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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찰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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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나무와 소나무가 싸우면 등나무가 이긴다고 한다. 등나무 줄기가 소나무 숨통을 조여 그만 고사목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시간을 내서 범어사 등나무 군생지 찾아가는 지난 토요일은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이 안개가 자욱했다. 안개가 자욱한 등나무 군생지의 관찰로 입구에 들어서니 안개와 함께 적요한 밀림의 적막이 감돌았다. 그래서일까. 이명처럼 타잔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숲은 기이하도록 인기척이 하나 없었다. 그래서 더욱 신비했다.

꼬여가는 등나무
▲ 가닥가닥 꼬여가는 등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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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 등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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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의 등나무 군생지는 1966년에 천연기념물 176호로 지정됐다. 정말 도회에서 보기 힘든 희귀한 등나무 군생지가 아닐 수 없다. 등나무는 콩과에 속하는 낙엽 덩굴성 식물. 흔히 공원이나 사무실 휴게실이나 관공소 정원 등 여름의 뙤약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을 얻기 위해 심는 등나무는 시인이나 화가의 그림 소재에 많이 등장한다.

강한 등나무 의지
▲ 철사보다 강한 등나무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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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나무는 생명력이 놀랍도록 끈질기다. 함께 어울려 사는 숲의 공존공생의 원리에서 거리가 먼 나무다. 독립되어 자라지 못하고 기생충같은 나무다. 그러나 문학적 작품에서 등나무는 세상살이에 비유되고 한데 어울려 사는 모습으로 형상화되는 경우가 많다.

정말 자세히 관찰해 보니 등나무의 줄기가 가닥가닥 꼬여 가면서 군생을 이루는 모습이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적당한 간격이 있어 서로를 지켜주는 소나무 삼나무 굴참나무 등 여느 동무나무와 다른 등나무에게서, 사람은 등나무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잘난 사람도 혼자 살 수 없으니 말이다.

숲길
▲ 등나무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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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 176호, 등나무 군생지는  범어사 입구에 있다. 이 범어사는 금정산에 있다. 정말 범어사가 있는 금정산에는 희귀한 야생화 뿐만 아니라 진귀한 나무와 새와 동물이 살고 있다. 범어사의 등나무 군생지는 부산 시민들의 자연 숲으로 사랑받는 숲. 그러나 아쉽게도 등꽃이 져서 일까. 찾는 발길이 한산한 느낌을 준다. 찜통 같은 여름철에는 등나무 숲 속에 인공폭포가 있어서 그 어떤 땡볕의 더위도 피할 수 있겠다.

등나무 군생지의 관찰로에는 관광객을 위한 벤치와 군데 군데 아름다운 조경의 연못이 있었다. 맑은 물 속에는 피라미 등 이름 모를 물고기들이 살고 있었다. 범어사의 등나무 군생지의 등나무들은 거의 100년 이상의 수령 깊은 나무들로 약 6500여 그루의 등나무가 서식하고 있다.

에게 배우다
▲ 등나무 에게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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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나무는 변비, 근육통, 관절염, 부인병 등에 좋다고 한다. 등나무는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만 자라는데, 생장력이 몹시 왕성하여 덩굴이 2백 미터까지 뻗는다고 한다.

무
▲ 등나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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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하늘을 바라볼 수 없는 것일까
수줍게 늘어뜨린
연보라빛 꽃타래
혼자서 등꽃 아래 서면
누군가를 위해
꽃등을 밝히고 싶은 마음
나도 이젠
더 아래로
내려가야 하리
세월과 함께
뚝뚝 떨어지는 추억의 꽃잎을 모아
또 하나의 꽃을 피우는 마음으로
노래를 불러야 하리
때가 되면 아낌없이
보랏빛으로 보랏빛으로
무너져 내리는 등꽃의 겸허함을
배워야 하리

<등꽃아래서> - 이해인

이 금방이라도 나타날 듯
▲ 타잔 이 금방이라도 나타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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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나무의 새순(등채)는 삶아서 나물로 무쳐 먹어도 좋다. 꽃은 등화채라 하여 소금물에 술을 치고 함께 버무려서 시루에 찐 뒤 식혀서 소금과 기름에 무쳐 먹는데, 그 옛날 지체 있는 양반들 사이에서 풍류식으로 인기가 있었다고 전한다.

에서
▲ 등숲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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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이곳에 오면 일찍 저 세상 사람이 된 큰 형님과 벗 K과 S의  얼굴이 떠오른다. 누군가 마음이 약한 사람은 오래 살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생각해 보면 이 세상 사는 일은  마음이 약해서는 자신의 의지를 제대로 펼 수 없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은 대부분은 마음이 약한 사람들이다. 이곳에 오면 나는 항상 등나무처럼 강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비록 남에게 조금 기대어 살아도 나도 누군가를 조금 도와주면서 그렇게 등나무처럼 얼켜서 살고 싶은 것이다. 가끔 정말 가끔 삶을 회의할 때 이곳을 찾으면 그 어느 곳보다 내게 무서운 생명력을 주는 숲이다.

덧붙이는 글 | 등나무 군생지는, 범어사 일주문 왼쪽 길을 접어들면, 입구의 크고 오래된 소나무들이 있고, 물소리가 나는 너덜지대 쪽에 등나무 군생지가 있다.



태그:#등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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