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편집자말>

며칠 전 일이다. 용산철거민 참사 추모집회에 참가했던 지적장애인 임○○씨가 영등포구청역에서 경찰 무전기 탈취 사건에 연루되어 성동경찰서에 체포되었다. 그는 집시법위반, 공무집행방해, 일반교통방해로 구속영장이 나와 서울구치소로 이송되었다.

 

현행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사법기관은 장애인이 형사 사법 절차에서 보호자, 변호인, 통역인, 진술보조인 등의 조력을 받기를 신청할 경우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하여서는 아니 되며, 조력을 받을 권리가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진술로 인하여 형사상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임○○씨에게 보호자 등 신뢰관계에 있는 자를 동석할 수 있다는 것과 본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내용조차 고지하지 않은 채, 단지 "(임○○씨가) 말할 줄 아니까 단독 진술 받았다"고 설명했다.

 

지적장애인의 진술 능력을 대폭적으로 신뢰(!)한 믿음직한 경찰 덕에 지적장애가 있는 임○○씨는 부모조차 동석하지 못한 상황에서 심문을 받아야 했다. 이러한 행위가 임○○씨의 지적장애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며, 법으로 명시한 형사 사법 절차에서 조력 받을 권리를 박탈한 '차별'이며 '인권 침해'라는 사실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몇몇 경찰을 빼고는….

 

 엄마(김혜자 분)의 아들 도준(원빈 분)은, 흔한 말로 어디인가 약간 모자라다. 도준은 지적장애인처럼 학습 능력이 낮은 것도 아닌 듯하고, 발달장애인처럼 혼잣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정신분열증을 앓는 것은 더더욱 아니지만, 어수룩하고 부족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엄마(김혜자 분)의 아들 도준(원빈 분)은, 흔한 말로 어디인가 약간 모자라다. 도준은 지적장애인처럼 학습 능력이 낮은 것도 아닌 듯하고, 발달장애인처럼 혼잣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정신분열증을 앓는 것은 더더욱 아니지만, 어수룩하고 부족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 바른손㈜

봉준호 감독의 <마더>를 보면서 며칠 전 사건이 떠오른 것은 <마더>의 영화 속 사건이 현실에서 거의 유사한 형태로 여전히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김혜자 분)의 아들 도준(원빈 분)은, 흔한 말로 어디인가 약간 모자라다. 도준은 지적장애인처럼 학습 능력이 낮은 것도 아닌 듯하고, 발달장애인처럼 혼잣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정신분열증을 앓는 것은 더더욱 아니지만, 어수룩하고 부족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여고생 살해혐의로 경찰에 잡혀 들어가서 심문받을 때 도준의 모습에서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경찰은 도준에게 여고생을 왜 살해했는지 묻지만, 도준은 이를 부인한다. 그런데 자신이 여고생을 살해했음을 인정하는 조서에 지장을 찍으라고 경찰이 이야기하니, 글을 읽고 난 후, 그냥 찍고 만다. 글을 읽을 줄은 알되,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앞서 임00씨가 경찰 폭행 사실에 대해 계속 부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을 폭행했다는 내용이 조서에 씌어 있었고, 지장을 찍은 장면과 유사하다. 그 결과 영화 속 도준은 여고생살해죄로 구속수감되고, 현실 속 임00씨는 공무집행방해죄로 구속수감되고 만다. 우리 사회에서 제 스스로 권리를 찾지 못하는 약자들이 강자들로부터 어떤 식으로 자신의 인권이 유린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마더>를 보는 사람에 따라 이해하는 바가 다양하겠지만, 내 경우에는 우리 사회 강자들이 약자를 어떤 식으로 대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하였다. 여고생 살해 현장 근처에 도준이 갖고 놀던 골프공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잡혀 들어간 도준의 상황은 말할 나위 없거니와, 이후 여고생을 살해한 진범으로 잡혔다는 사람마저도 지적장애인(다운증후군, 영화 <제8요일>에 등장하는 장애인 범주이다)이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도준에게 여고생을 왜 살해했는지 묻지만, 도준은 이를 부인한다. 그런데 자신이 여고생을 살해했음을 인정하는 조서에 지장을 찍으라고 경찰이 이야기 하니, 글을 읽고 난 후, 그냥 찍고 만다.

경찰은 도준에게 여고생을 왜 살해했는지 묻지만, 도준은 이를 부인한다. 그런데 자신이 여고생을 살해했음을 인정하는 조서에 지장을 찍으라고 경찰이 이야기 하니, 글을 읽고 난 후, 그냥 찍고 만다. ⓒ 박용민

그를 보자마자, 도준의 엄마는 '이 아이도 도준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보호해줄 사람이 없구나. 그래서 억울하게 잡혀 들어왔구나'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리고 통곡을 한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잡혀 들어간 자기 아이를 살리기 위해 또 다른 억울한 이를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는 죄책감과 두려움으로.

 

"너 엄마는 있니…"라는 엄마의 대사는,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지적장애인의 유일한 보호자로서 상징되는 엄마가 있는 도준은 물론이거니와, 도준과 달리 엄마마저도 없는 지적장애인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인권을 보장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2009.06.03 14:01 ⓒ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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