벌인 모습도 예전에는 없었던 일이다. 민주당 의원 84명은 4개조로 나눠 돌아가면서 밤을 지새웠다. 10일 새벽에는 비가 내렸지만, 얇은 담요만 덮은 채 천막을 떠나지 않았다. 행사용 무대차량 반입을 저지하는 경찰 앞에서는 몸으로 맞섰다. 10일 밤 열린 6·10 범국민대회에서는 민주당을 향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초선인 최문순 의원은 대표적인 '현장파'다. 최 의원은 지난 5월 말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덕수궁 대한문 앞을 줄곧 떠나지 않았다. 당내에서는 최 의원을 '노숙자'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 '노숙자'는 대한문 앞 분향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 중 한 명이 됐다.

 

'조문 정국' 이후 민주당이 얻은 자신감은 바로 이런 현장 속에서 나왔다. 10일 밤 서울광장에서 만난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작년 촛불집회 때는 민주당 깃발도 들고 나오지 못했는데, 올해는 많은 시민들이 깃발 아래 모이는 것을 보고 감개무량했다"고 털어놨다. 최고 27%까지 올라간 민주당의 지지율을 '몸으로' 느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지금 민주당은 '현장학습'을 통해 한나라당에 맞설 대안야당으로 성장하고 있는 셈이다.

 

민주당은 이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려는 듯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 없이는 6월 국회를 열 수 없다는 방침은 이미 세워졌다. 김형오 국회의장과 한나라당이 '단독 국회'나 '국회법 개정' 카드까지 꺼내며 6월 임시국회 개회를 압박하고 있지만, 민주당은 쳐다보지도 않고 있다.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이다. 비정규직법, 미디어법 등 현안 처리가 급한 한나라당에 비해 민주당은 느긋한 편이다.

 

원내조직 '현장형' 재편-6월 국회 전략 수립... 두 갈래 대응  

 

이참에 아예 들판(野)에서 무리(黨)를 모아 한나라당을 뛰어넘자는 전략도 세웠다. 조문 정국과 6·10 범국민대회로 맺어진 시민사회와의 연대를 더 강화시켜 나가겠다는 뜻이다.

 

16일 국회 당 대표실에 '운하백지화국민행동' 지도부가 찾아온 것도 좋은 예다. 민주당은 이들과 '4대강 마스터플랜' 저지에 공동전선을 펴기로 했다.

 

정세균 대표는 "정치권이 유능하게 견제와 감시를 해주면 걱정 안 해도 되는데 현재 민주당이 의석수로는 중과부적"이라고 솔직히 털어놨다. 정 대표는 또 "시민사회와 국민 여러분이 힘을 합해 주지 않으면 이 정권의 일방독주를 견제할 수 없다"며 "민주당은 힘을 합칠 준비가 돼 있다, 함께 힘과 지혜를 모아 주시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단지 말로만 그친 게 아니다. 민주당은 원내조직을 '현장형'으로 재구성했다. 이명박 정부 아래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남북관계, 서민경제' 3대 위기를 겪고 있다고 보고 원내조직을 ▲민주주의 위기 극복팀(법사위, 행안위, 문방위, 국회운영위), ▲남북관계 위기 극복팀(통외통위, 국방위, 정보위), ▲민생경제 위기 극복팀(기획재정위, 지식경제위, 국토해양위, 환경노동위 등)으로 나눠 활동하도록 했다.

 

앞으로 각 팀 소속 의원들은 6·10 범국민대회 강제진압 항의를 위해 행정안전부와 경찰청을 항의방문하고, 쌍용차-비정규직 현장과 연평도, 백령도 등 남북 충돌 위험지역을 돌아보기로 했다. 위기 극복 방안을 찾기 위한 각종 세미나와 토론회도 열 예정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국회 밖에서만 머물 수 없다는 점을 민주당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6월 임시국회 개회에 대비한 원내전략도 치밀히 구상 중이다. 이번 주만 해도 민주당은 이틀에 한 번 꼴로 의원총회를 열고 있다. 의원총회에서는 '북핵 문제', ' 검찰 개혁', '비정규직법' 등 핵심 쟁점을 공부하고 있다. 언제든지 국회가 열린다면 정국을 주도할 수 있도록 '바탕'을 깔아놓겠다는 생각이다.

 

이강래 원내대표는 "우리는 국회가 언제든지 열릴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며 "한나라당이 국민과 민주당의 5대 요구안을 수용한다면, 내일이라도 국회를 개원할 의지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태그:#민주당, #정세균, #6월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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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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