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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하면서 약초도 캐고 단재 신채호 생가까지 구경하는 일석삼조(一石三鳥)를 얻는 하루를 보냈다. 대전근방의 산에서 "약초산행을 해보자"는 제안에 무조건 따라 나섰다. 8시30분에 한밭도서관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기자 포함 3명이 모였다. 목적지를 버스정류장팻말로 설명하자면 대전 중구 정생2동과 어남동버스종점사이에 있는 '도리미'마을에 있는 도리산(道理山)이란 야산이다.  물론 처음가보는 길이고 산이었다. '도리미'마을의 버스정류장에서 '최가네'식당 쪽인 '혜천대연수원'을 향해 들어갔다. 조금 가니 '혜천대연수원'이 나오고 그 뒤편 산에 올라 이리저리 헤집고 다녔다. 기자가 그동안 캤거나 효능을 익히 알고 있는 약초는 '산도라지'와 '잔대' '창출'등이다.

 

우선 '창출'을 보았다. '창출'은 '습(濕)'을 날리는 대표적인 약재로, '습'이 무리 몸 안에 계속적으로 쌓이면 "소화불량이나 설사 등의 증상이 생기는 데 이런 증상을 완화시키고 치료하는 효능을 지녔다"고 전한다.

 

또 이뿐만 아니라 비장의 기능을 강화시키고 몸에 있는 풍의 기운을 없애는 동시에 차가운 기운 역시 몸 밖으로 배출시키며, 눈을 밝게 하며 풍과 습으로 인한 관절통과 중풍, 배뇨곤란, 결막염, 고혈압, 현기증, 노인의 천식 등에도 응용되는 약재다. 동의보감에는 "창출은 위로 올라가는 약재로 습을 없애며 비를 안정시킨다"돼 있다. 어렵게 말할 것 없이 뿌리를 잘 씻어 말린 후 끓여서 물을 수시로 먹으면 위(胃)등에 좋다.

 

'창출'을 여러 뿌리 채취하고 별다른 약초를 발견하지 못한 일행은 하산하기로 하고 내려오던 도중 '잔대'를 발견했다. '잔대'는 '사삼'이라고도 한다. 인삼, 현삼, 단삼, 고삼과 같이 5가지 삼의 하나로 취급되고 있다. 즉 인삼에 있다는 사포닌 성분 등이 '잔대'등에도 있어 약효가 같다고 보면 된다. 

 

'잔대' '도라지' '더덕'들이 다년생약초인데 '잔대'가 가장 오래 산다고 전해진다. '잔대는 '해독작용'에 우수한 약초로 강장, 기침, 가래, 해수, 천식, 고혈압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간에서 자양(滋養, 몸의 영양을 좋게 함)을 위해 닭에 '잔대'를 넣어 푹 고아먹는데 맛과 영양이 "끝내줘요"다. 

 

'잔대'를 발견하면 그 주변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씨로 퍼지기 때문에 주위에 많이 있기 마련이다. 그날 같은 장소에서 3뿌리를 캤다.  종류가 많아 잘 모르면 "줄기를 꺽어 하얀 우유빛깔의 액이 나오는가?"로 판단하기도 한다.  '창출'과 마찬가지로 깨끗이 씻고 말려서 물에 달여서 먹거나 가루 내어 또는 환을 지어서 먹는다. 

 

산에서 내려오니 단재 신채호 선생 생가지(丹齋申采浩先生生家址)가 근방에 있었다. 언젠가 마음먹고 보고자 했던 곳인데. "마침 잘 되었다"싶었다. 산행하면서 약초도 캐고 신채호 생가까지 구경할 수 있으니 "이게 바로 일석삼조다"싶었다. 단재 신채호생가지는 대전광역시기념물 26호로 대전 중구 어남동 233번지에 소재한다. 1992년 여름 생가 터에 대한 발굴조사와 주민들의 고증을 토대로 하여 현존하는 신채호의 생가로 복원되었다.

 

신채호(申采浩 1880∼1936)는 사학자이자 언론인이며 항일독립운동가로, 1880년 12월 8일 지금의 대전광역시 중구 어남동인 충청남도 대덕군 산내면 어남리 도리미 마을에서 신광식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이곳에서 아버지가 죽은 "8살 때까지 살았다"고 한다.

 

그 후 할아버지가 사는 충청북도 청원군 낭성면 귀래리 고두미 마을로 옮겨갔다. 그는 그곳에서 10년 동안 할아버지가 차린 서당에서 한문을 공부를 한 후 19세 때 성균관에 입학하여 26세에 성균관 박사가 되었다. 한일합방이 되던 1910년 4월에 망명길에 올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신민회 회원들과 함께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1928년 대만에서 일본경찰에게 체포되어 뤼순(旅順)감옥에 수감되어 복역하던 중 1936년 2월 21일 57세의 나이로 순국하였다.

 

지난 4월13일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90주년을 맞이하여 1912년 "일제가 만든 호적에 이름을 올릴 수 없다"며 스스로 무국적자가 되어버린 단재 신채호선생이 국적 회복을 하는 기쁜 일이 있었다.

 

2007년부터 매년 단재 신채호선생의 탄신일이 되면 대전의 생가지터에서 탄신기념헌화식이 개최되고 있다. 자신의 목숨까지 내주며 누구보다 조국을 사랑했던 단재 신채호 선생의 생가를 복원하고 탄신기념헌화식을 개최하는 것만으로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 선생의 뜻을 새길 수 있는 "문화제(?)같은 행사를 좀 더 잘 가꾸어진 생가지터에서 개최하는 것도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대전에 살면서 대전의 문화재나 기념물을 자주 찾아 소개하는 것도 '대전 사랑의 한 방법'이겠다는 판단이다.  

덧붙이는 글 | - 지난 5월 23일에 다녀왔습니다.

- 이 글은 제이비에스(www.jbsn.co.kr)에도 게재됩니다.


태그:#약초, #산행, #단재 신채호생가지 , #대전 중구, #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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