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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님께,

 

안녕하십니까? 저는 평화네트워크라고 하는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정욱식이라고 합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이어 이명박 대통령님께 마지막 편지를 띄웁니다. 공허한 말씀이 될 줄 알면서도, 대통령께 간절히 호소하고 싶습니다. 대통령께서 조금만 생각을 달리하신다면, 한반도 위기를 타개하고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구축한 역사의 주역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전쟁 이후 최대 위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반도 정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강력한 만류와 경고에도 인공위성 발사와 2차 핵실험을 강행한 책임이 큰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께서 취임하신 이후, 6·15와 10·4 선언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시고, '흡수통일'로 해석될 수 있는 정부 안팎 고위급 인사들의 부적절한 발언과 6자회담에서 한일간의 강경 연대, 그리고 최근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참여 선언도 남북관계를 비롯한 한반도 정세 악화의 큰 요인이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오바마 대통령께 드린 편지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한미 양국이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문제를 거론하면서 작전계획 5029를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북한의 반대에도 대규모의 한미합동군사훈련 '키 리졸브'를 강행한 것 역시 사태 악화의 중요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위성 발사 움직임에 대해 한국이 강경 대응을 주도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악수(惡手)였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입니다. 첨예한 위기와 극적인 기회가 반복해온 한반도 정세는 대통령께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위기가 현실화될 수도 있고, 극적인 돌파구를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때마침 6월 11일 남북한의 개성접촉과 6·15 공동선언 9주년, 그리고 6월 16일 한미정상회담 등 반전을 도모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들이 대통령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쩌면 올해 6월이야말로 한국이 주도적이고 창의적으로 문제 해결을 도모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운명적 순간에 역사적인 역할'을 해야 할 책무가 대통령께 있는 것입니다.

 

국내 정치 이용 유혹을 뿌리치십시오

 

최근 정부가 국내 정치적 국면전환을 위해 남북관계를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이 전달한 대북 군사정보를 부풀려 언론에 흘렸다가 미국으로부터 항의를 받았던 일, 국가정보원이 국회의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북한의 후계자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한 일, 통일부 장관이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과 후계 문제를 언급하면서 북한의 대외 강경책을 내부 원인으로 돌린 일, 육해공이 서로 경쟁적으로 북한에 대한 강경대응을 천명하고 있는 일 등은 이러한 의구심을 사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이러한 정부의 언행은 남북관계와 한반도 위기를 타개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국민들도 이에 현혹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대통령께서는 인식하셔야 합니다. 일각에서는 국민들의 '안보불감증'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대북관계를 접근하는 것에 국민들이 부화뇌동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습니다.

 

북한의 2차 핵실험과 남한의 PSI 전면참여 선언, 그리고 이에 대한 북한의 군사적 위협과 남한의 "단호한 대응" 등이 잇따르면서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고 있음에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대통령님과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는 것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국민들의 3분의 2가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는 것에 대해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께서 하지 말아야 할 일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북한 경비정의 북방한계선(NLL) 월선이 반복되더라도 절대로 먼저 공격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남측의 선제사격으로 교전사태가 발생하면, 확전의 위험도 클 뿐만 아니라 개성공단에 체류하고 있는 남한 국민들의 안전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북한은 남한의 선제사격을 문제삼으면서 전시상태를 선포하고 군사분계선을 차단하는 것으로 대응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는 북한 강경파의 의도에 정확하게 말려드는 일이기도 합니다.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군사력이 밀집된 한반도에서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도 현명한 방법은 무력 충돌 방지에 있다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6월 11일, 6월 15일, 그리고 6월 16일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한국이 주도적으로 돌파구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는 오고 있습니다. 6월 11일에 열릴 2차 개성공단 실무접촉, 9주년을 맞이하는 6·15 공동선언, 그리고 6월 16일 한미정상회담 등 세 개의 구술을 잘 꿰면 '보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2차 개성접촉에서는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의제를 제시해 남북대화의 기회로 삼는 것이 중요합니다. '6·15와 10·4 선언 이행 문제를 협의하자'며 남북장관급 회담 개최를 제안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대통령께서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신 현대아산 직원과 개성공단 문제는 이러한 큰 틀의 접근이 있지 않으면, 풀 수 없는 사안들입니다. 대통령께서도 두 선언을 존중한다고 여러 차례 말씀하신 만큼, 장관급 회담 제안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단히 화난 북한이 즉각적으로 호응해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6월 15일이 중요한 까닭입니다. 대통령께서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6·15와 10·4 선언 이행 의지를 천명한다면, 남북대화의 문을 열 수 있는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집니다.

 

그리고 6월 16일 한미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의 원칙을 확고히 밝히면서 극적인 반전을 도모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제안을 내놓는다면, 위기의 한반도는 기회의 한반도로 바뀔 것입니다. 저는 이미 오바마 대통령께 드리는 편지에서 구체적인 정책 제안을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6·15와 10·4를 딛고 서야 역사의 주역이 됩니다

 

저는 대통령께서 잠시 눈을 감고 한반도에 무엇을 남겨주실지, 후대의 역사가는 대통령님을 어떻게 평가할지를 생각해보시길 부탁드립니다. 저는 대통령께서 마음만 먹는다면, 6·15와 10·4를 훨씬 능가하는 찬란한 업적의 주인공이 되실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물론 이를 위한 대전제는 6·15와 10·4의 존중과 이행입니다. 이는 결코 햇볕정책으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발전적 극복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두 선언을 딛고 서야만, 두 선언을 뛰어넘는 성과를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통령님의 임기 마지막해인 2012년은 오바마 대통령의 1기 임기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 대통령께서도 느끼셨겠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동맹국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지도자입니다. 과거에 한국이 아무리 좋은 정책을 세워도 미국의 반대와 방해 때문에 힘들었던 것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두 정상께서 손을 잡고 20년간 끌어온 북핵 문제와 60년을 넘긴 냉전체제에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의 과감하고 전향적인 변화 못지않게 한미 양국도 변해야 합니다.

 

2012년은 또한 북한이 "강성대국의 문을 활짝 열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때입니다. 아마도 김정일 위원장은 선군정치의 지속과 선민정치로의 전환을 고민하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대통령께서 오바마와 함께 이러한 김정일의 고민을 파고든다면, 대전환의 시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오랏줄'을 '길'로 만들어 네트워크 시대를 열어주십시오

 

대한민국은 60년 넘게 분단과 냉전이라는 거대한 장벽에 막혀 섬보다도 못한 신세로 살아왔습니다. 유럽에서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0년이 되어가고 있지만, 한반도의 철조망은 더욱 날카로워지고 있습니다.

 

흔히 21세기는 '거대한 그물망'의 시대라고 합니다. 모든 것이 서로 얽혀있어 혼자만의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거대한 그물망을 달리 표현하면 '네트워크'입니다. 네트워크 시대에 가장 중요한 힘은 '관계'에서 나옵니다. 냉전시대, 관계의 지혜가 '원교근공(遠交近攻)'에서 나왔다면, 이제는 가까운 곳에서부터 관계를 잘 풀어 한국의 스마트파워를 넓혀갈 수 있는 '동심원 전략'이 요구됩니다.

 

'친디아'라는 신조어를 낳을 정도로 21세기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과 인도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두 나라가 부상할 수 있었던 결정적 배경은 주변국들과의 적대관계를 우호관계로 변화시킨 데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까지 중국과 대만은 남북관계를 부러워했습니다. 개성공단으로 상징되는 남북경협과 한반도 평화협정 논의가 자신들의 처지와 대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양안관계를 부러워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대통령께서 생각을 달리하신다면, 지난 60년간 한국의 몸을 묶어온 '오랏줄'을 '길'로 전환시켜,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네트워크 시대의 주역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코리아'의 출발점은 남북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대통령님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2009년 6월 8일 평화네트워크 대표 정욱식 드림


태그:#이명박, #남북관계, #북한 핵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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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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