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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나절, 큰 결심, 오체투지 순례하기

 

모자란 잠에 고파있던 내게 토요일 아침잠은 달콤하다 못해 유혹적이기까지 한 것이었다. 하지만 친구와 오체투지 순례를 반나절이라도 함께 하기로 약속을 했었는데 이 날을 넘기면 정말 갈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광화문에서 버스를 타서 한 시간 좀 더 달려 도착한 곳은 통일로 도로 위, 파주 조금 못 간 어디쯤이었다.

 

"사람, 생명, 평화의 길. 오체투지 순례단" 깃발이 보였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20여 명의 사람들도 보였다. 이어서 맨 앞에서 기도중이신 문규현, 전종훈 신부님과 수경스님도 보이셨다. 117일차(5월 30일)를 맞는 오체투지 순례였다.

 

큰 결심이란 오만함부터 버리며

 

쉬는 시간, 가방을 맡기고 복장을 착용하며 신부님들과 스님을 보았다. 60세가 넘으신 분들에게 결코 만만치 않으실건데 싶어 걱정스런 마음 때문이었다.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가는 기도순례 시작하겠습니다."

 

같은 말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 했던 것이 옳은 비유일지는 모르겠다. 오체투지 순례단 앞에 붙었던 '사람, 생명, 평화의 길'이 이렇게 들려오니 뭉클한 긴장감이 찾아왔다. 처음 시작, 난 어깨 너머로 배우겠다고 주위를 힐끗힐끗 쳐다봤다. 5~10걸음 사이로 합장을 하고 걷다가 무릎을 꿇고 팔을 지지대삼아 가슴을 뉘이고 손을 쭉 뻗는 이 기도를 몇 번 이게 맞나, 이렇게 해야 편한가, 재다가 마음을 추슬렀다. 짧은 시간 함께 하는거지만, 저 앞 성직자분들의 마음 그 끄트머리엔 닿고 싶었다. 큰 결심으로 간다고 여겼던 출발 때의 내 오만함은 그 분들 땀방울로 이미 씻겨내려간 듯 했다.

 

 

아스팔트에도 그만의 냄새가 있다

 

처음엔 무릎 꿇는게 이상했고, 그 다음엔 팔을 땅에 붙이는게 이상했고,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이마를 대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빠르게 마음을 추스렸다. 내게 시간이 많지 않다는 압박 때문이었다. '에이, 괜찮아!' 이러고선 이마를 땅에 댔다. 되레 이마가 닿을랑 말랑 할 때보다 훨씬 편하고 자연스러운 기분이었다. 막 덮은 것 같지 않은데도 막상 코를 그 바로 목전까지 가져다 두니 아스팔트에서도 냄새가 났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이들의 냄새를 떠올렸다. 무지막지했던 선배의 발냄새, 우유같이 하얀 후배를 폭 안아줄 때 났던 아기냄새, 기타치며 노래를 불러주던 선배의 모습과 함께 남아있는 타들어가는 장작 냄새….

 

내 기억 속 냄새들을 떠올리던 중, 갑자기 정말 고약한 냄새가 났다. 흠찟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얼굴이 닿았던 부분에 오물이 말라붙어있었다. 딱 그 지점에 내가 그 오물 가까이로 가지 않았다면 절대 알아차리지 못했을 냄새였다. 가까이 간다는 것은 그의 무언가를 취사선택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아스팔트의 고약한 냄새는 그래서 그저 싫지 않았다.

 

 

가까이 간다는 것은

그의 향기부터 흉한 냄새까지 그에게서 나는 모든 냄새들을 맡게 되는 것일 뿐,

좋은 모습과 좋은 향기만 취하려드는 것은 그를 가까이 하려는 모습도, 그에게 다가가는 모습도 아니었다. 멀찌감치에 서서 관망하려드는 것일 뿐이었다.

 

나무의 그 묵묵함이 얼마나 깊은 뿌리에서 비롯되는지,

나무의 그 나눔이 얼마나 다채로운 치열함 속에서 나오는지

 

거리를 다니기에도 썩 좋은 날은 아니었다. 태양이 뜨겁게 내리비췄다. 아스팔트는 생각보다 뜨거웠다. 온몸을 땅에 맞대면 또 온몸으로 열이 전해져왔다.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몇 번의 절을 마치고 나아가다보니 나무그늘이 드리워져있는 곳이 있었다. 냉큼 발자욱을 몇걸음 더 내딛어 그늘 위에 몸을 두었다.

 

 

뱃속, 아니 뼛 속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땅에 제 몸을 깊숙히 묻어두고 뜨거운 태양 온몸으로 내맡기며 나무는 그 자리를 돌아가지 않았다. 피해가지 않았다. 누구도 나무를 강하다 느끼지 않았고, 누구도 나무가 만드는 그늘을 감사히 여기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무는 늘상 그 자리에 있었다.

 

징소리와 함께 아쉽게 몸을 일으켰다. 그늘을 만들어준 나무를 보았다. '나무같은 사람.' 평소 그 묵묵함과 나눔이 좋아 그 표현을 종종 썼더랬는데…. 혹여 쉽게 그 말을 쓰진 않았나. 나무의 그 묵묵함이 얼마나 깊은 뿌리에서 비롯되는지, 나무의 나눔이 얼마나 다채로운 치열함 속에서 나오는지, 참 몰랐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고맙습니다." 처음 난 자연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응당 그래야 할 것 같은 당위로의 고마움과는 사뭇 다른,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고마움이었다.

 

발에 채이지도 않았던 돌맹이,

그것이 혹여 내 삶 속 누군가의 아픔이진 않았을까

 

마음이 녹을대로 녹아있었다. 내 주위에 늘상 있었던 것들이 새롭게 의미지어지고 있었다. 어느덧 깊이깊이 그 순례의 길 한가운데로 내 마음이 모아지는 것 같았다. 오체투지 도중 인터뷰에서 "많은 분들이 단 한 번이라도 오체투지를 경험해 보기를 간절히 바란다. '대통령 이명박'만 욕할 게 아니라 '내 안의 이명박'을 돌아보자"고 하셨던 수경스님의 말씀, 그 의미를 찾아서 돌아가고 싶었다. 주위에 감사하지 못하고 살아온 오만함, 내 주위를 둘러싼 구석구석까지 들여다보지 못하고 살아온 게으름, 그런 것들일까….

 

'아!'

 

한참 생각에 빠져있는데, 갑자기 옆구리쪽에 무언가가 나를 아프게 자극했다. 돌맹이였다. 그것도 평소 길거리에선 발에 채이지도 않을 것 같이 작은 것이었다.

 

별게 아니라 무시하며 몸을 더 편히 뉘이면 뉘일수록,

그렇게 몸을 누르면 누를수록 그 작은 돌맹이는 더욱 아프게 나를 찔렀다.

 

 

서민들의 아픔이 떠올랐다. 그 삶에 천착하지 못하면 그 고통과 아픔은 떠올리거나 상상할 수 없단 생각이 들었다. 정부가 서민들의 고통에 와닿지 못하는 것, 사람들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그건 결국 그들이 너무 고(高)고(高)하게 있어서였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높은 꿈을 가져라." "높은 분이 되어라." 어렸을 때부터 하늘 위로 부유하라고 배워온 내게도, 이 땅에 발만 디뎌주며 살아온 내게도, 이 경험은 매우 낯선 것이었다.

 

눈물이 목끝까지 차올랐다. 이렇게 함께 순례단 대열에 서고 나서야 저 앞, 먼 길을 내몸 던지며 예까지 온 성직자분들의 몸걱정에 맘이 벅찼다. 무릎을 먼저 땅에 대지 않으시고 몸을 구부려 팔로 바닥을 짚은 다음에 온 몸을 뉘이시는 그 분들의 조금 틀린 기도 모습도 가슴아프게 와닿았다. 지금 얼마나 큰 싸움을 벌이고 계시는지 느낄 수 있었다.

 

남의 아픔 크게 느끼며 살고 싶었는데, 난 아직도 이렇게도 부족했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며...

 

한참 머릿속에 마음속에 복잡한 것들이 뒤엉켜있는데 오전순례를 마친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오후순례까지 함께 한다는 친구에게 수고하라는 말로 내 맘을 숨기고 돌아서는데 눈물이 많이 났다. '연민'을 느끼며 산다는 건 어떤걸까. 남의 고통을 내 고통처럼 여기며 산다는 건 어떤걸까. 내 작은 행동이 때론 누군가에게 오늘의 그 작은 돌맹이처럼 아팠을 때가 많았겠구나. 무엇 때문에 울었노라 딱히 이유를 댈 순 없지만, 수많은 물음표와 느낌표, 그리고 우리가 처해있는 이 현실과 각박한 세상살이, 그리고 소통없는 정부. 이런 것들이 내 마음 속 어느 한 자리에 있었다.

 

이제 6월 6일이면 2차 오체투지 순례도 끝이 나게 된다.

 

진작에 맘을 더 냈더라면, 서울을 지나시던 그 며칠, 더 함께 할 수 있었을텐데… 6일 전에 꼭 시간을 만들어 내 하루를 온전히 맡겨보고 싶다. 떠올리면 맘이 답답해지고 눈물이 나는 이 알 수 없는 감정들도 조금은 정리가 되지 않을까. 미안함이 너무 가득하다. 순례단에게, 그리고 내가 무뎠을 많은 이들의 아픔들에게….

 

그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이 느낌을 남기고 싶어 글을 쓰겠다고 폼을 잡은 지 3일만에 글에 마침표를 찍게 됐다. 그럼에도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이 글을 쓰겠다는 맘을 접을 수 없었던 것은 이 글을 접하게 되는 사람들이 이번 오체투지 순례가 끝나기 전, 반나절이라도 잠시잠깐 시간내서 파주로 접어든 오체투지 순례단을 한 번 해봄이 어떨까 싶은 마음때문이다. ('오체투지 순례단 카페' 바로가기)

 

'내 안의 이명박'을 만나고, 내 안의 그를 위해서도 기도하고, 세상의 아픔을 위해서도 기도하는 아픔의 시간이 될 테지만, 아파보지 못하면 느껴지지 않을 내 마음이 당신에게도 가닿는다면 더 바랄 바가 없겠다.

덧붙이는 글 | http://our-dream.tistory.com 중복게재


태그:#오체투지, #오체투지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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