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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보림사는 그래도 옛 모습을 다시 찾기 위해서 노력중이다. 한국전쟁 당시 수백 년 된 목조 건물들이 한줌의 재로 변하곤 하였다. 거의 폐사 위기에까지 몰렸던 보림사는 많은 불자들의 노력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다.

지금은 건물들이 많이 복구되어 그 규모도 점차 커지고 있고, 이러한 복구와 개발을 통하여 다시 과거의 영광을 찾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당시의 가람배치와는 다른 양식으로 지어지고 있기에 '정확한 복원이 아니'라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대웅전과 대적광전의 복원은 물론이고 명부전이나 미타전, 조사전, 삼성각, 범종각 등이 들어서 다른 사찰들에 맞먹는 규모를 갖게 되었다. 지금은 절 마당에 자갈들을 깔아 놓고 건물들이 듬성듬성 있어 한가해 보이지만, 과거에는 수많은 건물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국보는 우리의 손에 불타버렸다

위의 사진은 2009년 현재 복원된 모습이며, 아래의 사진은 소실되기 이전인 1946년의 모습이다.
▲ 보림사 대웅보전의 현재와 과거. 위의 사진은 2009년 현재 복원된 모습이며, 아래의 사진은 소실되기 이전인 1946년의 모습이다.
ⓒ 송영대, 장흥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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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림사의 천왕문에서 경내를 들여다보면 대적광전으로 바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일부러 배치를 그렇게 맞춘 것을 보면 이 보림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각이 대적광전이었다는 점을 어렵잖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대웅보전이 자리 잡고 있다. 절에서 가장 격이 높은 건물을 대웅전이라고 하지만, 이 대웅보전은 본디 대적광전보다 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아마 후대의 사람들의 필요로 인하여 지어졌으리라.

하지만 지금 남아있는 대적광전이나 대웅보전은 당시의 건물이 아닌 최근 들어 복원된 것이다. 대웅전은 본래 조선 초기에 지어진 2층의 법당이라고 하고, 한국전쟁 이전에는 국보 204호로 지정되었던 말 그대로 '귀하신 몸'이었다.

하지만 한국전쟁 당시 이 보림사에 공산군 유격대가 머물렀다는 이유로 군경토벌대가 사찰에 불을 질렀다고 한다. 이때 수많은 문화재들이 한줌의 재가 되어 사라졌고, 국보 204호였던 보림사 대웅보전 또한 그렇게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대방광불화엄경주본'이 국보 204호로 지정돼, 대웅보전은 우리의 기억에서마저도 사라졌다.

지금에 와서야 복원되었지만 여전히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이러한 과거를 돌이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을 작년에도 우리의 손으로 우리의 국보(숭례문)를 태워버렸으니…. 후세에 부끄러울 따름이다.

대웅보전보다 명부전에 눈길이 끌리는 이유

명부전이란 지장보살과 시왕 등을 모시는 전각으로서 외벽화엔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의 모습이 그려져있다.
▲ 보림사 명부전. 명부전이란 지장보살과 시왕 등을 모시는 전각으로서 외벽화엔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의 모습이 그려져있다.
ⓒ 송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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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보림사 대웅전 옆에는 명부전이 있다. 복원된 위치는 사실 잘못된 것이다. 과거에는 명부전의 위치가 대웅전의 우편에 있었지만, 지금은 좌편에 자리 잡고 있다. 아무래도 협소한 공간에 두기보다 널찍한 공간에 두어 불자들의 왕래를 편하게 하는 게 목적이었던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과거의 위치대로 놔두는 게 어땠을까란 생각도 드는 게 사실이다.

명부전은 지장전이라고도 부른다. 일전에 러시안 친구들과 사찰을 둘러본 적이 있는데 그때 명부전 앞에서 이에 대해 어떻게 설명을 할까라고 잠시 고민하다가 직설적이고 간단한 한마디로 설명을 끝내버렸다.

"Here is the Hell(여긴 지옥이야)."

이 명확한(?) 설명에 러시안친구들의 표정은 휘둥그레졌다. 맞다. 명부전은 지옥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을 표현한 곳이 바로 명부전이고, 이곳에서는 망자를 위한 의식들이 치러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 명부전의 향불은 웬만해선 꺼지질 않는다.

명부전에는 지장보살과 시왕, 협시와 금강역사 등이 모셔져 있다. 가장 가운데에 모셔진 게 바로 지장보살로 지옥의 모든 중생들을 교화하고 구원하기 전까진 부처가 되지 않겠다고 공언하였던 보살이다. 그리고 시왕은 각각의 지옥을 거느리고 있는 왕으로서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유명인사는 책을 머리에 인 염라대왕이다.

그럼 보림사 명부전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을까? 물론 있다. 외벽화에 지옥의 모습들이 그려져 있고, 거기에 간지를 표시하여 자신의 생년에 따라 어떤 지옥으로 갈 것인지에 대해 쓰여 있어 길손들의 호기심을 유발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은 어떤 모습일까?

지옥에서 염라대왕이 죽은 사람의 죄악을 살펴볼 때 쓰는 거울이라고 한다.
▲ 고흥 능가사 업경대. 지옥에서 염라대왕이 죽은 사람의 죄악을 살펴볼 때 쓰는 거울이라고 한다.
ⓒ 송광사 성보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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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벽화라는 것은 내벽화와는 달리 건물의 벽 바깥쪽에 그려 넣은 그림을 말한다. 외부에 있기 때문에 대중들이 쉽게 볼 수 있고, 또 내용이 다소 쉬워 불교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도록 도와준다. 주로 경전의 내용이나 불교에 얽힌 일화, 그곳의 전설들이 주 대상으로 최근에 조성된 게 다수다.

보림사 명부전의 외벽화는 이 중에서도 지옥의 모습을 그려 넣었기에 길손들이 모두 흥미롭게 쳐다본다.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은 상당히 체계화되어 있어 10군데의 지옥이 있고, 각각의 지옥마다 왕이 존재한다. 그리고 인간은 이 지옥들을 거쳐 그 업보에 따라 환생을 한다고 한다. 이러한 신앙은 인도에서부터 건너왔기보다 중국의 도교의 영향을 받아 구체화 된 것이다.

명부전의 외벽화에는 단순히 이런 내용만 담지 않았다. 바로 자신의 생년에 따라 어느 지옥으로 배치될 것인지에 대해 써 놓았기에 모두들 궁금함에 이끌려 한 번씩 자신의 생년을 맞춰본다. 내세에 대한 의문은 인간이 등장 이후 최대의 의문거리였기에 더욱 더 흥미를 자아낸다. 그럼 불교에선 지옥으로 가는 대상이 어떻게 정해질까?

일단 사람이 죽고 나면 저승사자에 의해 지옥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 이 지옥을 다스리는 시왕들이 있는 명부로 가서 자신의 죄를 보게 된다. 이때 자신의 죄는 업경대라고 하는 거울을 통해서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죄에 따라서 순차적으로, 혹은 자신의 태어난 해에 따라서 벌을 받게 되며 이 과정에 열가지 지옥에서 차례차례 고통을 받고 자신의 업보에 따라 다시 환생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죽어 지옥에 간다면, 어떤 벌을 받을까?

위의 왼쪽부터 태산지옥, 평등지옥. 아래의 왼쪽부터 검수지옥, 발설지옥, 독사지옥.
▲ 보림사 외벽화 위의 왼쪽부터 태산지옥, 평등지옥. 아래의 왼쪽부터 검수지옥, 발설지옥, 독사지옥.
ⓒ 송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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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림사 외벽화는 앞서 말했듯이 자신의 생년에 따라 자신이 갈 지옥과 벌을 그림을 통해서 보여준다. 예를 들어 1954년에서 1959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의 경우 불교에서는 죽어서 태산대왕의 대애지옥으로 간다고 한다. 대애지옥을 다스리는 태산대왕은 49재 이후 그 사람에 대한 최종판결을 하는 왕이기도 하지만, 그가 다스리는 지옥은 방아와 맷돌로 찧고 가는 지옥이라고 한다.

또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5번째 대왕이자 본디 지옥의 주인이었던 염라대왕의 경우엔 1960년에서 1965년생이 해당된다고 한다. 염라대왕은 지장전 내에서는 책을 머리에 이고 있는 형태로 자주 나타나며 혀를 빼어 소가 모는 쟁기로 밭을 가는 지옥을 관장한다고 한다. 여기에서 사람의 혀는 집게로 끄집어내는데 그 길이가 끝이 없다고 하며, 그렇게 빼낸 혀를 또다시 쟁기로 간다고 하니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상상조차 하기 싫다.

하지만 무조건 이렇게 벌을 받는 것은 아니다. 비록 벌을 받더라도 이곳에는 여러 보살님들이 있어 이를 통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보살은 바로 지장보살로서 스스로가 지옥의 중생들을 모두 구원하기 전까진 부처가 되지 않겠다고 했으니 가히 지옥의 어머니라고도 하겠다. 이 지장보살은 또한 낙태아나 사산아 같이 버림받거나 갈 곳이 없는 불쌍한 아이들을 구원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외에 많은 다른 보살들이 각자 지옥에서 중생들의 구원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지옥은 절망의 나락이지만 이렇게 한줄기 희망도 있다. 죄를 저지르면 분명 그에 대한 응보를 받아야 하지만, 구원을 통해 고통을 덜 받고 반성을 한다면 이 또한 벌을 대체하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리라. 이렇게 명부전과 외벽화는 자신들을 통해 인간에게 큰 경각심을 주고 있다. 그 경각심의 내용은 모두가 잘 알지만 실천을 어려워하는 단 한 마디가 아닐까?

"죄를 짓지 마라."

명부전의 시왕과 10대지옥
1. 진광대왕의 도산지옥 - 칼이 무수히 솟은 산에 던져버리는 지옥
경오생, 신미생, 임신생, 계유생, 갑술생, 을해생(1930~1935 / 1990~1995)
2. 초강대왕의 화탕지옥 - 기름가마에 넣고 끓이는 지옥
무자생, 기축생, 경인생, 신묘생, 임진생, 계사생(1948~1953 / 2008~2013)
3. 송제대왕의 한빙지옥 - 얼음속으로 재어 냉동시키는 지옥
임오생, 계미생, 갑신생, 을유생, 병술생, 정해생(1942~1947 / 2002~2007)
4. 오관대왕의 검수지옥 - 칼이 나있는 나무에 던지는 지옥
갑자생, 을축생, 병인생, 정묘생, 무진생, 기사생(1924~1929 / 1984~1989)
5. 염라대왕의 발설지옥 - 혀를 빼어 쟁기로 밭을 가는 지옥
경자생, 신축생, 임인생, 계묘생, 갑진생, 을사생(1900~1905 / 1960~1965)
6. 변성대왕의 독사지옥 - 독사 구덩이에 던져 버리는 지옥
병자생, 정축생, 무인생, 기묘생, 경신생, 신사생(1936~1941 / 1996~2001)
7. 태산대왕의 대애지옥 - 방아와 맷돌로 찧고 가는 지옥
갑오생, 을미생, 병신생, 정유생, 무술생, 기해생(1894~1899 / 1954~1959)
8. 평등대왕의 거해지옥 - 톱으로 켜는 지옥
병오생, 정미생, 무신생, 기유생, 경술생, 신해생(1906~1911 / 1966~1971)
9. 도시대왕의 풍도지옥 - 살이 에이는 듯한 바람을 맞는 지옥
임자생, 계축생, 갑인생, 을묘생, 병진생, 정사생(1912~1917 / 1972~1977)
10. 전륜대왕의 흑암지옥 - 아무것도 안 보이는 암흑세계에 가두는 지옥
무오생, 기미생, 경신생, 신유생, 임술생, 계해생(1918~1923 / 1978~1983)

덧붙이는 글 | 2009년 4월 12일 장흥 보림사를 보고와서 쓴 글입니다. 보림사의 대웅보전과 명부전의 외벽화를 통하여 시왕신앙을 다루어 보았습니다.

이번 기사는 장흥문화원에서 자료를 제공해주었습니다.



태그:#보림사, #지옥, #지장보살, #외벽화, #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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