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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발인을 하루 앞둔 28일 저녁 경남 김해 봉하마을 분향소에 마지막 밤까지 조문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발인을 하루 앞둔 28일 저녁 경남 김해 봉하마을 분향소에 마지막 밤까지 조문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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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6일째. 봉하마을에는 여전히 슬픔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마을 전체가 거대한 장례식장이다. 또 그 슬픔을 서로 나누는 소통의 장이자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자각의 장이다.

곳곳에서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분주하고, 처음보는 추모객들이 모이면 자연스레 정치토론이 벌어진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비판과 '정치 검찰'에 대한 분노,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의 피의사실을 앵무새처럼 중계방송한 <조중동> 등 언론에 비난도 끊이지 않는다. 노 전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서거가 봉하마을을 민주주의에 대한 자각의 장으로 만든 셈이다.      

최근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공개한 노 전 대통령의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민주주의든 진보든 국민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만큼만 가는 것 같습니다. 시민운동도, 촛불도, 정권도, 이 한계를 넘어설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80년대 반독재 투쟁이 성공한 것은 국민이 생각하는 만큼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국 세상을 바꾸자면 국민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지난 6일간의 봉하마을은 적어도 노 전 대통령의 이같은 바람의 실험 공간이 아니었을까? <오마이뉴스> 현지 특별취재팀은 봉하마을 곳곳에서 벌어지는 키워드 풍경을 담아보았다.

[슬픔의 장] 분향소 "미워하는 마음 없이, 100만송이 국화는 피어나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틀째인 24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마련된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서 한 시민이 헌화를 한뒤 눈물을 흘리며 분향소를 나서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틀째인 24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마련된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서 한 시민이 헌화를 한뒤 눈물을 흘리며 분향소를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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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흘째인 25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마련된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흘째인 25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마련된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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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송이 흰 국화, 수만 명의 통곡, 수십 명의 상주, 그리고 1km가 넘는 조문 행렬...

노무현 전 대통령 장의위원회와 김해시에 따르면 28일까지 약 봉하마을을 찾은 조문객은 약 100만 명이 넘는다. 이들 모두가 노 전 대통령 영정 앞에 헌화한 걸 생각하면 총 100만 송이의 국화가 분향소에 놓여진 셈이다.

약 30평 규모로 만들어진 분향소 정중앙에는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이 놓여 있다. 영정 주변은 흰 국화가 빈틈없이 빼곡하다. 국화꽃 향기가 좋은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한 생에 후회가 없기 때문일까. 영정 속에서 노 전 대통령은 환하게 웃고 있다.

새벽과 이른 아침 사람이 붐비지 않을 때를 제외하고 빈소에서는 약 100여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조문한다. 줄 서 기다리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조문을 안내하는 것도 자원봉사자들이다.

이들은 조문객들의 줄을 세우고, 국화를 나눠주며, 안내 방송도 한다.

"자, 다 같이 추모의 마음으로 묵념. 바로. 영정을 보시면서 우리 노무현 대통령의 명복을 빌어주십시오. 상주분들과 인사하시고요. 멀리서 오시고 오랜 시간 기다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자, 다음 분들 입장."

빈소 안에서 이 방송은 하루 종일 반복된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벌써 6일째. 하지만 사람들의 통곡은 여전히 이어진다. 조문을 마치고 빈소를 나서는 많은 사람들의 눈은 젖어 있다.

상주는 수십 명이 교대로 조문객을 맞이한다. 공동 장의위원장을 맡은 한명숙 전 총리를 비롯해, 이광재 의원, 안희정 민주당 최고의원, 명계남씨 등 다양한 사람들이 상주 역할을 하고 있다.

29일 노 전 대통령 국민장이 끝나면 봉하마을 마을회관과 노사모 사무실에 분향소가 마련될 예정이다. 이곳에서 시민들은 계속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할 수 있다. 

[눈물의 길] 사저와 부엉이바위 앞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23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노 전 대통령이 투신했다고 알려진 봉화산 부엉이 바위가 사저 뒤로 보이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23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노 전 대통령이 투신했다고 알려진 봉화산 부엉이 바위가 사저 뒤로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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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발인을 하루 앞둔 28일 오전 경남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추모객들이 사저를 바라보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발인을 하루 앞둔 28일 오전 경남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추모객들이 사저를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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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을 마친 조문객들은 사저 앞과 부엉이 바위 앞에 들린다. 사저 앞에는 생가복원공사가 진행 중인데 노 전 대통령 장례 기간 동안 중단되어 지금은 천막으로 덮여 있다.

조문객들은 사저 경비초소 앞에 모여 든다. 지난 4월 30일 노 전 대통령이 검찰에 출석하기 위해 버스에 오르기 전 "면목 없습니다"고 말하기 위해 잠시 섰던 곳이다. 앞으로 부엉이바위가 보인다. 경찰은 '폴리스라인'을 설치해 부엉이바위로 접근을 막고 있다.

조문객들은 사저와 부엉이 바위를 바라보거나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도 하고,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기도 한다. 역사의 현장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부엉이바위를 본 시민들은 '충격'을 받는다.

"저 바위라고. 굉장히 높구만. 어떻게 저기서 떨어질 생각을 했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여기는 태어난 곳이잖아요. 어렸을 때 자주 올라가 놀았을 것잖아요. 그때를 생각하며 모든 괴로움을 잊고 싶어서 그랬겠죠."

한 조문객은 "아방궁이라고 하던데, 오늘 처음 와서 보니 전혀 그런 생각이 안 든다"면서 "마을 입구에는 공단이 있어 마치 탄광촌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다른 조문객은 "외국 사람이 이곳에 조문하러 와서 대통령이 살던 곳이라고 할 때 부끄러울 것 같다"면서 "요즘은 고향도 필요 없다고 다 떠나는 마당에 귀향해서 농사짓는 대통령을 가만 두지 못한 우리 국민이 잘못"이라고 밝혔다.

조문객들은 부엉이바위를 바라보며 발걸음을 쉽게 돌리지 못한다. 김을순(75·부산)씨는 "억울하고 원통하다"며 "지금이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내가 대신 갔으면 싶다"고 연신 눈물을 흘렸다. 부엉이 바위와 그 앞은 또 하나의 역사적인 자리가 되었다.

[통곡의 벽] 주차장 공사장 가림막,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벽시'

노무현 전 대통령 발인을 하루 앞둔 28일 오전 경남 김해 봉하마을 분향소 공사 현장 가림막에 추모글을 붙여있자 지나가는 추모객들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발인을 하루 앞둔 28일 오전 경남 김해 봉하마을 분향소 공사 현장 가림막에 추모글을 붙여있자 지나가는 추모객들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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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발인을 하루 앞둔 28일 오전 경남 김해 봉하마을 분향소 공사 현장 가림막에 추모글을 붙여있자 지나가는 추모객들이 서서 읽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발인을 하루 앞둔 28일 오전 경남 김해 봉하마을 분향소 공사 현장 가림막에 추모글을 붙여있자 지나가는 추모객들이 서서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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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에 '통곡의 벽'이 생겼다. 마을 건너편에 임시주차장을 조성하기 위해 설치해 놓은 공사장 가림막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전에는 이곳에 각종 구호를 적은 펼침막이 걸려 있었고, 지금은 글자가 빼곡히 적힌 하얀 종이가 붙어 있다.

종이는 최점금(부산)씨가 붙인 전지 크기다. 종이는 20여장 붙어 있는데, 지금까지 100여장이 모아졌다. 조문객들이 노 전 대통령과 유족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을 적고 있다. 때론 시를 적기도 하고, 그림을 그려 놓기도 해 마치 시화전을 보는 것 같다. 시민들이 찍었던 노 전 대통령의 사진을 붙여 놓기도 한다. 조문객들이 하얀색 종이에 적어 놓은 글을 보면 눈물이 난다.

27일 오후 머리가 희끗한 할머니는 상자 조각에 적어 온 글귀를 볼펜으로 적기도 했다. 그 할머니는 "진작 뵙지 못한 게 평생 한으로 남습니다. 국부이신 아버지 대통령 국모이신 어머니 여사. 성남 김양숙"이라고 썼다.

"정말 이렇게 표 안내는 역대 대통령은 또 나올까. 너무 너무 안타깝다", "돌아와 노짱. 내게 돌아와. 나 항상 노짱 생각할 거야"(경북대), "당신은 우리의 희망이었습니다.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무현 형님 왜 가셨습니까. 살아서 정의가 살아 있다는 걸 보여주셔야죠. 위정자들이 웃고 있지 않습니까". 지켜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곳에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후퇴다", MB ×××야" 등 이명박 정부를 비난하는 글도 많다. 정대근씨는 "그대의 마지막 말씀처럼 죽었으나 다시 삶이 시작되는 자리…" 등의 내용으로 된 "방성대곡(放聲大哭)"이란 제목의 시를 붙여 놓았다. 백태백씨가 붙여 놓은 "감히 따라가 헤아려 본 노 대통령님의 심정"이란 제목의 시 앞에도 많은 사람들이 서서 읽고 있다.

조문객들은 천천히 걸으면서 글을 읽기도 하고,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기도 한다. 가족과 함께 온 40대 남성은 "글을 읽어보니 마음이 더 아프고, 마음이 짠하다"면서 "우리 국민은 건방증이 심하다고 하는데 다음 총선, 대선까지 잊지 말고 가져가서 힘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린 아이와 함께 온 전미현(35·영주)씨는 "가슴이 무겁다"면서 "왜 진작에 좋은 대통령이라는 생각을 못했는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자봉'의 공간] 천막 식당 "약 20만 명 식사한 듯" 

노무현 전 대통령 발인을 하루 앞둔 28일 오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 분향소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음식 준비를 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발인을 하루 앞둔 28일 오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 분향소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음식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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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발인을 하루 앞둔 28일 오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 분향소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음식 준비를 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발인을 하루 앞둔 28일 오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 분향소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음식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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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그릇? 그런 거 뭐하러 묻노. 바빠 죽갔구만."

김해 진영읍에 사는 '김씨 아줌마'는 버럭 화를 낸다.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럴 만도 하다.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빈소 옆 식당 천막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김씨 아줌마는 정신없이 바쁘다.

김씨 아줌마 바로 앞 대형 솥 10개에서는 국이 부글부글 끓는다. 쇠고기무국. 냄새가 끝내준다. 그 옆에서는 다른 자원봉사자들이 물로 연신 콩나물을 물로 헹구고, 쉼 없이 파와 무를 썬다. 저 앞에서는 대접에 밥과 국을 퍼 담는다.

"이쪽으로 한 줄로 줄 서세요!"

한 눈에 봐도 줄 선 사람은 백 명이 넘어 보인다. 사람들은 쇠고기 국밥과 김치 한 접시를 들고 천막 아래로 가 식사를 한다. 봉하마을 식당 천막은 전쟁터 같다. 하루에 약 5만여 명 분의 국밥을 끓여낸다.

이곳에서 자원봉사 하는 중년 여성들은 약 30여 명. 이들은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쉼 없이 일한다. 모두 각자 가정에서 해야 할 일이 많지만, 노 전 대통령 국민장이 끝날 때까지 자발적으로 땀을 흘리기로 했다. 이유는 간단한다고 쿨하다.

"국민장 아입니까. 당연히 국민들이 도와야지예."

이들이 국밥만 대접하는 게 아니다. 아침에는 빵, 떡과 함께 우유를, 오후에는 무더위 속에서 조문에 참가하는 사람들에게 시원한 수박을 나눠준다. 이들 때문에 봉하마을에서 굶는 사람은 없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나이가 많든 적든, 모두들 배를 든든히 채우고 봉하마을을 떠난다.

강영민(39)씨는 "조금 소란스럽지만, 빈소 바로 옆에서 누구든 식사를 할 수 있는 게 마음에 든다"며 "이런 모습 또한 서민적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뜻과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토요일부터 오늘 28일까지 약 20여 만명이 봉하마을에서 국밥을 먹은 것으로 파악된다. 

['자봉'의 본거지] 노사모 자원봉사 지원센터

노무현 전 대통령 발인을 하루 앞둔 28일 오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추모객들이 분향을 한뒤 노사모 자원봉사지원센터를 둘러보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발인을 하루 앞둔 28일 오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추모객들이 분향을 한뒤 노사모 자원봉사지원센터를 둘러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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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객들은 '노사모 자원봉사 지원센터'에 들리면 또 다른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은 이전에 봉하마을 주민들이 농기구를 보관하던 창고다. 노사모가 개조해 '자원봉사 지원센터'로 쓰고 있다.

센터 안에 있는 '임시분향소'에는 고인의 영정 옆에 조문객이 직접 들고 온 조화가 수북이 쌓여 있다. 조문객들은 향을 피워 놓기도 하고 절을 하기도 한다.

또 이곳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을 담은 사진을 전시해 놓았다. 조문객들은 '남기고 싶은 말'을 종이에 적어 벽에 붙여 놓는다. 처음에 한두 사람이 글을 써서 붙여 놓았는데, 지금은 붙일 공간이 부족할 정도로 빼곡하다.

센터 외벽에는 "우리는 당신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는 글자와 노 전 대통령의 유서를 검정색 바탕에 하얀색 글씨로 써놓았다. 입구에는 "PRESS 1사3명, 조선·중앙·동아·KBS는 불가, 프레스증 확인"이라고 쓴 종이를 붙여 놓았고, 표지판 기둥에는 "방상훈의 개들은 오면 죽는다"고 쓴 종이를 붙여 놓았다.

센터 자원봉사자 정인미(41)씨는 "인터넷에서 서거 기사를 보았는데, 처음에는 오보라 생각하고, 제목이 '노 전 대통령 서거'로 되어 있어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서거하신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조문객들이 글을 적어 벽에 붙여 놓거나 와서 하는 말을 들어보면 울컥 하는 마음이 든다"면서 "남녀노소 불문하고 같은 마음이다"고 말했다. 그는 "조문객들은 여러 가지 불편한 데도 그런 불만을 드러내지 않아 더 고맙다"고 덧붙였다

[만장과 촛불의 길] 봉하마을 입구 "미치도록 보고싶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발인을 하루 앞둔 28일 오전 경남 김해 봉하마을 분향소로 가는 길목에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는 누리꾼들이 추모의 글을 모아 제작한 만장들이 분향소로 향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발인을 하루 앞둔 28일 오전 경남 김해 봉하마을 분향소로 가는 길목에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는 누리꾼들이 추모의 글을 모아 제작한 만장들이 분향소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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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발인을 하루 앞둔 28일 오전 경남 김해 봉하마을 분향소로 가는 길목에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는 만장과 추모객들이 길게 줄지어 분향소로 향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발인을 하루 앞둔 28일 오전 경남 김해 봉하마을 분향소로 가는 길목에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는 만장과 추모객들이 길게 줄지어 분향소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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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죄인입니다. 지켜드리지 못해서", "당신은 홀로 우뚝 선 소나무였습니다"

검은색, 흰색 그리고 노란색의 만장의 행렬은 봉하 마을에서 1Km 떨어진 삼거리에서부터 노 전대통령의 시신이 안치된 봉하 마을 회관 앞까지 이어진다. 대나무대에 묶여 가드레일을 따라 4~5m 간격으로 세워져 있는 700여 개의 만장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한 저마다의 애틋한 그리움들이 담겨 있었다.

진영 공설운동장 등지에 차를 주차하고 무료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조문객들이 도착하는 삼거리 부근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서는 노 전대통령의 생전 모습이 담긴 방송 프로그램이 상영되고 있다. "애고, 저래 아까운 사람이 우에 그래 갔드노. 여든 넘은 나는 안즉도 사는데..." 영상물을 보고 있던 박이수(84) 할머니는 끝내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었다.

"이 논이 그 양반 직접 농사짓던 곳인가? 오리는 안보이네" 분향소로 가는 길을 따라 들어오던 조문객들은 한쪽으로 펼쳐진 들을 보며 노 전 대통령 생전의 흔적을 찾기 바쁘다. 사람들이 몰릴 때면 분향소 300~400m 전부터 무더위에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지만 연신 땀을 닦아내면서도 조문객들의 시선은 한 장 한 장 휘날리는 만장에서 떠나지 않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 발인을 하루 앞둔 28일 밤 경남 김해 봉하마을 분향소를 찾은 추모객들이 애도의 뜻을 표하며 촛불을 들고 지나가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발인을 하루 앞둔 28일 밤 경남 김해 봉하마을 분향소를 찾은 추모객들이 애도의 뜻을 표하며 촛불을 들고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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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발인을 앞둔 29일 새벽 경남 김해 봉하마을 분향소를 찾은 추모객들이 애도의 뜻을 표하며 촛불을 들고 지나가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발인을 앞둔 29일 새벽 경남 김해 봉하마을 분향소를 찾은 추모객들이 애도의 뜻을 표하며 촛불을 들고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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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워지면 이 길은 '만장의 길'에서 '촛불의 길'로 변한다. 조문을 하고 나오는 사람들마다 하나씩 든 촛불들로 점점이 이어진 길은 어둠속에서도 빛나고 있다.

분향소 주변에는 5곳의 방명록 서명대가 설치되어 조문객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내고 있다. 방명록에 "당신은 영원한 나의 대통령입니다"라고 서명한 이명선 (여, 32)씨는 글을 쓰면서 감정이 복받치는지 연신 눈물을 흘렸다.

"어떠한 강물도 바다로 가는 길을 멈추지 않습니다"라고 쓴 최형진 (42)씨는 전북 김제에서 왔다. 최씨는 "노 대통령은 가셨지만 그 분이 보여준 희망의 싹을 틔우는 것이야말로 살아 있는 사람들의 책임"이라며 "7살된 아들이 자라면 노무현 대통령이 어떤 사람이었고, 그가 어떤 세상을 꿈꾸었는지 가르쳐 줄 것"이라고 말했다.

천막 식당 오른편, 노 전대통령의 사저로 통하는 마을 뒷길에는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40여 개의 판넬이 전시되어 있다. '서민과는 동떨어진 9.19 부동산 대책', '뉴라이트의 정체를 고발합니다', '부자의, 부자에 의한, 부자를 위한 정권' 등의 제목들이 붙어 있는 이 판넬들은 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 부산 경남 회원들이 설치한 것이다. 많은 조문객들은 걸음을 멈추고 이 판넬들에 쓰인 내용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연신 혀를 끌끌 차며 판넬을 주시하던 이영득 (58, 경북 상주)씨는 "지난 대선 때 이명박 후보를 찍었지만,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정말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또 이 씨는 "노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는 너무 극단적인 선택 아닌가 생각했지만, 여기 와보니 노 전대통령이 그동안 얼마나 외롭고 절망했을까 짐작이 된다"고 말했다. 

[보수언론의 무덤?] 기자실, "조중동 기자는 어딨지?" 

노무현 전 대통령 발인을 하루 앞둔 28일 오전 경남 김해 봉하마을 분향소 옆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서 취재기자들이 열띤 취재를 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발인을 하루 앞둔 28일 오전 경남 김해 봉하마을 분향소 옆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서 취재기자들이 열띤 취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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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전달할 내용이 있습니다."
"여기 안 들려요! 좀 더 크게 말씀해 주세요!"

천호선 전 대변인이 목소리를 다시 가다듬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벌써 6일째 야외 브리핑을 하고 있으니 목이 괜찮을 리 없다. 좀 더 목소리를 높여본다.

"자, 다시 하겠습니다. 오늘 권양숙 여사께서는..."

여기는 봉하마을 야외 천막 기자실. 아무리 높여도 천 전 대변인의 목소리는 한 마디로 '새소리'다. 어쩔 수 없다. 가까이 듣는 사람은 제대로 받아 적을 수 있지만 멀리 있으면 그냥 포기하는 게 속편하다.

바로 코앞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슬퍼하는 통곡소리가 들려오고, 저쪽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극락왕생을 비는 스님들의 독경 소리와 목탁 소리가 선명하다. 이게 끝이라면 이런 이야기 꺼내지도 않는다.

봉하마을 스피커에서는 쉼 없이 장송곡이 흘러나온다. 가끔은 <상록수>와 <타는 목마름으로>를 부르는 노 전 대통령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요 며칠 또 태양은 어찌나 강하게 내리 쬐는지. 천 막 두 개 아래 빈 틈 없이 바글바글 모여 앉은 기자들의 얼굴이 벌것다.

자리를 잡고 앉았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혹시 빈자리입니까?"라고 물으며 이리 저리 자리를 옮기는 '메뚜기 기자'들도 부지기수다.

마을회관 뒤에 앉은 기자, 여러 밤샘으로 지쳐 잔디밭에서 잠시 눈을 붙이는 기자, 뜨거운 태양을 피하기 위해 우선을 펼치고 기사를 송고하는 기자, 그리고 그냥 땅바닥에 주저 앉아 기사를 쓰는 기자. 한 마디로, 별의 별 장소에서 온갖 자세로 기사를 쓰고 송고하고 있다.

기자들 주변이 깨끗한 것도 아니다. 물병, 커피잔, 빵봉지, 수박 껍데기, 먹다 남은 떡조각... 사람들만 없다면 딱 쓰레기장이다. 장기 출장과 오랜 밤샘으로 지친 기자들. 그래도 이곳 천막 기자실에서 별 일 없이 잘들 생활한다.

노 전 대통령 서거에 언론 책임도 많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 어쨌든 대한민국 기자들, '헝그리 정신' 혹은 '근성' 하는 끝내주는 듯하다.

노 전 대통령 서거로 봉하마을에 내려온 기자는 약 500여 명이 넘는다. 기자 노트북에 붙어 있는 스티커를 보면 소속 언론사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조중동 스티커는 보이지 않는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봉하마을에서 조중동 기자는, 공공의 적이기 때문이다. 종종 조문객들은 기자실에 찾아와 따지듯 말한다.

"조중동 기자 어딨어! 당장 나가! 여기가 어디라고 와!" 


태그:#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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