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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전에도 이맘때쯤의 광장에는 노란 불빛이 넘실거렸다. 2009년의 오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그 길 따라 노란색이 다시 광장으로 모였다. 운구차의 뒤를 따르는 만장,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행렬.

 

  여름 초입의 햇볕이 따가울 법도 한데 그 넓은 광장에는 노란 챙 종이모자에 검정색 하트를 장식한 사람들이 촘촘히 끼어앉았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이천 만장(輓章)들은 순풍에 단 돛처럼 어깨를 폈다. 목청껏 눈물 맺힌 노래를 하기도 하고 죄송하다 사랑한다 저마다 고백하는 사람들의 머리카락을 흔드는 바람, 그리고 햇살.

 

 

  어쩐지 그 분 해맑게 웃는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왜들 우세요, 날이 이렇게 좋은데...'하고 금방이라도 손을 흔들어 줄 것만 같은 햇빛이다.

 

  만장 따라 시청 앞 광장에서 서울역으로 무거운 걸음을 걷던 시민들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삐죽이 떠올라 있는 ENG카메라 한 대. 사다리에 올라서 추모행렬을 찍으려는 KBS카메라맨을 둘러싼 시민들이 목소리를 모아 "내려가"를 외친다. 한 사람은 아예 렌즈 앞을 가리고 섰다. KBS, 다시 깨진 신뢰를 어떻게 찾을지...

 

 

  KBS에게 "내려가"를 외치던 시민들이 이번엔 100m도 채 못가서 "힘내라"고 응원한다.

 

 

 

 

  YTN이 작은 창문 사이로 노란 종이와 비행기를 뿌리는 것으로 고인의 길을 장식하고 있었다. 시민들이 모처럼 밝은 표정을 보이며 손을 흔들고 고개를 들어 힘껏 구호한다.

  "노조 힘내라!", "구본홍은 물러가라!"

  광장에서 서울역 사이 그 길,   언론이 향해야 할 길을 알려주는 듯 국민의 목소리가 파도쳤다.

 

  만장 사이로 서울역이 보이기 시작했다. 봉하에서 올라온 버스들이 길가에 서 있었다. 그 중 두 버스에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버스 차창 너머로 보인 얼굴은 유시민 전 장관. 운구차를 따르던 걸음을 잠시 멈춰 사진을 찍고 인사하는 시민들을 향한 그의 손에는 몸이 좋지 않아 직접 나가 인사 드리지 못하는 점 죄송하다 적은 종이 한장이 들려 있었다.

 

 

  유시민 전 장관이 탄 버스를 지나 또 다른 버스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정연씨가 타고 있었다. 알아보고 손을 흔들어 격려를 건네는 시민들, 사진을 찍기도 하고, 눈물을 찍기도 하는 시민들을 향해 일일히 눈을 맞추고 고개를 숙여 담담히 인사하는 그녀에게서 잃어버린 그의 모습을 찾는 것인지 버스를 지나치는 사람들의 걸음이 유난히 느렸다.

 

 

덧붙이는 글 | 아름다운 바보 노무현, 그의 마지막 길을 함께 걷지 못한 분들을 위해 


태그:#고 노무현 대통령 추모, #영결식, #서울 광장, #시청 앞 광장, #추모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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