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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에 딱 하나 있었던 표지판, 단번에 알아보기엔-특히 외국인들에겐 더- 너무 작다.
▲ 출입국관리사무소로 가는 길 가는 길에 딱 하나 있었던 표지판, 단번에 알아보기엔-특히 외국인들에겐 더- 너무 작다.
ⓒ 마티아스 슈페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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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엔 이민국에 가서 비자 연장을 신청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은 "한국비자 특별편"을 써서, 나의 "비자 드라마" 얘기를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할 때 맨 처음 부딪쳤던 어려움 중 하나가 비자 받는 일이었다. 당시 나는 거의 2년간 연세대 학생으로 한국에 살았었고, 이젠 근로비자가 필요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체류 형태를 바꾸러 갔는데, 그것은 나중에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아주 훨~~~씬) 더 복잡한 미션이 되었다.

첫번째 방문, 내 회사와 사업 계획에 대한 서류를 가지고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갔다. 연세대학원 졸업 후 바로 영국 유한회사를 설립했고 그 회사를 통해 한국에서 일을 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알고보니 비자를 받는데 충분 조건이 아니라서, 회사가 한국에 등록된 지점을 갖고 있어야 하고, 그 한국지점을 내가 운영하면 된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래서 시간과 공을(그리고 당연히 돈도) 들여 한국 지점을 세웠다. 그랬더니, 다음은 세무서에 등록해야 하는데, 그게 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일이었다(그래서 그 일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려 한다). 그리고 다음 몇 주 간 국가기관/은행을 여기저기 뛰어다닌 후 한국지점이 설립되었고, 나는 지점장의 신분으로 다시 출입국관리사무소로 향했다.

이번엔 놀랍게도 당장 이 나라를 떠나서 내 학생비자가 만료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관광비자로 돌아와서 근로비자로 전환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외국에 가기는 귀찮고 돈도 많이 드는 일이었지만 돌아오면 아무 문제도 없을 거란 약속을 받았다.

그래서 짐을 싸서 유럽으로 날아가서는, 같이 일할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있는 초콜릿 회사들과 접선하고 이탈리아에서 포도밭 주인들을 만나 놀랍도록 훌륭한 와인들을 이것저것 맛본 뒤, 머지 않아 내 회사의 일부가 될 와인 수입 사업을 준비해 나가기 시작했다.

유럽도 좋았지만, 한국이 그리웠으며 빨리 회사일을 하러 한국에 가고 싶었고 그게 아니라도 그 모든 공부를 끝낸 뒤 뭔가 써먹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어쨌든 얼마 뒤 비행기에서 또 비빔밥을 먹고는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아직 시차적응도 끝나지 않았지만 다시 출입국관리 사무소로 가고 싶어 좀이 쑤셨다. 눈 밑에는 다크써클(비행기에서는 통 잠을 못자는 관계로)이 진하게 드리웠어도 기대에 차 있었고 기분은 최고였다.

지금 여기 이런 내가 있었다

겨우 27세가 된 나이에, 유럽 최고의 비즈니스 스쿨에서 학위를 따고 연세대에서 "우수 성적 성취"로 상을 받으며 MBA를 취득하고, 상세한 사업 구상에, 한국에 돌아와서, 따끈따끈하게 막 세운 내 새 회사를 성공으로 이끌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자신감과 야망에 가득차 있었고 날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뭐 그냥 이 두 문장만 빼면,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죄송합니다, 가능한 비자가 없네요. 관광비자가 만료되기 전에 이 나라를 떠주세요."

뭐라고????이럴 수가!! 농담이시겠지요? 응??

갑자기 정말로 구역질이 났다. 어떻게 이게 다 현실일 수가 있지? 한 3주 전에 여기 있었을 때는 다 완벽하게 되어가고 있었는데 지금 이게 대체...??? 실제로, 농담 한푼 보태지 않고 정말로 일어난 일이다. 이번에 내가 들은 설명은 내가 원하던 비자가 "전문인 비자"였다는 것. 나는 이 회사의 CEO로서, 혹은 한국지점장으로서 전문인에 속했던 것. 그런데 출입국관리 사무소가 이전에는 그 비자를 받는 조건이, 내가 그 회사에서 일한 경력이 2년이 넘어야 한다는 것을 못보고 지나친 것이었다. 두 달 전엔 존재하지도 않았던 회사에서 그런 경력을 갖긴 어려운 일...

출입국관리 사무소를 나와 역으로 걸어갔는데 지하철을 타러 내려가는 첫 계단에서 나는 무너져 내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 거기서 세 시간 정도 앉아있었던 것 같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나를 쳐다본다. '제일 좋은 양복을 꺼내입고 더러운 지하철 계단에 앉아있는 불쌍해보이는 외국인- 무슨 사연일까~'

...하지만 그 사람들도 쳐다 볼 수가 없었다. 영구 비자를 받아서 한국에서 계속 살면서 일하겠다는 꿈을 얼마나 오래 꿔왔던지 이제는 "길이 없다"는 것을 실감하자 그것에 압도되어버린 것이다.

그 날 어떻게 일어나서 전철을 탈 힘을 찾았는지 생각해보자면 그것이 포기하기는 한국에 머물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였는지, 아니면 그 전에 일이 잘 안되면 어떻게 할 것인지 아무런 계획도 없어서 어쨌든 포기할 수가 없었던 건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 다음 날(음주로 심하게 아픈 머리를 붙들고) 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 헤메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를 찾았다.

투자 비자!...이건 비교적 받기 수월했다. 필요한 건 오직 한국 회사에 투자하는 것! 그리고 당연히 "유효 투자"로 인정받기 위한 최소금액을 순수 한국 회사에 투자하면 나에게 남은 네 달 보단 긴 시간이 주어질 것이었다. 내 관광비자가 만료되기 전 네 달 간, 시간과 싸우던 그 기간이, 아마도 이제껏 제일 스트레스 심하고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이었던 것 같다. 완전히 새로운 회사를 창립해야 했고(비교적 쉬운 영국 회사의 한국지부가 아닌, 순수 한국회사를) 몇 백만원 정도를 나에게 투자해 줄 사람들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기쁘게도 이제 영광의 출입국관리소에 체류기간 연장을 신청하러 돌아가게 되었으니, 어떻게든 나는 그 모든 것을 해낸 것일 것이다. 다만 어떻게 해냈는지 말로 다 할 수 없을 뿐...

덧붙이는 글 | 마티아스 슈페히트 기자는 독일에서 태어나 10여 년 전 첫 방한한 후 거의 매년 한국에 오다가 2006년 서울로 이주했다. 독일 유러피안 비즈니스 스쿨에서 경영학 학위를 2008년엔 연세대에서 MBA를 취득했다. 그 후 서울에서 '스텔렌스 인터내셔널(www.stelence.co.kr)'을 설립하여 유럽 라이프스타일 제품 등을 수입판매 중이다. 최근 한국에서의 경험을 쓰기 시작한 개인 블로그는 http://underneaththewater.tistory.com/이다.



태그:#출입국, #사무소, #사업, #비자,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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