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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새롭게 조성된 지하 캠퍼스다.
▲ 이화여대 ECC 최근 새롭게 조성된 지하 캠퍼스다.
ⓒ 성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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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쉴 만한 공간도 여의치 않고 공부할 공간이 많지 않아요."

"장학금 수혜자는 여전히 적은 걸요. 정확히 알지 못해 놓치는 장학금도 많고."
"인문대나 생활대 건물은 냉난방도 부실하고 낡았는데도 언제 개선될지 모르겠어요."

지난 1일 찾은 서울 이화여대. 최근 들어선 ECC(지하캠퍼스)는 고급스러웠다. 국내 대학 중 가장 비싼 등록금을 받고 있는 대학답게 학생들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는 것 같았다. 그런데, 학생들의 생각은 이런 외형과는 많이 달랐다.

등록금 낸 만큼 좋은 혜택을 받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학생들은 부정적인 답변을 쏟아냈다. 등록금은 점점 비싸지고 있으나 학교 생활이 그에 비례한다고 보지는 않는 분위기. 등록금이 많이 오른 만큼 혜택을 받고 있다는 학생은 드물었다.

그나마 학교생활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축제가 활성화됐다'거나 'ECC의 피트니스 시설이 좋아졌다'는 것. 하지만 이 역시 ECC에 상업 공간이 많아 학교가 임대료 수익만 올리고 있다거나, 총학의 등록금 협상 자세를 지적하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비교해 겨우 끄집어낸 이야기들이었다.

친구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다가 대화에 끼어든 예체능계의 한 학생은 등록금 문제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다 이렇게 한탄했다.

"스물넷에 지금껏 학교 다닌 것밖에 없는데, 빚만 1600만원이 된다는 게 너무 서글퍼요. 아직 졸업도 못해 억울하건만…." 

서울시내 대학 중 등록금 1위 이화여대... 학생 복지 나아졌나?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 문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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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과 학부모를 옥죄고 있는 고비용 등록금 문제는 서민 가계에 큰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1년에 1000만 원 가까운 학자금 지출에 맘고생 안 하는 사람은 드물 정도. 더구나 경제 불황의 시대에 그 중압감은 한층 심해지고 있다.

그나마 비싼 등록금 낸 만큼 학교생활의 질이 좋아지고 학습 환경이 좋아졌다면 위안이 될 수도 있겠으나, 학생들 반응은 긍정적이지 않았다. 학생들에 따르면 서울시내 대학 중 등록금 랭킹 1위인 이화여대의 올해 등록금은 일반학과의 경우 400만 원 선. 예체능계는 580만 원 선이다. 신입생들은 여기에 입학금이 100만원 정도 추가된다고 했다. 

올해는 등록금이 동결됐다지만 연 1000만 원 안팎의 등록금인지라 등록금 이야기를 하는 학생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밝았던 얼굴도 등록금 이야기를 시작하면 금방 시무룩해졌다. 그러다 보니 비싼 등록금과 관련해 학생들이 내놓는 불만은 공통적이었다. 장학금은 늘지 않고, 학생들을 위한 공간이 부족하다는 것. 등록금만 비싸졌을 뿐 학생들에게 돌아오는 혜택은 특별히 나아진 게 없다는 것이었다.

"ECC, 상업시설만 잔뜩 있고 편의시설은 부족"

정윤지(법대)씨는 "ECC를 만들면서 (학교 측이) 강의실 및 도서실 확충, 학생들의 휴게 공간과 동아리방 등을 만들어 주겠다고 했으나 1~2층에 강의실과 열람실만 늘려 놨을 뿐"이라며 "학생들과 논의도 안 하다가 일방적으로 결정해 통보할 만큼 학생들의 의견이 무시됐다"고 밝혔다.

또 "ECC에 학생 공간 대신 임대 공간이 많이 들어선 것 같은데,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라고 해도 학교 측이 규정상 안 된다는 말만 하고 있다"고 전했다. 등록금은 비싼데 학생을 위해 활용되어야 할 공간이 학교의 수익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4학년이라고 밝힌 이아무개 학생도 "ECC에 놀고 있는 공간이 많지만 활용하지 않는 것 같다"며 "옷집, 기념품 가게, 영화관 등 상업 시설만 잔뜩 들어와 있고 학생들의 편의시설은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올해 입학한 1학년 김지연 학생은 "열람실도 처음에는 24시간 개방을 약속했다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이를 지키지 않고 있고, 사물함도 부족해 아침 일찍부터 줄 서야 하는데다 앉아서 쉴 소파도 부족하다"면서 고비용 등록금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않고 있는 환경에 불만을 나타냈다. 그는 "공부하다 쉴 수 있는 수면실이 있으나 30개밖에 안 돼 번호표를 받아서 이용해야 한다"며 "이용 여건이 불편해 사용에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장학금 문제에 대해서는 학생들의 불만이 특히 높았다. 학생들의 공통적인 주장은 장학금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 적다는 것. 장학금 관련 공지가 뚜렷하지 않아 놓치는 장학금이 많고, 복지장학금 기준이 지나치게 까다롭다고 했다. 장학금 수혜자라도 많아야 고비용 등록금 문제를 헤쳐 나갈 수 있는데, 비싼 등록금만큼 장학 혜택은 늘고 있지 않다는 것이 학생들의 생각이었다. 등록금에 눌린 나머지 몸매 관리를 핑계로 점심을 거르는 학생들도 있을 정도라고 한 학생은 귀띔했다.

학교 측 "상업시설 5%... 불만은 이전 총학 논리"

이대 지하 캠퍼스에 증설된 열람실
▲ ECC 내 열람실 이대 지하 캠퍼스에 증설된 열람실
ⓒ 문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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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펀드 손실 부분에 대해 학생들은 의문을 품고 있었다. 2003년 연대와 이대가 함께 투자한 '삼성 아카데미 예스 펀드'가 투자 손실을 입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펀드 손실을 등록금으로 메우지 않았겠느냐는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펀드 투자 사실이 오래 전 언론에 보도됐음에도 학교 측이 부인하고 있는 것이 이런 심증을 키우는 데 한몫했다.

이와 관련, 언론은 지난 5월 교육부가 공문을 통해 일부 대학들의 투자 손실을 감추도록 했다고 보도했다. 보도 내용에 따르면 '50% 이상 손실이 난 것이 아니라면 결산에 반영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학생들의 주장에 대해 학교 측 관계자는 인정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학생들의 주장은 이전 총학생회에서 주장하던 내용이라는 것. 기획처의 한 관계자는 "동아리방 개설 등은 학생들의 요구사항이었을 뿐 학교 측이 약속한 사안이 아니며, ECC 상업시설은 5%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어 "빈 공간이라 말하는 곳도 모두 강의실이지 놀리는 공간은 없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학생들은 상업시설이라고 하는데 학교 측에서 볼 때는 편의시설이다"라며 "고급스런 식당 등을 지적하는데, 학교가 학생들만 있는 곳은 아니지 않냐, 교수님들을 위한 배려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수면실과 피트니스센터 등의 편의시설도 다른 대학에는 없는 것으로, ECC에 와 본 다른 대학 학생들은 이대의 환경을 부러워한다"고 밝혔다. 옷집, 기념품 가게, 영화관 등도 패션디자인 전공학생들과 학내 생활협동조합에서 운영하고 예술 영화를 상영하는 곳들인데, 이를 상업시설이라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또 이 관계자는 학생들이 쉴 수 있는 공간도 많이 만들었으며, 세미나실도 42개나 마련해 놨을 만큼 학생들을 배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ECC 내 열람실도 대폭 확대했다는 것. 강의실 등은 첨단 시설로 관리가 필요해 사용허가원을 받고 있으며, 신청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불만이 가장 큰 장학금과 관련해서는 "학교 측도 등록금 옴부즈맨 제도 등을 만들어 학생들의 처지에서 적극 노력하고 있다"며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위해 개인 사정이 알려지지 않도록 개별 심층 상담을 통한 지원활동을 펴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기초수급 생활자들에게는 100%를 지급했으며, 서류로 입증할 수 없는 경우나 갑작스럽게 가계에 어려움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원하는 학생들은 최대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학금과 관련된 사항은 홈페이지에 공지를 하고 있기 때문에 필요한 학생들은 스스로 잘 찾아서 혜택을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등록금 환원 비율이 100%가 넘고 학교 재정에서 등록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40%선에 불과해 등록금만 가지고 운영하는 일부 학교들과는 다르다"면서 "올해는 장학금도 30억 이상 늘렸으며 학생들에게 좋은 여건을 제공하기 위해 학교 측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펀드 부분과 관련해서도 "이대는 보수적이고 안정적으로 투자하기에 초기에 펀드를 뺐다"면서 "펀드와 관련해 학교가 손해 본 것은 없다"고 밝혔다. 그는 "학생들이 잘못 알고 있어서 그런 주장을 펴는 것"이라며 "재무와 관련된 내용을 정확히 알지 못 할 것이다"고 설명했다.

자료 공개 거부하는 학교 태도 믿기 어려워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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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학생들 역시 학교 측 태도를 수긍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ECC 내 세미나 공간을 마련했다고 해도 외부인들이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사용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해 학생들이 꺼리고 있다는 것.

한 학생은 "세미나실을 사용하려면 인터넷으로 신청하고 활동 허가원을 제출해 승인받아야 한다"며 "학교 측이 학생들의 자치 활동을 제약하려는 분위기라 강의실 등에서 모임을 하려고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학생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는 빈 강의실이 수두룩한데 이것이 놀리는 공간이 아니면 뭔가"라고 반문하며 "학교 안에 영화관과 커피숍, 고급스런 식당이 꼭 필요한가? 그렇다면 관련 자료를 공개하면 되는데, 규정상 안 된다며 거부하고 있지 않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러니 학교에서 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ECC 공간 활용 건의 경우 학교 측이 간담회를 통해 학생들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겠다고 한 사안인데, 일방적으로 결정해 놓고 이제 와서 모른 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수면실 등은 여학교라 그런 공간이 없다가 생겨난 것 뿐인데, 학교 측이 지나치게 생색내고 있다는 것.

학교 측은 ECC가 학생들에게 충분한 혜택을 주는 공간이라고 설명하고 있었지만, 학생들은 일부 시설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학교 측이 이야기하는 등록금 옴부즈맨 제도도 형식적이라는 것이 학생들의 지적이었다. 조형대의 한 학생은 "등록금 옴부즈맨 제도는 현재 총학이 제안한 것인데, 주변에 등록금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질적으로 혜택을 본 사람은 적다"고 말했다.

이는 등록금 옴부즈맨 제도가 정규 등록금 납부 기간이 끝난 뒤 시행돼 헤택을 본 학생들이 많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대학보>에 따르면 등록금 옴부즈맨 혜택을 본 학생은 37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대학보>는 등록금이 차지하는 비율과 관련, 학교 측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등록금 의존율(48.77%)이 낮은 것은 파주 토지매입과 관련해 전체 예산액이 증설돼 상대적으로 낮아 보이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올해 이대 예산은 3903억원이며 이 중 파주캠퍼스 관련 예산액은 전체 1/3에 달하는 1240억원, 등록금 수입액은 1903억원이라는 것이다.

총학, 등록금에 좀 더 관심 가져주면 안 되겠니

이는 자연스레 현 총학생회에 대한 불만으로도 나타나고 있었다. 체육학과 최아무개씨는 "작년 총학은 등록금 문제에 적극적이었는데 이번 총학은 대응이 늦다"며 "총학의 활동방식이 달라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경영대의 한 학생도 "지난 총학은 ECC와 관련해서도 학생들의 처지에서 적극 나서 학교와 마찰이 많았는데, 현 총학은 학교에 잘 협조하는 분위기로 보인다"며 "그래서 학교 측이 학생들의 불만을 이전 총학의 주장이라 말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체육학과 이아무개씨도 "지난번 총학은 삭발이나 단식 등을 통해 계절학기 수강료를 내리는 등의 성과를 보였는데, 지금 총학은 상대적으로 활동이 눈에 안 보이는 것이 사실"이라며 등록금 문제와 관련한 총학의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했다.

이씨는 "예전에는 학점당 10만원 정도로 수강하는 학점에 대한 강의료만 내면 됐으나 현재는 3학점 단위로만 신청할 수 있어 4학점을 들어야 하는 학생도 6학점에 해당하는 수강료를 내야 한다"며 "듣지 않는 학점의 수강료를 내야해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데, 이런 것은 총학의 의지 문제 같다"고 말했다.

그는 "총학 선거 투표율이 낮고 학생들이 적극적인 표현을 안 하는 것이 총학생회 활동이 눈에 띄지 않는 원인인 것 같다"고 진단하고 "올해 등록금이 동결됐지만 총학이 나서 계절학기 비용은 낮춰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이대 학생투쟁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나위 학생은 "느끼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총학이 등록금 문제에 무관심하지는 않다"며 "다만 제도적 틀 안에서만 활동하려 하는데, 조금 더 적극적인 모습이 아쉬운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태그:#이화여대, #등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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