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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8일) 모내기를 하고 집에 오니 딸 아이가 '통일'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고 자기가 그린 그림을 불쑥 내밀었습니다. 아빠를 닮아 그런지 그리기 실력은 영 아닙니다. 미술학원에 보내 교육을 시켜볼까 생각은 했지만 그림 그리는 실력이 애초에 없으니 돈 낭비 시간 낭비라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한 번씩 그린 그림을 보면 아무리 아빠를 닮아도 그렇지 너무 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자기 엄마를 닮았다면 이런 일은 없을 것인데 말입니다. 못난 것은 닮지 말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면 그리기 공부하라도 해야 하는데 덜렁덜렁 하는 성격 때문인지 그리기 공부에는 영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어쩝니까. 아빠 때문인 것을.

 

그래도 자기가 그린 그림은 아빠에게 보여줍니다. 내민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딸 아이 그린 그림에는 태극가와 함께 북한 '인공기'가 있었습니다. 인공기를 보고 사실 가슴이 좀 뜨끔했습니다. 시절이 시절인지라 박물관에나 가야 할 국가보안법이 생각났습니다.

 

"여보 서헌이가 인공기 그렸는데 경찰이 딸 교육 잘못 시켰다고 잡아 가면 어떻게 할래요?"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아무리 그래도 딸이 인공기 그렸다고 아빠를 잡아 가는 일이 어디있어요?"

"북한 인공기 그린 것을 쉽게 생각하지 말아요. 국가보안법에는 아직도 북한은 반국가단체인데. 인공기를 그렸으니 잡아갈 수도 있지요."

"아직도 북한이 반국가단체예요?"

"아마 그럴거. 그래도 이미 서헌이가 그린 것을 어떻게 하겠어요."

"다른 나라 국기도 그리는데 북한 국기를 그리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걱정하지 말아요. 아빠가 딸이 인공기를 그려왔다면 칭찬을 못해줄 망정 겁부터 먹어요?"

 

아내가 나보다 낫습니다. 사실 아내가 강단이 있습니다.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르다고 분명하게 말하지요. 하기사 딸이 인공기 그렸다고 아빠를 잡아가면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 아니지요.

 

보기 좋았습니다. 솔직히 나는 인공기를 직접 그려 본 일이 없었습니다. 나도 그리지 못한 것을 딸 아이가 그렸으니 잘 그렸다고 말했습니다. 그림 실력은 별로이지만 태극기와 인공기를 함께 그렸다는 것은 대단한 일 아니겠습니까?

 

새긴 문구가 재미있습니다. "우리 소원은 통일, 통일이 될까지 열심히 달리자." 자세히 보니 '통일이 될' 다음에 '때'를 빼먹어버렸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지요. 통일이 될 때까지 열심히 달려야 합니다.

 

"예쁜 아이 우리 서헌이 이 문구 네가 썼어?"
"응 내가 썼어요."
"왜 통일이 될 때까지 열심히 달려야 하지."

"통일이 되기까지 아직 많이 남아 있잖아요. 열심히 달리지 않으면 통일이 되기 힘들어요."

 

동무들과 함께 왔는데 물어보니 한 명은 인공기는 그리지 않았고, 한 명은 그렸다고 했습니다. 문구는 어떻게 썼는지 물었습니다. "휴전선을 지우면 통일은 이루어진다" 와 "평화통일을 이루자"를 썼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썼다는 문구 내용을 듣고 우리 어른들보다 낫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들은 휴전선을 없애고, 열심히 뛰면 통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공기를 태극기와 함께 그려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지금 이 아이들 생각이 부러웠습니다. 딸 아이가 아빠 나이가 될 때쯤이면 한반도에는 평화가 완전히 정착될까요? 아니면 딸 아이도 군사충돌을 우려하는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할까요? 그것은 바로 어른인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태그:#태극기, #인공기,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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