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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민주주의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촛불의 광장을 통해 집시법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몸으로 경험했습니다. 현행 집시법은 '신고제'라고 하지만 실제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규정조차 모호해 경찰의 자의적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등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나라당은 이른바 '마스크법'으로 불리는 또다른 독소조항을 포함한 집시법을 다수 국회에 상정해 놓았습니다. <오마이뉴스>와 인권단체연석회의가 공동 기획을 통해 현재 집회 시위의 자유가 얼마나 위협당하고 있는지 돌아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 글은 '아름다운 변호사 그룹 공감'에서 활동하는 염형국 변호사가 썼습니다. [편집자말]
지난 5월 22일 이용훈 대법원장과 박시환 대법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보수단체 회원들.
 지난 5월 22일 이용훈 대법원장과 박시환 대법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보수단체 회원들.
ⓒ 신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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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1

라이트 코리아 등 보수단체 회원들은 5월 21일 오후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신영철 대법관 사태와 관련해 연달아 열리고 있는 판사회의의 중단과 일선 판사들의 행동에 지지의사를 밝힌 박시환 대법관에 대한 탄핵소추를 촉구하였다. 이 과정에서 플래카드와 요구사항을 적은 피켓을 들고 있었고 구호도 외쳤으나, 경찰은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고 법원 관계자들만 기자회견을 지켜봤다.

#  장면 2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소속 대학생 100여 명은 4월 10일 오전 청와대 근처 서울 종로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반값 등록금 시행' 등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정부에 항의하는 뜻을 담은 퍼포먼스로 집단 삭발식을 진행했다. 처음부터 이들을 둘러싸고 있던 경찰은 2개 중대 200여 명이나 됐다. 경찰은 삭발식 도중 "차도에 내려와 불법 시위를 벌이고 있다"며 세 차례 해산 명령을 내렸고, 이어 곧바로 강제 해산에 나서 참가자 49명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연행했다. 경찰은 "기자회견 신고를 해놓고 실제로 구호를 외치는 등의 행동을 했기에 이는 미신고 집회에 해당되고, 참가 인원이 신고된 숫자보다 많았다"고 연행 이유를 밝혔다.

지난 4월 10일 오전 청와대 입구 청운동사무소앞에서 '등록금 인하, 청년실업 해결' 등을 촉구하는 전국대학생대표자 농성선포식이 마친 뒤 20명의 대학생 대표자들이 집단 삭발식을 하던 도중 경찰이 '차도에서 내려와서 불법 시위를 한다'며 3차례 경고방송 직후 곧장 연행작전에 돌입해서 남녀 대학생 49명을 강제연행했다. 한국대학생연합 의장인 부산대 이원기 총학생회장이 삭발에 앞서 결의를 밝히고 있다.
 지난 4월 10일 오전 청와대 입구 청운동사무소앞에서 '등록금 인하, 청년실업 해결' 등을 촉구하는 전국대학생대표자 농성선포식이 마친 뒤 20명의 대학생 대표자들이 집단 삭발식을 하던 도중 경찰이 '차도에서 내려와서 불법 시위를 한다'며 3차례 경고방송 직후 곧장 연행작전에 돌입해서 남녀 대학생 49명을 강제연행했다. 한국대학생연합 의장인 부산대 이원기 총학생회장이 삭발에 앞서 결의를 밝히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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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의 자유의 헌법상 의미

헌법 제2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여, 타인과 의견교환을 위한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로서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함께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집회의 자유는 국민들이 자신의 의견과 주장을 집단적으로 표명함으로써 여론 형성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민주적 공동체가 기능하기 위하여 불가결한 근본요소에 속하는 것이고, 특히 집권세력에 대한 정치적 반대의사를 공동으로 표명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서 현대사회에서 언론매체에 접근할 수 없는 소수집단에게 자신들의 권익과 주장을 옹호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소수의견을 국정에 반영하는 창구로 날로 그 중요성을 더해 가고 있다.

평화적 집회 그 자체는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위험이나 침해로 평가되어서는 안 되며, 개인이 집회의 자유를 집단적으로 행사함으로써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일반대중에 대한 불편함이나 법익에 대한 위험은 보호법익과 조화를 이루는 범위 내에서 국가와 제3자에 의하여 수인되어야 한다는 것을 헌법 스스로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헌법재판소는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집회의 자유는 소수의 보호를 위하여 매우 중요한 기본권으로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 집회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다른 중요한 법익의 보호를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정당화되는 것이며, 특히 집회의 금지와 해산은 원칙적으로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 명백하게 존재하는 경우에 한하여 허용될 수 있다(2000헌바67).

기자회견과 집회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기자회견을 '어떤 사건이나 현상에 대하여 신문·통신·방송과 같은 대중 매체를 통하여 그 내용을 설명하거나 해명하려고 기자들을 불러 모아서 개최하는 담화나 모임'으로 정의하고 있다. 한편 집시법 제2조에서는 '옥외집회'의 정의를 "천장이 없거나 사방이 폐쇄되지 않은 장소에서의 집회"로 규정할 뿐, 집회 자체의 정의를 규정하고 있지 않다. 그러면서 집시법상 '(옥외) 집회'에 대하여 주최자에게 신고의무를 부과하고 있고(제6조), 이를 위반한 경우 처벌하는 규정(제19조)을 두고 있다.

그렇다면 기자회견이 집회인지 아닌지 여부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게 된다. 집시법상 미신고집회로 처벌이 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사안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집시법에서는 기자회견이 집회인지 여부에 관해 어떠한 규정도 두고 있지 않고, 심지어는 집회에 대한 정의 규정도 없다.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은 범죄와 형벌이 법률로 정해져야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죄형법정주의 원칙은 법률이 처벌하고자 하는 행위가 무엇이며, 그에 대한 형벌이 어떠한 것인지를 누구나 예견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자신의 행위를 결정할 수 있도록 구성요건을 명확하게 규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집시법에서는 어떠한 행위가 집회인지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지도 않으면서 미리 신고하지 않은 옥외집회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집시법상 '집회'의 개념은 법원에서도 명확한 것이 아니다. 예컨대 서울지방법원 2003고단2100 판결은 "집시법 제6조 소정의 신고 의무가 있는 옥외집회는 다수인이 공동 목적을 가지고 천장이 없거나 사방이 폐쇄되지 않은 장소에 모여 불특정 다수인의 의견에 영향을 주거나 제압을 가하는 행위"로 해석하고 있음에 반하여, 서울중앙지방법원 2006고단2956판결은 집회를 단지 "일정한 공동 목적을 위한 다수인의 일시적 회합"으로 해석하는 등 집회 개념에 대한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서울 종로구 가회로 15(재동 83)에 위치한 헌법재판소.
 서울 종로구 가회로 15(재동 83)에 위치한 헌법재판소.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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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결정 유감

헌법재판소는 지난 5월 28일 '집회'에 대한 정의규정을 두지 않으면서 옥외집회에 대해 신고의무를 부과하고 신고하지 않을 때에 처벌하도록 하고 있는 집시법 규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집회'에 대한 정의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 부분에 대해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감정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집시법상 '집회'가 무엇인지 추론할 수 있다고 할 것이므로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결정하였고, 미신고집회를 처벌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미신고집회가 공공의 안녕질서에 위험을 초래할 위험이 높고 이에 대해 과태료가 아닌 형사처벌을 통해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는 입법자의 결단이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하였다.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의하면 2인 이상이 옥외에서 공동의 목적으로 모인 경우, 예를 들어 기자와 2인(다수인)의 취재원이 공원(옥외)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사전에 약속을 하고 만나는 행위도 집시법상 신고의무가 부과되는 집회에 해당되어 이를 관할 경찰서장에게 미리 신고하지 아니하면 집시법 위반에 해당하여 처벌되는 부당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집회가 공공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집회장소가 공공장소이거나 집회자가 임의로 사용할 수 있는 곳인지 여부도 묻지 않고, 집회의 성격이 우발적이거나 긴급한 것인지도 묻지 않고 무조건 처벌대상이 되게 된다.

기자회견은 처벌되어서는 안 된다

2005년 9월 26일자 <연합뉴스>의 '기자회견 중 구호 외친 정당 간부 입건'이라는 제목의 보도에 의하면 경찰 관계자는 "기자회견은 집회가 아니지만, 집회 또는 시위가 금지된 구역 안에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친 것은 기자회견의 범위를 이탈한 것으로 불법 시위에 해당한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또한 2009년 5월 15일자 <서울신문> 기사에 따르면 기자회견을 집회와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에 관하여 경찰 관계자는 "상황을 종합해 봐야겠지만 현장지휘관이 그때그때 판단해야 한다"면서 "딱 잘라서 말하기가 힘들다"고 고백하고 있다.

언론의 자유는 사상이나 의견을 언어·문자 등의 표현수단에 의하여 불특정 다수인에게 발표하는 자유를 의미하고, 자신의 사상이나 의견을 발표하기 위하여 언론매체에 자유로이 접근하여 그것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인 언론매체에 대한 접근권을 포함한다.

기자회견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전달하며, 자신의 의사표명을 통해서 여론형성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하는 언론의 자유 중 가장 핵심적인 내용에 해당하는 의사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불특정다수인의 의견에 영향을 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집회'가 아닌 '기자들을 상대로 한 의견발표'인 기자회견에 집시법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

집시법은 처벌하고자 하는 미신고집회가 어떤 것이고, 어떠한 경우에 처벌을 받는 것인지에 관해 누구나 예견할 수 있어서 그에 따라 자신의 행위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 않다. 장면 1과 장면 2에서 볼 수 있듯이 기자회견이 집시법상 규율대상이 되는 집회인지 여부에 관해 경찰에게 전적으로 판단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이처럼 경찰이 자의적으로 판단해 기자회견을 어떤 경우에는 집회로 보아 미신고집회죄로 연행하고 어떤 경우에는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쳐도 기자회견으로 보아 전혀 개입을 하지 않는 것이 헌법상 죄형법정주의에 부합하는 것일까. 이것을 과연 법치주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태그:#집회시위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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