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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는 오목눈이 새알집에 자기 알을 서너개 몰래 낳놓고 매일처럼 뻐꾹뻐꾹 울어댄다.
 뻐꾸기는 오목눈이 새알집에 자기 알을 서너개 몰래 낳놓고 매일처럼 뻐꾹뻐꾹 울어댄다.
ⓒ 윤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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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가 피나게 울고 있다. 아침부터 해질 무렵까지 하도 울어 목이 쉬었다. 뻐꾸기는 먼 남쪽에서 날아온 철새이다. 5월에 산촌마을을 찾아와 서럽도록 하루 종일 울고 있다. 암컷은 '삐 삐 삐삐' 소리가 시답잖고 수컷만 '뻐꾹뻐꾹' 숨이 차오르도록 꾹꾹거린다.

암수는 말만 부부이지 단독생활자이며 영원한 방랑자이다. 관목 사이에 살며 집도 짓지 않고 새끼를 남의 둥지에 길러내는 의탁조류이기에 게으르고 뻔뻔스러움의 대표적인 새이다. 알을 낳을 때가 되면 멧새나 오목눈이의 둥지를 살피다 그들이 알을 낳아 집을 비운사이 냉큼 서너 개 알을 낳아 섞어놓는다. 눈치를 채지 못한 오목눈이는 뻐꾸기 알들을 정성스레 품어 부화를 시켜낸다. 

이때부터 수놈뻐꾸기는 둥지를 맴돌며 더욱 처절하고 구슬프게 울어댄다. 사실, 슬픈 곡조로 들리지만 새끼와 교감을 나누는 영혼의 울림이다.

'아가야, 너는 뻐꾸기 새끼야, 오목눈이에겐 미안하지만 그 새끼들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야 네가 산다. 어서 힘을 내, 어깨 죽지로 밀어내는 거야, 오, 내 새끼 착하지, 힘을 더 내 뻐꾹, 영차... 영차.. 뻐꾹뻐꾹, 참 잘한다. 부끄러울 것도 체면도 없어, 너의 고조부와 증조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주인 새끼들을 둥지에서 밀어내고 살아남는 것이 우리조상들의 생존법이란다, 뻐꾹뻐꾹.'

우리 동네 시골촌부들은 작약 꽃몽우리를 '새알꽃'이라 부른다.
 우리 동네 시골촌부들은 작약 꽃몽우리를 '새알꽃'이라 부른다.
ⓒ 윤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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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실도 모르는 멍청한 오목눈이는 열심히 새끼들을 다독이며 길러 낸다. 배은망덕하게도 뻐꾸기 새끼들은 둥지를 독차지해 가짜 새끼노릇하며 얻어먹다 20일 경이면 완전히 둥지를 떠나간다. 고맙단 말 한마디 없이... 허참, 기가 찰 노릇이다. 그러나 오목눈이는 둥지를 떠난 새끼들에게 일주일간이나 더 먹이를 잡아 먹이며 보살펴 키워낸다. 이 기막힌 현실을 어찌 설명해야 좋으랴, 조물주의 오묘한 섭리를 그 누가 헤아린단 말인가.

뻐꾸기 소행이 아무리 뻔뻔스럽다한들 시골 촌부들과는 멀리 할 수가 없다. 뻐꾸기는 오랜 세월동안 촌부들과 보리 고개를 같이 넘고 슬픔과 애환을 함께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뻐꾸기 소리 없는 고향의 긴 여름이 고적하여 어찌 살아갈까 싶다.

우리 동네 촌부들은 작약 꽃 몽우리를 '새알 꽃'이라 부른다. 뻐꾸기가 오목눈이를 밀어내 떨어뜨린 자리에 서러운 꽃이 피어난다고 믿고 있다. 새알 꽃은 오목눈이의 영혼을 달래듯 산 속에서 순백의 하얀 모습으로 피어난다. 색상이 하도고와 옥양목 색깔인가 하면 하얀 이슬방울을 머금은 듯 맑고 청아하다. 오늘도 뻐꾸기 울 때마다 서럽도록 시린 새알 꽃들이 하나둘 피어나 은은한 향기를 더해가고 있다. 오목눈이의 넋이 산화해 꽃으로 피어난 백작약 몽우리가 오늘따라 더욱 애처롭다.

서럽도록 시리게 피어나는 백작약
 서럽도록 시리게 피어나는 백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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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개한 백작약, 산 속에서 핀다.
 만개한 백작약, 산 속에서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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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뻐꾸기 새끼들이 오목눈이의 어린것들은 다 밀어내고 집을 독차지했나 보다. 처절하게 울어 목이 쉰듯하던 뻐꾸기 목소리가 가라앉아 푸른 산을 일으켜 세우고 있다.

뻐꾸기를 비롯해 많은 철새들이 날아와 숲 속이 수런거리고, 산과 들에 기름기가 흐르면 개망초 사이로 감자 꽃이 꿈처럼 피어난다. 초록바다에 자주색 물결, 흰 꽃 몽우리들의 작은 속삭임, 줄기마다 출렁대는 파란 잎사귀들, 벌 나비들이 모여들어 붕붕 생기가 넘쳐난다. 바람 불어 감자 꽃 내움이 코를 찌르고 감자마다 통 알을 갖느라 밭고랑이 뜨거워온다.

여름을 뜨겁게 달궈내는 감자꽃
 여름을 뜨겁게 달궈내는 감자꽃
ⓒ 윤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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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울음 소리에 감자알들은 하루게 다르게 '통통' 살이 오른다.
 뻐꾸기 울음 소리에 감자알들은 하루게 다르게 '통통' 살이 오른다.
ⓒ 윤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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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피터지게 울어대는 뻐꾸기, 멍청한 오목눈이는 소리에 감전이나 된 듯 열심히 먹이를 물어다 뻐꾸기 새끼들을 길러내고, 감자알들은 통통 살이 오른다. 뻐꾸기 소리가 온 산을 일으켜 세울 때마다 따가운 햇볕이 작정 없이 밀려오고 여름이 점점 깊어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다음카페 북한강 이야기 '윤희경 수필방'에도 함께합니다. 쪽빛강물이 흐르는 북한강상류를 방문하면 농촌을 사랑하는 많은 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꽃처럼 살고 싶다면'..
올 사월에 윤희경 기자(011-9158-8658)가 펴낸 '그리운 것들은 산 밑에 있다.' 포토에세이를 한 번 만나보세요.



태그:#오목눈이 새알, #새알꽃, #백작약, #감자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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