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6.10 항쟁 22주년 범국민대회가 치러진 시청 앞 서울광장은 10일 오후 내내 '용광로'가 됐다.

 

4대강 정비사업, 쌍용차 정리해고, 일제고사, 방송법·최저임금제·비정규직법 개정 등 다양한 현안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소통부재로 대표되는 'MB시대'를 불살랐다. 

 

환경운동단체들은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 반대 현수막을 펼쳤고 손에는 '4대강 죽이기 반대' 피켓을 들었다. 길거리로 내몰릴 위기에 처한 쌍용차 노동자들은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적힌 노란색 천을 펼쳐들었다. 지하철 청소직 등 비정규직 노동자로 꾸려진 전국여성노동조합연맹 조합원들은 '최저임금법·비정규법 개악 반대'라고 적힌 노란색 풍선을 시민들에게 나눠줬다.

 

[풍경 하나] 청소년도 시국선언... "배운대로 행동한다, 민주주의 지켜내자"

 

교복을 입고 광장으로 나온 청소년들은 "배운대로 행동한다, 민주주의 지켜낸다"란 기치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21세기 청소년공동체 '희망'에서 지난 4일부터 온라인을 통해 진행한 시국선언 동참자들. 모두 총 3076명의 청소년과 13개 청소년단체가 이 시국선언에 참가했다.

 

이들은 시국선언문을 통해 "그동안 교과서에서 배워왔던 민주주의가 무너졌다"며 "지금의 상황은 우리가 배워온 것들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게 할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소년들은 이어, "대한민국의 역사는 독재와 불의에 항거하는 민주화 항쟁의 역사이고 그 중심엔 항상 학생들이 서 있었다"며 "청소년들은 이 사회나 민주주의와 유리된 미성숙한 존재가 아니라 독재와 부당한 권력이 주는 달콤한 제안과 타협하지 않는 주체적인 존재"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국가의 수장인 이명박 대통령과 여당인 한나라당이 70, 80년대 권위주의 독재정부로 회귀하는 발상에서 벗어나 국민과 소통하고 그동안 벌어진 불미스러운 일들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사죄하길 바란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대국민 사과 ▲국책사업에 대한 여론수렴 및 공개토론 진행 ▲공기업 민영화 등 부유층만을 위한 악법 추진 중단 ▲미디어법 개정안 즉각 철회 ▲집회 시위의 자유 인정 등 6가지 요구사항을 발표했다.

 

또 이들은 지금으로부터 한 달 후까지 시국선언 동참자를 2배, 3배로 늘려 2차 청소년 시국선언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더불어 청소년 인권, 교육문제에 대한 청소년 요구를 해결할 수 있는 운동을 펼쳐나가기로 결의하기 했다.

 

이나라(가명·18)양은 "학생으로서 느끼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교육문제"라며 "일제고사나 시험점수 공개 등으로 청소년들이 입시지옥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정책이 역설적으로 우리의 경쟁력을 낮추고 있다"며 "붕어빵을 찍어내는 교육방식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뭘하고 싶은지 알아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양은 또 "청소년들이 이렇게 나서는 것을 두고 주동자가 누구냐는 식으로 평가절하하지 말아라"며 "청소년들은 지금 현 사회 문제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주례 라디오 연설을 들으며 비웃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풍경 둘] 서글픈 '가면' 쓴 쌍용차 노동자, "해고는 살인이다"

 

쌍용차 노동자 300여 명은 일찌감치 광장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일부 노동자를 제외하곤 모두가 붉은색과 금색으로 된 가면을 쓰고 있었다. 이들은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적힌 천을 펼치며 "일자리를 보장하라", "공적자금 투입하라"고 외쳤다. 광장 입구에서도 노동자들은 유인물을 나눠주며 도움을 호소했다. 

 

직장폐쇄된 공장을 지키던 노동자들의 입은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저는 쌍용차입니다"라고 적힌 부채를 나눠주던 김 아무개(34)씨는 "이 광장에 나와 시민들에게 쌍용차의 정당함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우리의 절박한 사정을 시민들이 알게 되면 도와주지 않겠냐"며 "몇몇 언론은 제대로 우리의 억울함을 알려주지만 대개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상하이차가 기술만 빼먹고 도망쳐버렸다. 강을 살린다며 22조 원이나 쓰는 정부는 쌍용차에 대해선 공권력을 투입하겠다는 말만 하고 있다. 몇 년씩 기름밥 먹으면서 열심히 일한 것이 무슨 죄인가. 정리해고 통보를 받은 2천 명이 넘는 조합원 모두가 억울해하고 있다."

 

6.10 범국민대회 무대 뒤쪽에 있던 쌍용차 노조원 A씨와 B씨는 "언론과 인터뷰를 하는 간부가 있기 때문에 실명을 밝히기 어렵다"며 인터뷰를 극구 사양했다.

 

그러나 그들은 "일부 간부들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된 지금 공장에서 봉쇄투쟁 중인 노동자들이 나오기는 쉽지 않았다"며 "우리의 사정을 시민들에게 최대한 알리는 한편, 이곳에 있는 국회의원들에게도 쌍용차 노동자들의 진실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A씨는 "지금 가면을 쓰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정리해고 대상자"라며 "노조 간부들은 얼굴이 드러나도 괜찮지만, 저들이 사진이라도 찍혀 사측으로부터 고소·고발 당하는 일이 발생할까 신변보호차원에서 쓰고 있다"고 전했다.

 

[풍경 셋] 한예종 학생들, "우리는 미래의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싸워야 한다"

 

예술계열 대학생들도 이날 광장에서 "이명박 정부가 국민들의 말할 권리를 막아 나선데 이어 문화예술에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며 문화예술을 정권의 도구화하려 하고 있다"며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이들 대학생들은 "세뇌 걸린 건 오히려 유인촌", "ART IS OUR POWER"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감사를 받고 일부 학과가 축소·폐지될 위기에 처한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은 "2009년 다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라는 글이 적힌 스티커를 가슴과 등에 붙이고 있었다. 퇴진 압력을 받다 지난 달 총장직에서 사퇴한 황지우 시인의 80년 대 초 대표시의 '2009년 버전'이었다.

 

이들은 "정부는 명분 없는 한예종 죽이기에 나설 것이 아니라 종합대 예술대에서 학생들에게 극심한 고통을 주고 있는 등록금 차등책정의 철폐와 실습지원 확충을 즉각 실시하라"고 촉구했다. 또 "'다 해결됐으니 공부해라', '세뇌된 것 아니냐' 식의 일방통행을 지속하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근본적 정책 전환을 하지 않는다면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시국선언 이후 만난 한예종 학생 비상대책위원회 김영진 의장은 "학생들과 유인촌 장관이 면담을 하고 있던 같은 시간에 신재민 차관은 교수들을 만나 '황지우 총장이 현 정권을 지지하진 않잖나, 우파 정권에 우파 인사가 있어야 하지 않냐'고 종용했다"며 분노를 터뜨렸다.

 

김 의장은 이어 "명백한 교육기관인 학교를, 특히 자율성이 인정되어야 할 예술학교에 이 정부는 자기 인사를 심으려고 한다"며 "정치적으로 한번 흔들리면 앞으로 계속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도 화나면 무섭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라고 결의를 내비쳤다.

 

김성욱 한예종 총학생회 여론홍보국 부국장은 "한예종 사태는 지금 재학생들의 문제만이 아니다"며 "지금 현재 한예종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예비 학생들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1인 시위를 하는데 한 어머님이 '우리 딸도 한예종 들어갈 것'이라며 '힘내시라'고 했다. 그 분의 딸처럼 지금 중·고등학생들은 한예종에 들어오기 위해 몇 년간 공부하고 투자를 해왔을 것이다. 한예종 학생들은 미래의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싸우고 있다." 


태그:#6.10 범국민대회, #한국예술종합학교, #쌍용차, #일제고사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