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자사고 대응을 위한 공동행동' 등 교육 관련 시민단체들은 1일 오전 10시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부 학교가 '자율형사립고' 신청을 위해 절차와 명분을 잊은 채 막가파식으로 밀어붙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자사고 대응을 위한 공동행동' 등 교육 관련 시민단체들은 1일 오전 10시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부 학교가 '자율형사립고' 신청을 위해 절차와 명분을 잊은 채 막가파식으로 밀어붙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 김환

관련사진보기


서울교육청이 지난 5월 29일 마감한 자율형사립고 신청 학교 33개의 명단을 6월 1일 공개했다. 애초 희망보다 줄어들기는 했지만, 예상대로 부자 동네 강남구 4개, 서초·송파구 각 2개인데 반하여 가난한 동네인 금천, 도봉, 성북, 중랑, 용산구는 아예 신청한 학교가 하나도 없어 지역적 편차를 나타냈다.

서울 25개 자치구 중에서 최소 5개구는 자율형사립고 신청학교가 없어 각 구별로 하나씩 설립한다는 서울교육청의 계획은 신청 단계부터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게 됐다. 이 중에는 재정자립도가 1%도 안 되거나 최소한의 법정전입금도 내지 못하는 학교들이 상당수다.

어차피 재정운영 계획과 교육과정 운영 계획이 신청 기준에 맞도록 작성된 페이퍼 상의 계획이기 때문에 이것이 자율형사립고 선정에 결정적 변수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 각 학교 이사장들과 교장들은 자율형사립고 최종 선정에서 결정적인 변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자율형사립고 선정에 목숨 거는 학교들

얼마 전 자율형사립고를 신청한 J학교와 D학교 교사들이 만났다. 그들은 웃으면서 자율형사립고 선정 라이벌이라며 서로 자기 학교가 선정될 것이라고 우겼다. 한 학교의 교사는 "우리 학교는 대한민국 종교를 대표하는 학교이며, 졸업생인 교과부 차관이 밀어주는 학교이니 안 될 리가 없다. 최근 학교장이 직접 차관을 만나기까지 했다"면서 주장의 근거를 댄다.

그러니 다른 학교의 교사는 "우리 학교는 대한민국 현 대통령과 그 대통령이 가장 든든한 후원 역할을 하는 대학에서 운영하는 학교이다. 그리고 서울교육청의 자율형사립고 주무부서 국장이 우리 학교 출신이라고 하고, 한나라당 최고위원 중 한 명도 이 학교 출신인데 안 되겠냐?"라고 받아친다.

학교의 교육적 특성이 아니라 졸업생과 인맥 등 정치적 배경을 두고 두 교사는 갑론을박을 벌였다. 이런 비슷한 상황은 두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O고등학교 역시 여당 국회의원이 직접 학교로 찾아와서 전폭적으로 지지해 줄 것이니 자율형사립고를 신청하라고 해서 신청했다고 한다. 이 학교뿐 아니라 많은 학교들이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들을 찾아다니고 있다고 한다.

애초 자율형사립고 신청 계획이 없었다는 S고는 구청에서 "우리 구에서 신청 가능 학교는 S고밖에 없으니 구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겠다"면서 신청을 독려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교육청, 교과부, 청와대, 한나라당뿐 아니라 구청까지 나서서 자율형사립고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고 일선 학교들 역시 이들에게 줄을 대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주로 이사장과 교장을 통해서만 이뤄지기 때문에 이런 사실들이 교사나 외부에 알려지기는 쉽지 않다. 치열한 로비전이 일어나고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자율형사립고가 이명박 정부의 핵심 교육 공약 중의 하나이고, 학교제도법률주의에 배치돼 위헌 논란이 있음에도 국회 법률이 아닌 대통령령 개정을 통해서 추진되고 있다. 또한 시도교육감과 교육과학기술부의 협의를 통해 최종 결정하도록 돼 있다. 선정과정에서 정치적인 고려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재정자립도 1%도 안 되는 부실사학들

33개의 자율형사립고 신청학교 중 현재 수준에서 지정 조건 5%(재단전입금이 등록금 총액의 5%를 넘어야 하는 조건)를 안정적으로 만족시킬 수 있는 학교들은 10개가 되지 않는다(아래 표 참조). 그런데 각 구별로 하나씩 해서 모두 25개를 선정하겠다고 하니 재정자립도가 1%도 안 되는 부실사학들도 자율형사립고를 신청하는 웃지 못할 코미디가 연출될 수도 있다.

자율형사립고 지정 최소 기준은 5% 기준의 10%도 안 되는 0.2~0.3%의 재정능력을 가진 학교들이 갑자기 20배로 뻥튀기해서 재정부담을 하겠다고 나섰다. 이들이 지금까지는 왜 학교에 돈을 내놓지 않고 국민의 혈세를 축냈을까?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졌나, 땅에서 솟았나?
 자율형사립고 지정 최소 기준은 5% 기준의 10%도 안 되는 0.2~0.3%의 재정능력을 가진 학교들이 갑자기 20배로 뻥튀기해서 재정부담을 하겠다고 나섰다. 이들이 지금까지는 왜 학교에 돈을 내놓지 않고 국민의 혈세를 축냈을까?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졌나, 땅에서 솟았나?
ⓒ 김행수

관련사진보기


자율형사립고 신청학교 중 영일고(0.2%), 충암고(0.3%), 대성고(0.3%)를 비롯하여 대원여고, 정신여고, 장훈고, 인창고 등 7개교는 재단전입금이 등록금 수입의 1%도 안 된다. 이를 지정조건 충족 비율(100% 기준)로 환산하면 영일고 4.1%, 충암고 6.2%, 대성고 5.6%, 대원여고 8.8%, 정신여고 8.7% 등 10%에도 못 미친다. 최소 기준의 1/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들이 어떻게 하루 아침에 10~20배 수입을 늘려 재정을 부담한단 말인가? 백보 양보해서 재정 부담을 진짜로 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는 학교에 투자 안 하고 어디에 돈을 숨겨놓았던 것인가?

언론 보도를 보면 서울시교육청 관계자가 "자사고 선정에 있어서 재단전입금 비율 5%(총 등록금 대비)는 무조건 충족돼야 한다. 현재까지 5% 미만인 학교도 자구책을 마련한다는 각서를 제출하면 자사고로 선정될 수 있다"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지금까지의 재정 능력은 전혀 중요하지 않고 앞으로 재정부담을 고려하겠다는 것이다.

어제까지 법인에 돈이 없어서 법정전입금도 못 내고 1년에 겨우 몇 백만원에서 몇 천만원 부담하던 학교들에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수백억이 떨어지고, 땅에서 수십억을 주울 계획이 생긴다는 것인지 궁금할 뿐이다.

자율형사립고 신청을 위한 최소이자 유일한 조건은 재단전입금의 비율이 등록금 수입의 5% 이상이라는 것이다. 자립형사립고의 등록금을 현재의 3배로 가정하면 현재 재단전입금 기준을 충족시키는 학교는 신청 33교 중 39%인 13개밖에 안 되고, 나머지 61%는 최소 조건 미달이다.

이들 13개 학교도 강남구 등 2개 이상인 자치구를 제외하면 서울 25개 자치구 중 고작 10개 자치구(강남구, 서초구, 강동구, 노원구, 중구, 동작구, 관악구, 종로구, 강북구, 동대문구)에만 자율형사립고 지정조건을 충족시키는 학교가 있고, 나머지 15개의 자치구(금천구, 성북구, 도봉구, 중랑구, 용산구, 강서구, 은평구, 광진구, 송파구, 영등포구, 서대문구, 마포구, 양천구, 성동구, 구로구)에는 지정조건을 충족시키는 신청 학교가 없다. 부자동네와 가난한 동네가 확연히 구분되는 상황이다.

2007년을 기준으로 재단전입금 5% 기준을 만족시키는 학교는 13개이지만, 이 중엔 100주년 기념 행사라든지 대규모 학교 시설 공사 등 특별한 사정에 의해 이 해에만 재단 전입금이 많고 평년에는 이에 못 미치는 학교들도 많다. 즉, 안정적으로 재단전입금 5%를 댈 수 있는 학교는 이보다 훨씬 적다고 보아야 한다.

실제 재정 부담능력을 따지지 않고 서류상의 조건으로만 심사한다면 33개의 신청 학교 중 25~30개가 최종적으로 선정된다고 하니 경쟁률도 1.1~1.2 대 1밖에 되지 않는다. 대학입시 경쟁률로 따지면 거저먹기나 다름없다.

자율형사립고 선정과정에 국민은 없다

이미 외국어고와 특목고, 과학고, 예술고, 체육고 등 과목별로 특성화된 특목고가 존재하는 현실에서 인문계 고등학교인 자율형사립고가 과목별로 특성화된 교육과정을 운영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글로벌 리더를 양성한다는 명분으로 영어 수업 시간 늘리고, 학부모들과 성적 상위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하여 수학과 국어 같은 과목들의 수업시수를 늘리고 체육, 음악, 미술 같은 과목의 수업시수를 줄이는 교육과정을 마련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교원수급에 지장이 없는 수준에서 생색내기로 몇 개의 과목을 끼워넣기 하는 수준에서 교육과정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

자율형사립고 선정 심사 기준이 현재 상태가 아니라 앞으로 이렇게 하겠다는 계획서이기 때문에 재정운영 계획도, 교육과정 운영 계획도 모두 페이퍼상에만 존재하는 그들만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그래서 거의 모든 학교에서 장밋빛 전망을 가지고 화려하게 치장된 재정운영과 교육과정 계획을 제출하였고 심사위원들은 이 문서들을 열심히 심사할 것이다.

자율형사립고 신청은 거의 예외 없이 이사회에서 먼저 결정하고 교장에게 지시하면 교사들에게 통보하는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 학부모나 학생의 의견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일반 국민의 의견 역시 무시되고 있다.

2008년 10월 한길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57.8%가 자율형 사립고 반대 의사를 명확히 하고 있다. 올해 2009년 4월 참교육연구소가 수도권지역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60.3%가 반대의사를 밝히고 있다. 자율형사립고 추진에는 국민도 없고, 학부모도 없고, 학생도 없다. 오로지 이사장과 교장, 정치인들만이 있을 뿐이다.

자율형사립고를 신청한 학교의 이사장과 교장들이 교사들과 학생들, 학부모를 설득하여 어떻게 더 좋은 학교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돈 많고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어떻게 더 많이, 더 빨리 선점하기 위해서 정치권에 줄을 대어 자율형사립고에 지정될까를 고민하는 듯한, '교육은 없고 정치만 과잉'인 현 상황을 학생들이 보면 뭐라고 할까?


태그:#자율형사립고, #MB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