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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군은 방망이가 턱없이 부족하다. 방망이가 부러지면 1군에서는 그 가격에 맞는 티켓이 나오지만 2군 선수에게는 방망이 값의 절반도 안되는 가격의 티켓이 나오기 때문에 나머지는 개인 돈으로 충당하거나 빌려 쓰게 된다. 심한 경우는 100만~200만원씩 방망이 값이 용품 회사에 외상으로 밀려있는 사람도 있다."

"A급 선수들은 (연봉 협상을) 1시간을 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선수들은 길어야 10분이다."

"어느 구단의 선수에게 다른 회사의 광고 출연 제의가 들어오면 허용하지 않는다. 허용한다 해도 수익의 50%는 구단이 가져가고 세금은 선수가 내는 경우도 있다."

몇몇 고액 연봉자들의 화려함에 가린 프로야구 선수들의 열악한 이면이 공개됐다. 선수들은 야구 장비값을 내고 나면 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인 최저연봉의 고충에 대해 털어놨다. 또 구단의 일방적인 통보를 받아들여야하는 연봉 협상 방식에 대해서도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선수들은 열악한 환경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싶어도 개인적인 불이익을 당할 것을 우려해 대부분 침묵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선수들 대부분은 인권과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선수 노동조합의 필요성에 뜻을 같이 했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사무총장 권시형)는 이러한 조사 결과를 담은 '선수 인권 실태에 대한 보고서'를 12일 국회에서 열린 '프로야구 제도 및 선수 인권 실태 토론회'(민주당 천정배·최문순 의원,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이 공동 주최)에서 공개했다. 이번 조사는 선수협의 의뢰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 3일부터 8일까지 프로야구 선수 103명(1군 선수 33명, 2군 선수 68명)을 대상으로 온라인으로 실시한 것이다. 

프로야구 선수, 직업 만족도는 높지만...

보고서에 따르면 대부분의 프로야구 선수가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고 있지만 연봉 등 처우에는 불만이 높고 은퇴 뒤 진로에 불안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프로야구 선수로서 직업에 만족하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 63.1%가 '매우 만족한다', 31.1%가 '비교적 만족한다'고 답했다. '만족한다'는 응답이 94.2%로 선수들의 직업 만족도는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연봉에 대해서는 만족한다는 응답이 19.4%에 그쳤고 94.2%가 '은퇴 후 생활에 대해 불안감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설문조사와는 별로도 진행된 심층면접조사에서 한 1군 선수는 "국민들이 볼 때 야구 선수의 연봉이 큰 금액일 수 있지만 퇴직금도 없고 35살 이전에 받은 연봉만 가지고 그 이후 생활을 해야하기 때문에 결코 많다고 볼 수 없다"며 "게다가 고액 연봉자들은 전체 선수의 5~10% 밖에 되지 않는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다른 1군 선수도 "가정이 있는데 연봉 3000만원이 되지 않으면 거의 빚을 지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2군에 있으면 저축은 생각도 할 수 없고 실제 2군 선수들은 결혼도 잘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전체 프로야구 선수 463명 중 50%정도는 3000만원 이하의 연봉을 받고 있다.

특히 최저 연봉 2000만원에 대해서는 조사에 응한 선수 전원이 '낮다'고 답했다. 최근 KBO와 구단은 선수들의 노조 설립 움직임이 시작되자 최저 연봉을 2400만원으로 올리기로 한 바 있다.

한 2군 선수는 "시즌 중에 내가 잘못해 연봉이 깎이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최저연봉 자체는 더 올라야 한다"고 말했고 또 다른 2군 선수는 "선수 생명이 길지 않다는 점과 이 돈으로 가정을 꾸리는 선수들도 있음을 감안하면 최저 연봉이 3500만원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연봉 협상은 1회, 30분 안에 끝나"

구단의 일방적인 연봉 협상 방식에 대한 불만도 높았다. 연봉 협상 때 구단의 태도에 대해서는 '성실하다'가 47.6%, '불성실하다'가 52.4%로 큰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하지만 선수 경력이 쌓여갈수록 만족도는 크게 낮아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구단의 태도가 '성실하다'는 응답은 선수경력 3년차 미만 신인급과 연봉 3억원 이상 집단과 투수층에서 가장 높았고 '성실하지 않다'는 연봉 3천만~3억 원, 선수경력 7년 이상 11년 미만인 집단과 포수층에서 높게 나타났다. 연봉 협상 횟수와 시간도 1회·30분 미만이 가장 많았다.

한 1군 선수는 "서로 원하는 연봉을 놓고 협상하는 과정 없이 '이 금액 줄게 아니면 말아'라며 구단이 선수에게 통보하는 식으로 연봉협상이 이루어진다"며 "스타급 선수들은 이의를 제기해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못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1군 선수도 "조정신청까지 가는 건 구단에게 밉보이는 행동이기 때문에 잘 가지 않는다"며 "선수가 직접 조정위에 들어가거나 에이전트가 들어가서 의견을 제시하고 협상점을 찾아야 하는데 구단과 KBO는 한 팀이라고 할 수 있고 내 의견 제시 없이 그 쪽에서 내 연봉을 조정하니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에 참석한 마해영 엑스포츠 해설위원(전 롯데 선수)은 "대부분의 선수가 협상을 길게 하지 않는 이유는 여러 번 만나도 구단의 입장이 변함이 없기 때문"이라며 "매년 1월 31일까지 협상을 끝내지 못하면 2월부터 연봉이 깎이는 판이니 시간이 지나면 어쩔 수 없이 도장을 찍어야하는 상황이다, 연봉조정 신청도 공정하게 진행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런 현실 때문에 선수들은 자신의 이익을 대변해 줄 대리인 제도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 중 87.3%가 대리인 제도 도입에 찬성했다.

발제자로 나선 천낙붕 변호사(법무법인 상록)는 "이번에 조사를 하면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라는 프로야구에 남아있는 전근대적인 규약들을 보고 깜짝 놀랐는데 대표적인 게 대리인을 인정하지 않는 대면계약제도"라며 "이미 공정위의 지적을 받아 규약 본문에 대리인 제도를 명시해 놓았지만 부칙에 시행시기를 정하지 않아 본문 조항이 무력화 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프로야구 선수 71.3% "나는 개인 사업자 아닌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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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조사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부분은 프로야구 선수 상당수가 자신을 개인 사업자가 아닌 노동자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또 선수들 대부분은 노동조합 설립에 대해서도 찬성했다.

조사에 응한 선수들 중 '나는 개인 사업자가 아닌 구단에 소속된 피고용인'이라고 답한 비율이 71.3%에 달했고 88.2%는 노동조합 설립에 찬성했다. 노조 설립시 허용 범위에 대해서는 48.0%가 '선수노조 결성, 노조의 구단과의 협상권 및 파업권까지'라고 답했고 '노조 결성과 협상권까지'는 43.1%였다.

한 1군 선수는 "노조가 가장 필요한 이유는 선수들이 모르는 사이에 각종 제도가 변경되거나 선수들에 대한 처우도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라며 "노조를 만든다면 선수들이 개인적으로 나서지 않아도 노조가 사장단 회의에 대표자를 참석시켜 선수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마해영 해설위원도 "제도의 문제는 선수 개인이 KBO나 구단과 직접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선수협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지만 무시당하고 있다"며 "그래서 법적으로 힘을 받을 수 있는 노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선 박수근 한양대(법학) 교수는 "프로야구 선수가 노조법상 근로자냐 아니냐를 논하는 것은 컴퓨터로 따지면 도스 시절의 이야기"라며 "야구 선수들의 근로장소와 조건, 지시복종 등의 요소를 보면 지나가는 개도 근로자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특히 "프로야구 선수들의 노조 설립은 이미 법적으로 그 권리가 인정된 권리라고 본다, 구단들의 방해나 회유 등을 모두 법적으로 문제 삼을 수 있을 것"이라며 "문제는 이미 인정된 권리를 행사하는 데 있어서 선수들이 얼마나 의지를 가지고 불이익 등을 감내할 수 있느냐"라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국회 차원의 지원 약속도 나왔다. 최문순 의원은 "각 구단들의 노조 설립 방해에 대해서 국회 차원에서 대응책을 마련할 것"이라며 "전근대적인 프로야구 제도 개선을 위한 입법에 대해서도 검토해 볼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 만들면 구단을 없애겠다"...구단들의 노골적인 압박
12일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가 공개한 '프로야구 선수 인권실태 보고'에 따르면 각 구단들은 선수 노조 설립에 동참하려는 선수들에게 노골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1군 선수는 "구단이 선수 노조 설립을 막으려는 것은 예전부터 있어온 행태"라며 "구단의 팀장급이나 단장급이 선수협 회의에 가지 말라고 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노조 참여 선수를 방출하겠다고 명시적으로 공표한 적은 없지만 구단 자체를 없애버리겠다고 한다"며 "선수들은 국민들의 반대로 구단을 없애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압력 때문에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1군 선수도 "선수협 총회에 참석하면 불이익을 주겠다고 아예 대놓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선수들도 노조의 필요성을 느끼는 경우가 많지만 구단의 압박으로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 2군 선수도 "예전에 강병규 선수 사례도 있었고 하니 피해를 입을까봐 걱정이 된다"며 "각 팀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20명 정도를 제외하면 현실적으로 노조 동참이 힘들 것 같다"고 우려했다.

프로야구 선수협회 최문순 권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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