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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연수원 시절에 친했던 동기들과 함께 한 청년 노무현. 맨오른쪽은 정상명 전 검찰총장.' 75년 4월 현대칼러'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 청운의 꿈 사법연수원 시절에 친했던 동기들과 함께 한 청년 노무현. 맨오른쪽은 정상명 전 검찰총장.' 75년 4월 현대칼러'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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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4월 20일 점퍼 차림의 시골 청년 하나가 서울 광화문의 중앙청 건물 주변을 얼쩡거렸다. 옷차림은 어수룩해 보였지만 이마에 굵게 패인 일자 주름이 인상적인 이 청년은 사법시험 합격증을 받으러 경남 김해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에서 올라온 길이었다.

당시만 해도 사법시험 합격자에게 합격 통지서를 배포해주던 시절이었다. 정부는 당시 지금은 헐린 중앙청(구 국립중앙박물관) 건물에 있다가 70년에 정부중앙청사 건물을 지어 입주했으나 일부 행정민원 업무는 경복궁 안에 있던 중앙청 건물에서 봤다.

청년은 시간이 이르자 근처의 찻집에 들어갔다. 그 안에는 자신처럼 합격증을 일찍 받으러 왔다가 기다리는 앳된 청년 하나를 만났다. 두 청년은 멋쩍은 듯 서로 '통지서 받으러 왔느냐'고 인사를 나누었다. 찻집에서 나온 두 사람은 당시 건널목이 없었던 경복궁 서문(옛 통인문) 쪽으로 길을 건너려다 교통경찰에 들켜서 다시 길을 쭉 돌아서 가는 머쓱한 장면을 연출했다.

"사법고시 합격했던 순간만큼 행복했던 적 없다"

제17회 사법시험에 상고 출신으로 합격한 노무현과 최연소 합격자 안대희의 첫 만남이었다. 늦깎이로 사시에 합격한 노무현은 당시 세 살짜리 아들을 둔 아이아빠였고, 경남 함안 출신의 안대희는 그보다 아홉 살이나 아래인 약관의 서울대 법대생이었다. 그후 한 사람은 제16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대한민국 대법관이 되었다.

노무현은 자신의 책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혼자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뛰고 흐뭇해진다. 남들보다 많이 힘든 상황에서 공부를 했고 시험에 합격해서 그런지, 내 인생을 되돌아볼 때 사법 고시에 합격했던 그 순간만큼 행복했고 성취감을 느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두 사람은 2003년 당시 대선자금 수사와 관련, 각각 대통령 신분의 피의자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라는 악연으로 만나게 된다. 그리고 급기야 노무현 대통령은 당시 농반진반으로 "안대희 부장(검사장) 때문에 죽을 맛"이라고 했다.

2003년 11월 16일 노무현 대통령은 우울한 심경을 달래기 위해 부인 권양숙씨와 함께 당시 복원공사를 마친 경복궁 근정전을 관람하면서 고궁 나들이를 했다. 휴일에 고궁 나들이를 나온 시민들과도 디카 기념사진을 찍고 직접 대화도 나눴다.

경북궁 산책 도중 권양숙 여사가 노무현 대통령의 옷매무새를 고쳐주고 있다(2003.11.16)
▲ 경복궁 나들이 경북궁 산책 도중 권양숙 여사가 노무현 대통령의 옷매무새를 고쳐주고 있다(2003.11.16)
ⓒ 故노무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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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는 청와대 출입기자였다. 노 대통령은 경복궁 나들이에 앞서 예고없이 춘추관을 찾아 기자간담회를 갖고 종로 한일관으로 자리를 옮겨 기자들과 소주를 반주로 점심을 함께 했다. 당시 노 대통령이 기자들과 청와대 외부에서 식사를 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는 소주를 마시면서 "이거 오랜만이다, 청와대에선 소주를 주지 않는다"고 반색을 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에게 특검법안에 대한 입장과 이라크 파병문제 및 개각 등 국정현안에 대해 꽤 많은 뒷얘기를 공개했지만, 특검 문제를 제외한 모든 발언에 대해 비보도를 요청했다.

앞서 그는 그해 10월 자신의 '영원한 집사'였던 최도술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SK그룹으로부터 11억원(뒤에 22억원)을 수뢰한 사실이 드러나자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내가 모른다고 할 수 없다"면서 '재신임'이란 승부수를 던졌다.

2003년 11월 16일은 노 대통령의 아낌없는 후원자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에 대한 출국금지 사실이 공개된 날이었다. 그래도 권 여사와 경복궁 나들이를 하던 노 대통령은 관람객들이 자신 주변으로 모여들자 "나도 구경하려 왔는데 내가 구경거리가 됐다"며 함께 사진을 찍어주는 등 1시간 가까이 산책을 하며 여유를 즐기는 듯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이날 경복궁에서 안내를 하던 관리소장 등에게 서문 쪽을 가리키며 사법시험 동기인 안대희 중수부장과의 '추억'을 되살리면서 "요즘 다른 정치인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나도 안 부장 때문에 죽을 맛"이라고 심경을 솔직히 토로했다. 다음날 신문은 '대통령의 측근비리 검찰 수사에 대한 압력'이라고 대서특필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5년여의 세월이 흐른 지난 4월 30일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세 번째로 검찰의 포토라인에 서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번에도 대검 중수부가 그의 또 다른 후원자였던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의혹을 파헤친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 수사였다.

대검 중수부장은 이인규 검사장. 그는 노무현 대통령 측근비리 구속 1호를 기록한 SK그룹 비자금 사건의 당시 주임 검사였다. 당시 안대희 검사장은 2003년 12월 대선자금 수사 때 그를 대검 중수부에 차출해 중용했으며, 그는 이제 대검 중수부장이 되어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이끈 '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지휘했으니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을 맺은 셈이다.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의 주검은 29일 경복궁 앞뜰에서 세상과 마지막으로 결별하는 의례를 갖는다. 고인이 3년 전인 75년 4월 20일,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에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청운의 뜻을 품고 합격증을 받으러온 바로 그곳이다.

그는 남은 우리에게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꿈을 남기고 갔다. 인권변호사 노무현이 정계에 입문할 때부터 기치로 내걸었던 그 꿈이다. 그의 빛바랜 사진첩에 있는, '가자 노무현과 함께 사람 사는 세상으로!'라는 출정의 기치가 만장처럼 느껴지는 오늘이다.

그 짐을 벗고 편히 잠드소서.

88년 총선에 출마한 노무현 변호사. 정계에 입문한 그때부터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었다.
▲ 사람 사는 세상 88년 총선에 출마한 노무현 변호사. 정계에 입문한 그때부터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었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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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노무현, #안대희, #경복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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