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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누가 뭐래도 가장 훌륭한 전직대통령

노무현 대통령님!

"영원한 것은 없다"라는 불가의 가르침이 새삼스럽습니다. 곧 세상이 좀 조용해지면 봉하마을 논두렁에서나 부산 자갈치시장 노천 좌판에서 소주잔을 나누며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그것을 글로 담아 그동안 신세진 누리꾼들에게 진 빚을 갚으려고 하였는데 '말짱 도루묵'이 되어버렸습니다.

밀짚모자를 쓴 노무현 전 대통령
 밀짚모자를 쓴 노무현 전 대통령
ⓒ 사람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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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에서는 49재 이전에는 영혼이 이승의 하늘을 헤매고 있다고 하니 제가 컴퓨터의 자판을 두드리는 이 글을 바로 제 곁에서 읽고 계실 테지요.

그래서 저는 편안한 마음으로 친구에게 전하듯 이런저런 얘기들을 떠오르는 대로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얼마 전, 제가 작품 자료를 구하고자 고향에 갔다가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원주에서 내려 횡성으로, 다시 안흥으로 버스를 타고 귀가하려 했는데, 원주에 도착하고 보니 횡성에서 안흥으로 가는 버스가 이미 끊어진 시간이라 낙담하다가 원주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아주 큰마음 먹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택시기사는 원주 시내를 벗어나자 차창을 열었습니다. 신록에 젖은 밤공기가 매우 상쾌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각 라디오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검찰소환에 대한 뉴스를 보도하고 있었습니다. 운전기사는 뉴스가 끝나자 라디오를 끄더니 "누가 뭐래도 나는 노무현이가 가장 훌륭한 전직대통령이라고 생각합니다"고 혼잣말처럼 뱉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아는 게 없는 산골노인처럼 그 까닭을 물었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 가운데 현직에서 물러나 곧장 고향으로 돌아가 밀짚모자를 쓰고 고향사람들과 함께 사는 최초의 전직 대통령이 아닙니까"하면서 그는 별 무식한 산골노인 다 본다는 듯 언성을 높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다른 전직 대통령 전력을 하나하나 들추었습니다.

그 이야기들을 이 글에다 그대로 옮기지는 않겠습니다. 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대부분 다 아는 사실들인데, 이 글 본래 취지와도 어긋나고, 굳이 그 이야기를 옮기는 것은 돌아가신 분이나 살아계신 분의 명예를 헐게 하기 때문입니다.

봉하오리쌀 수확날 컴바인을 모는 밀짚모자 노무현 전 대통령(2008. 10. 20)
 봉하오리쌀 수확날 컴바인을 모는 밀짚모자 노무현 전 대통령(2008. 10. 20)
ⓒ 사람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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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알의 밀 씨

미국 전현직 대통령들의 사회봉사를 보도한 신문 기사들
 미국 전현직 대통령들의 사회봉사를 보도한 신문 기사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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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저는 한 출판사의 부탁으로 해방 후 현대사를 꼼꼼히 정리한 적이 있습니다. 숱한 문헌을 뒤적이며 통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장기집권을 위한 무리한 개헌과 부정선거로 경무대(지금의 청와대)를 떠났습니다.

이런 불행한 역사를 보고도 박정희 대통령은 나만은 예외라고 다시 3선 개헌을 하고, 그래도 모자라 영구집권을 위한 체육관 선거를 하다가 이를 말리는, 당시 최다선 정일형 국회의원이 의정단상에서 "박정희씨가 선산 땅에서 쟁기질을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발언을 하자 마침내 그분을 의정 단상에서 쫓아내고, 당신은 끝내 가장 측근에게 시해당하는 비극을 맞이하였습니다.

제가 이 기사를 쓰고자 스크랩북을 뒤졌더니 두 꼭지 신문기사가 나왔습니다.

한 기사는 화보로 '대통령의 자원봉사'라는 제목으로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된 전국자원봉사자대회에 참석한 빌 클린턴 대통령이 한 건물 벽에 그려져 있는 낙서를 지우고자 페인트칠을 하고 있는 기사였습니다.

또 다른 기사는 "클린턴 낙서 지우고 … 부시 카터는 쓰레기 줍기'라는 제목인데, 같은 장소에서 조지부시, 지미카터 전 대통령이 거리에 흩어진 쓰레기를 줍거나 얼굴에 페인트 범벅을 하면서 벽을 새로 단장하는 사회봉사에 참여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봉하마을을 찾아온 방문객을 맞이하는 노무현 대통령
 봉하마을을 찾아온 방문객을 맞이하는 노무현 대통령
ⓒ 사람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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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 얼마 전, 지미카터 대통령이 현직에서 물러난 뒤 고향 땅콩농장으로 돌아갔다는 기사를 보고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릅니다. 지미카터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평범한 백성으로 돌아간 뒤에도 세계평화와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는 가방 하나만 달랑 들고 평양 대동강에서 배를 타고 김일성 주석과 회담을 하는 등, 세계 곳곳 분쟁지역을 누비는 그의 모습 보고서 바로 이것이 정치 선진국이요, 정치지도자의 바른 모습이라고, 대한민국에서도 하루 빨리 그런 전직 대통령이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아마도 저만 아닌, 생각이 깊은 대한민국의 많은 백성들은 모두 다 그런 전직 대통령을 학수고대하였을 겁니다. 그 소망을 노무현 대통령 당신이 마침내 백성들에게 선사하였습니다.

밀짚모자를 쓰고 자전거를 타고서 논길을 누비는 당신의 솔직담백한 언행과 순박한 그 모습에서 비로소 우리나라도 이제 자랑스러운 전직 대통령을 가졌다고 자부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지미카터 이상으로 퇴임 후에도 나라와 겨레를 위해 일하실 분입니다. 그런데 이 무슨 마른하늘의 벼락입니까?

이승에서 다시 볼 수 없는 밀짚모자를 쓴 노무현 전 대통령
 이승에서 다시 볼 수 없는 밀짚모자를 쓴 노무현 전 대통령
ⓒ 사람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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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예사 백성으로 천수를 다 누리지 못한 것은 우리 백성들의 박복이요, 나라와 겨레의 비운입니다. 이 비극의 근원은 우리 백성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깊은 소양이 부족한 탓입니다. 진짜를 알아보지 못하고 가짜에 춤추는 경박함 때문입니다.

당신의 서거는 우매한 백성들을 깨우치게 하였고, 또한 한 알의 밀씨로 땅에 심어져 머잖은 날에 숱한 열매로써 이 땅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것이며, 백성들 모두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앞당기는 불씨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잘 가십시오. 저승에서 편히 눈 감으십시오. 지상에서 미처 나누지 못한 우리들의 대담은 뒷날 저승에서 다시 나눕시다.

삼가 선시(禪詩) 한 수를 당신의 영전에 바치며 제 글 마칩니다. 부디 극락왕생하소서.

삶이란 한 조각 뜬구름이 일어난 것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 뜬구름이 사라지는 것이다
뜬구름 자체가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니
삶과 죽음의 오고감이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生也一片浮雲起 / 死也一片浮雲滅 / 浮雲一體本無實 / 生死去來亦如然)

2009년 5월 27일 강원 안흥 산골에서 서생 박도 올림


태그:#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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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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