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어제(24일) 지리산 길을 걷고 난 우리들은 너무 아름답고 전원적인 기분에 빠져 늦은 밤까지 이야기 꽃을 피우다가 잠들었다. 곤하게 자고 있는 내게 주인장 목소리가 들려 눈을 떴다. 밤새 내리던 비가 그치고 난 청원마을엔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다. 동네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니 물소리가 크게 들린다. 어젯밤 비가 많이 내렸다는 증거다. 시골 마을의 골목길은 고요 그 자체였다. 그 고요를 깨는 것은 내 발걸음이었다. 발걸음을 따라가며 가만히 생각해 본다.

 

천왕봉! 말만 들어도 아니 천왕봉이라는 글씨만 눈에 띄어도 가슴이 설렌다. 그만큼 지리산이란 산은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신격이다. 어떻게 그런 지리산에 케이블카를 놓겠다는 발상을 할 수 있을까? 그 발상을 제안한 사람은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사람은 아닐까? 그런 그들에게 진정한 지리산이란 이런 산이라는 것을 직접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김병관씨를 만나려 백무동으로 향했다.

 

가는 내내 차장 밖으로 보이는 농촌 풍경은 초록으로 물들어 청순하게 보인다. 그것은 겨우내내 시커멓던 대지 위로 파란 풀들과 나뭇잎들이 어우러져 펼치는 풍경이다. 차가 산 속으로 접어들자 그런 풍경들은 사라지고 대신 안개가 펼치는 요술은 기기묘묘하다. 우린 백무동 주차장에서 어젯밤 서울에서 내려온 외대 영문과 성구와 정현이를 만났다. 김 선생님을 비롯한 11명이 모였다.

 

 

지리산 등산로 초입에서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하고 산행을 시작했다. 등산로는 어제 내린 비로 촉촉하다. 그런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는 우리들은 기분들이 다 좋은 것 같다. 그것은 아마 지리산이란, 바로 어머니 산이라 마치 어머니를 만나러 간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맑은 공기를 듬뿍 마시니 자연 몸이 좋은 기분을 내서 그런 것같다.

 

그런 느낌도 잠시 사람들 숨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한다. 등산은 처음 출발하고 30~40분이 힘들다고 한다. 우리들도 예외는 아니라 그런 현상들이 산행을 시작해 얼마 되지 않아 나타난 것 같았다. 출발하고 1시간 후 하동바위에 도착했다.

 

 

춥다고 껴입었던 옷들을 벗고 땀을 닦으며 하는 말, "야~ 기분이 너무 상쾌하다!" 등산하기 좋은 날씨 때문에 더더욱 우리의 마음도 싱그러워지는 듯했다. 우린 그 기분 그대로 출발을 해서 참샘에 도착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내내 우리와 같이 했던 물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고 이제 가파른 오르막이 우리들을 반겨주고 있다. 그 오르막을 보고 겁을 먹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이 오르막만 올라가면 환상의 대죽길이 있다고 하니 마지막 '힘'을 다시 한 번 끌어모으는 것 같다.

 

다들 소지봉에 올라 가쁜 숨들을 고르고 있을 때 하산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하산하는 등산객은 거의 만나지 못했는데 여기서 만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올라가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어제 비가 내린 탓에 많은 등산객들이 지리산 등반을 포기를 한 것 같다.

 

여기서부턴 조금만 올라가면 평평한 길들로 이어져 있어 등반하기에 좋은 길이 나타난다. 그런데도 몇몇 사람들이 힘들다고 한다. 장터목이 가까울수록 안개비가 짙어지면서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올라가다 옆으로 돌아가기 전 넓은 공터에서 휴식을 취한 후 장터목으로 향했다. 장터목 길로 접어들자 하산하는 등산객들이 엄청 많다. 그런 그들에게 길을 비켜주고 장터목에 올라서니 짙은 안개로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안개가 많이 끼어 있다.

 

정상에서 기다리고 있는 김병관 선생님을 생각해서 우린 바로 정상으로 향했다. 오르막을 올라 제석평전에 도착하니 바람이 얼마나 센지 내 몸이 다 날아가려고 한다. 이렇게 센 바람골에 케이블카 정류장을 만들려고 하는 사람은 현장에 제대로 와보지도 않은 사람일 것이다. 제석평전을 지나 아래로 발을 디디니 그곳은 신기하게도 바람 한 점 없다.

 

 

여기서 숨을 고르고 다시 출발을 했다. 12시가 다 되자 다들 배도 고프고 다리에 힘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조금만 올라가면 정상이라고 독려를 하고 다시 힘을 내서 출발했다. 드디어 통천문이다. 통천문을 올라서니 철계단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부터 정상까지는 각자의 의지로 올라가야 하는데, 이미 다들 피곤한 기색들이 역력하다.

 

산은 멀리 보면 가기 더 힘들어진다. 그냥 한 발 한 발 가야 한다. 그런 발걸음으로 정상에 올라서니 안개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그런 안개바람을 맞고 꿋꿋하게 서 있는 김병관씨를 보니 눈물이 왈칵 나려고 한다.

 

 

다함께 반가운 해후를 한 후 준비한 음식을 먹으러 반대편으로 갔다. 김 선생님이 준비한 매트리스에 음식들을 꺼내놓고 우리가 준비해 가지고 갔던 지리산 케이블카 반대 문구가 새겨진 인쇄물과 음식들을 전달하였다. 그리고 지리산 할머니에게 술 한잔 올리고 난 후 우린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천왕봉 정상에서 우리들이 준비한 문구들을 등산객들 배낭에 달아주는 작업과 서명작업을 시작했다. 올라오는 등산객들마다 이구동성으로 어느 미친 뭐가 이 명산에 케이블카를 놓으려고 하느냐며 그들 스스로 서명과 인쇄물을 붙인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점심을 먹고 있다가 우리들이 외치는 구호를 듣고 달려와 악수를 하고 먼저 서명을 해준다.

 

 

우리가 천왕봉 정상에서 약 1시간가량 캠페인을 벌이는 내내 모든 등산객들의 반응이 대단했다. 이런 일들을 발의한 인자들이 이런 모습들을 똑똑히 봤으면 한다. 나는 서명을 받는 내내 등산객들로부터 격려와 용기의 말들을 많이 들었다. 그리고 짧은 시간 내 많은 서명을 받았다. 아쉽게도 다들 일들 때문에 우린 서울로 올라와야 하기 때문에 김병관씨와 헤어져야만 했다.

 

 

정말 아쉬운 헤어짐이었다. 나는 생각해 본다. 어쩌다가 자연을 이용해 돈만 벌려고 하는 세대가 돼버렸는지를... 특히 이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국의 산하가 몸살을 앓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이라도 자연과 사람이 함께 공존하는 정책들로 바뀌었으면 한다. 개발은 쉽지만 복구는 어렵다는 것을 위정자들이 알았으면 한다. 부디 지리산을 비롯한 전국의 명산에 케이블카가 설치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어머니의 품 지리산에 케이불카를 놔서야 되겠습니까? 많은 분들의 동참을 바랍니다.


태그:#지리산, #김병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람과 사람의 역사는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저도 오마이뉴스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 내 삶의 역사를 만들고자 합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