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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겐 적어도 윤리라는 게 있고, 도리라는 게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든 싫어하는 사람이든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는 바른 법도라는 게 있다. 하물며 국민 된 사람이 대통령을 대할 때는 상식적으로 써야하는 언어와 쓰지 말아야 할 언어가 있는 법이다. 말해야 할 때와 말을 안 해야 할 때가 있다. 이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말이라도 마찬가지다.

 

작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보는 보수 논객들의 논평이 그렇지 않아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비통해하는 국민들을 더욱 분노하게 하고 있다.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와 '조갑제닷컴' 대표 조갑제 전 '월간조선' 사장, 그리고 지만원 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장과 변희재 미디어발전국민위원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하여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국민장, 계속 줄을 잇고 있는 추모행렬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국민 된 그들에게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전직 대통령이 자신과 다른 생각과 정책을 폈다고 해서 예의까지 잃어서는 안 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노씨'로, '서거'를 '자살'로?

 

김동길 명예교수는 이미 지난 4월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노무현씨는 감옥에 가거나 자살을 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글을 썼다 누리꾼들의 거센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또 다시 지난 25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책임이 "노씨 자신에게 있다"고 써 비난의 목소리가 거세다.

 

사람의 이름에 '-씨'자를 붙이는 것이 비하하는 표현은 아니다. 대통령에게도 그렇게 호칭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부르면서 그가 쓴 글이 그냥 그렇게 쓴 게 아니란 걸 증명한다. 김 교수는 노 전 대통령 추모열기가 몹시 불편한 것 같다. 그래서 부러 '노 전 대통령'이 아니라 '노씨'로 쓴 것이라 미뤄볼 수 있다.

 

그는 "모든 언론매체가 왜 이렇게도 야단법석이냐"며 "노무현씨가 산에서 투신자살했기 때문이냐"고 반문한다. 가히 기가 찬다. 심지어는 자신의 글을 비난하는 이들을 '폭도'로 몰아세우며, "폭도들의 손에 매 맞아 죽어도 여한이 없는 사람"이라고까지 쓰고 있다.

 

김 교수의 노무현 전 대통령 반대 의견에 동조한다 해도 이런 시기에 '노씨, 노씨' 해가며 전직 대통령을 일반인의 죽음처럼 비하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대통령은 지지층에게는 극진한 대우를, 반대층에게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국민의 손으로 뽑아 세웠던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이 맞는 칭호다.

 

조갑제 대표는 또한, 23일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전해진 직후 자신의 홈페이지에 "'노무현 서거'가 맞는 표현인가?"라는 글에서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하여 생각이 다를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는 '서거'라는 용어는 비언론적이고 비과학적이며 비민주적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존경하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애도'를 강제하는 '유도성'이기 때문"에 '서거'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몽헌 회장 자살'이라고 보도했듯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하여도 "'노무현 자살'이 흠 잡을 데 없는 용법"이라고 했다.

 

만약 조갑제 대표의 말대로라면 현직 대통령이 죽었다 해도 존경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으니 '000대통령 사망(자살, 타살)'이라고 쓰는 게 맞다는 표현이다. 언론에서 '서거'라고 쓰는 것은 그 '사망방법'을 쓰는 게 아니라 전직 대통령의 '사망사실'을 보도하는 것이다. 당연히 '서거'가 한 나라의 전직 대통령에게 어울리는 표현이다.

 

'노씨'나 '노무현 자살'이라는 표현은 구태여 전직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아집과 독선일 뿐이다. 전직 대통령은 국민 중 그 누가 아니라고 부인한다고 해서 전직 대통령이 아닌 게 아니다. 그렇다면 그에 부합하는 단어를 써야 한다.

 

'자살자 존경', '조폭 보스 국민장'?

 

대표적인 극우논객 지만원씨는 지난 26일 자신의 홈페이지 '시스템 클럽'에 올린 '인내에 한계를 느낀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노무현은 파렴치한 범죄를 저질렀다. 얼굴을 들 수 없는 범죄였다"며 "천하의 부끄러운 존재인 것이다. 그는 감옥에 갈 피의자였다"고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파렴치한 죄를 짓고 그 돌파구로 자살을 택한 사람"이라며 "왜 존경의 대상이 돼야 하는지? 파렴치한 죄인, 자살한 죄인을 향해 서거? 추모? 국민장? 나흘 만에 추모자 200만 명? 보자보자 하니 한이 없다"고 했다. 그는 이어 "대한민국은 지금 방송이라는 무당들에 최면 되어 돌아가는 굿판공화국"이라며 독설을 퍼부었다.

 

참으로 보자보자 하니 별 말을 다한다 싶다. 어느 누리꾼의 분노처럼 '고인을 욕되게 하는 짓은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자신의 맘에 안 든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하며 고인을 몰아세울 때가 아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대통령을 지냈던 어른의 추모에 눈물 흘리고 있다. 이런 때 이와 같은 독설은 전혀 어울리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이어 "운명을 다한 노사모들이 시체를 가지고 유세를 부린다"며 "단말마적 행패를 부리는 것도 못 봐주겠다"고도 썼는데, 해도 해도 너무한다. 지금 우리 국민들은 자살자를 존경하는 게 아니라(세상에 자살자를 존경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전직 대통령의 서거를 추모하는 것이다. 추모하지 못한다면 가만히 있으면 될 일이다.

 

한나라당이 추천한 변희재 미디어발전국민위원도 불난 데 부채질을 맘껏 해대고 있다. 한 인터넷신문에 올린 글에서 "노 전 대통령의 장례는 국민장으로 해서는 안 된다"며 "납세자의 한 사람으로서 노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 국민세금은 단 돈 1원도 투입돼서는 안 된다는 게 나의 판단"이라고 밝혔다.

 

그의 의도는 국민장이 몹시 맘에 안 든다는 말이다. 추모의 불길이 마음에 걸린다는 뜻이다. 그는 이어 노 전 대통령을 '조폭의 보스'에 비유하기도 했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한 나라의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는 국민장이 치러지고 있는 때이다.

 

국민 대다수가 묵묵히 조의를 표하고 있다. 아무리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이 전직 대통령이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너무하다.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다 해도 그가 다스렸던 나라의 국민이라면 국민 된 도리가 있는 법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전직 대통령의 죽음이다. 지금 그 전직 대통령의 국민장이 진행 중이다. 지금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다.

 

이들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누구인가? 누가 뭐래도 '전직 대통령'이다. 이 점을 무시하면 자신의 대한민국 국민 됨을 무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신을 부인하는 꼴이다. 더 이상 그러지 말았으면 한다.


태그:#노무현 서거, #보수논객, #지만원, #김동길, #조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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