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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당신도 아시나요? 마음이 너무 아프면 아프다는 말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요. 정말 힘들면 힘들다는 말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요. 지금 제가 그렇습니다. 너무 가슴이 아픈데, 아파서 죽을 것 같은데, 아프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당신이 더 아팠을 거라서요. 당신이 외롭고, 힘들고, 언론에 공격을 받을 때 저는 당신을 위해 아무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당신을 의심했던 것이 지금 무거운 짐이 되어버립니다.

 

민중후보 지지를 접고, 당신을 선택한 건...

 

당신이 대통령 선거에 나왔을 때, 저의 정치적인 입장은 민중후보였습니다. 기존 정치권에 염증을 느꼈기도 했고, 진보적인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었기에 당신의 매력에 끌렸음에도 당신을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제가 당신을 대통령으로 밀게 된 이유는 당신께서 장인이 빨갱이라는 색깔론에 휘말렸을 때 선택했던 당당함때문이었습니다. 

 

"제 장인은 좌익 활동을 하다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그것을 알고 제 아내와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잘 키우고 지금까지 서로 사랑하면서 잘 살고 있습니다. 뭐가 잘못됐습니까, 이런 아내를 제가 버려야 합니까, 이 아내를 계속 사랑하면 대통령 자격이 없고, 이 아내를 버리면 대통령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까." 

 

전 그때 당신에게서 진정성을 보았습니다. 겉으로만 자유여, 동포여 외치는 사람이 많다는 김남주 시인의 시가 당신에게는 해당되지 않음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번 선거는 민중후보가 아닌 당신이라고. 친구들이 그러더군요.

 

"네가 나이 들더니 변했구나, 이제 살 만한가보지?"

 

저는 친구들의 온갖 비난을 감수했습니다. 왜냐면 전 당신의 희망을 믿었으니까요. 당신의 말씀대로 당신을 지지하고 나서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당신과 관계된 아주 작은 일에도 이리처럼 달려드는 언론들의 보도에 사람들은 보란듯이 제게 비아냥거립니다.

 

"네가 그렇게 뽑으라던 대통령을 뽑았더니 어째 그러냐?"   

 

당신만 적진에 놔두고 방관했던 나

 

제가 정말 당신에게 죄송한 것은 그 사람들이 그렇게 말할 때, 당신 편을 들어주지 못한 것입니다. <조선일보> 기사만 보는 아줌마들이 와서 입에 거품을 물 때 당신의 입장에서 같이 싸우지 못한 것입니다. 할 말이 없어서, 당신을 믿지 못해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작은 가게를 하며 사람들을 상대로 벌어 먹고 살아야 하는 저였기에 참아야 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매번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당신 편에서 싸웠다가 사람들과의 관계가 끊어진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비겁할 때가 많았습니다. 제 주변의 진보적인 사람들이 당신을 비난할 때조차도 전 말을 못했습니다.

 

속으로는 '니들은 그 자리에 가면 그 정도로라도 할 수 있겠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역시도 겉으로 말하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변절자'라는 소리를 듣는 게 두려웠습니다.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왜 당신을 지지하고, 편드는 것이 변절자라는 말을 듣는 거라 생각했을까요? 

 

아마 저처럼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혼자 적진에 넣어놓고 방관자의 입장에 섰다는 사실때문에 괴로울 것입니다. 보수진영이 "어디 너 잘하나 보자"고 하고, 진보진영이 "그럼 그렇지, 별 수 있어?" 하더니 결국 당신을 이렇게까지 아프게 했습니다. 저는 지금 당신을 떠나보내면서 그것이 제일 아픕니다. 당신에게 왜 더 잘하지 못하냐고 질책은 하면서 칭찬에는 너무 인색했던 제 자신이 너무 밉고 괴롭습니다.

 

역사를 다시 쓰자고 한 당신을 외면한 우리

 

"조선 건국 이래로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권력을 한번도 바꿔보지 못했다. 비록 그것이 정의라 할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은, 또는 진리를 내세워서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은 전부 죽임을 당했다.

 

그 자손들까지 멸문지화를 당했다. 패가망신했다. 600년 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쟁취해야만이 우리의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이야기 할 수 있고, 불의에 맞설 수 있다." 

 

당신은 역사를 다시 쓰자고 했습니다. 제 부모님께서 "세상이 다 그런 거다, 니가 아무리 그렇게 정의를 부르짖어도 바뀌지 않는다. 제발 그만둬라"고 하셨을 때 당신은 제게 우리 후손들에게 정의로운 새 세상을 줄 수 있다고, 그 길을 함께 가자고 하셨습니다. 

 

당신 아시나요? 당신이 그렇게 저희를 가슴 벅차게 했고, 또 가슴 아프게 했다는 사실을요.

임기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셔서 마을 사람들과 막걸리를 먹고, 아스팔트에 털벅 주저앉아 신발을 벗던 당신은 제 아버지였습니다. 평생 서민에서 벗어나 보지 못했던 제 아버지. 당신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슬프면 나보다 더 슬픈 사람.

내가 아프면 나보다 더 아픈 사람.

내가 기쁘면 나보다 더 기쁜 사람.  

 

이해해 주십시오.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다, 하셨던 당신이 당신을 외면해 아파하는 저희를 이해해 주십시오. 당신을 떠나 보내고 살아남아야 하는 저희들의 아픔을 이해해 주십시오.       

 

국민을 위해 자신을 낮췄던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오늘 길을 가다 길거리에 지저분하게 버려져 있는 휴지를 보았습니다. 그때 당신이 떠올랐습니다. 만약 당신이라면 그 휴지를 보고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하철 계단 앞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걸음을 겨우 옮기는 할머니를 보았습니다. 당신이 떠올랐습니다.

 

전 당신이었다면 그 휴지를, 그 할머니의 짐을 받아 대신 짊어졌을 거라 생각합니다. 당신은 국민을 위해 자신을 낮췄던 사람이니까요. 당신이 없는 지금 제가 대신 길거리 휴지를 줍고, 할머니의 짐을 들어드립니다. 

 

이제 울지 않겠습니다. 당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겠습니다. 당신을 믿어주고 지켜주지 못한 것을 참회하며 49일 동안, 아니 그 이후에도 당신을 생각하며 매일 봉사하겠습니다. 당신이 국민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았듯이 제가 당신이 되어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습니다. 이렇게라도 해야 당신을 떠나보내고 살아남은 저의 죄지은 마음을 대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신은 영원히 제게 하나밖에 없는 대통령이십니다. 당신을 존경하고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노무현대통령, #조중동, #진보진영, #정의의 대통령, #새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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