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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회 평창 어린이 버들피리 축제
 제 7 회 평창 어린이 버들피리 축제
ⓒ 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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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5월 5일, 평창 초등학교에서는 '어린이의, 어린이에 의한, 어린이를 위한' 어린이날 행사가 열립니다. 전교조 평창 지부의 선생님들이 십시일반하여 여는 '평창 어린이 버들피리 축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상대적으로 문화 체험 기회가 적은 평창 지역의 아이들을 위해 마련된 이 작은 축제가 올해로 벌써 7년을 맞았습니다. 축제의 주체도, 객체도 모두 '어린이'가 되는 곳. 그 신나는 현장에서 필자 또한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왔습니다

버들피리, 아련함이 묻어나는 그 이름

버들피리 경연대회
 버들피리 경연대회
ⓒ 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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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행사의 테마는 '버들피리'입니다. 버들피리는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참으로 생소한 물건일테지만, 이 아이들의 아버지들에게만 해도 유년시절을 함께 보낸 추억의 장난감입니다.

'버들피리 축제'라는 이름에는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 산골의 싱그러움이 느껴지는 축제, 건강한 놀이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축제를 만들고 싶은 선생님들의 맘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TV와 컴퓨터 게임처럼 자극적이고 수용적인 놀이문화에 빠져있던 아이들은, 이 곳에 와 난생 처음 버들피리를 만들며 신기해 합니다. 아이들의 보호자에 지나지 않던 부모님들 또한 피리를 불며 흐뭇해집니다. 잊혀져 가는 우리의 옛놀이가 작은 손 끝에서 살아나는 순간입니다.

버들피리 축제의 프로그램은 모두 무료입니다. 화전과 가래떡꼬치, 솜사탕과 같은 먹거리에서부터, 나무 목걸이나 페이스 페인팅 같은 즐길거리까지 누구나 무료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필자는 나무 목걸이 만들기의 도우미 자격으로 축제에 참가했습니다. 작은 나무판에 그림을 그리느라 진땀을 빼고 있을 때, 한 아이가 목걸이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붓을 내려놓고 왜 그러느냐고 묻자, 아이가 물었습니다.

이니셜과 그림이 그려진 나무목걸이
 이니셜과 그림이 그려진 나무목걸이
ⓒ 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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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이거 공짜야?"
"그럼 공짜지."
"그럼... 나도 할래!"

자신의 이니셜과 작은 새가 그려진 나무 목걸이를 받아들고서 수줍게 웃던 모습이 아직도 마음을 벅차게 합니다. 어린이날의 주제를 어린이, 그 자체로 삼는 버들피리 축제에서 '어린이'는 '권리'와 똑같은 말입니다.

오갈 데 없던 아이들에게 의미있는 어린이날을 선물하다

페이스 페인팅 코너에서 즐거운 한 때
 페이스 페인팅 코너에서 즐거운 한 때
ⓒ 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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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의 어린이들은 지역적인 특성상 문화행사를 체험할 기회가 적습니다. 그런 사정은 어린이날이라고 해서 달라지지 않습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바쁜 농사일 등으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 어렵고, 시간을 냈다고 한들 마땅히 가볼 곳이 없습니다.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는 수도권으로 나들이를 갈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의 시간과 경제력을 투자하기 곤란한 가정이 대부분입니다. 때문에 아이들은 집에서 빈둥빈둥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평창 버들피리 축제는 이런 아이들에게 즐거운 어린이날을 선물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시간과 돈을 무리하게 들이지 않고도 즐겁게 놀다 갈 수 있는 축제가 생긴 것입니다. 축제 장소는 찾아오기 쉽고, 혹 교통편이 마땅치 않을 경우 각 마을의 학교에서 지원하는 무료버스를 타고 올 수 있습니다. 모든 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할 수 있으며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전액 무료입니다. 아이들은 신나게 놀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부모님들에게도 부담없는 나들이입니다. 하루종일 만화를 보며 지내고는 하던 어린이날을 재밌고 알차게 보낸 셈입니다.

욕심에 비해 항상 부족한 자원... 꾸준한 노력으로 채워나가야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신 선생님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신 선생님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 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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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평창지부의 정기 회의일이었던 18일, 대화의 한 작은 레스토랑에서 전교조 평창 지부의 선생님들을 뵈었습니다. 편안한 분위기 속에 진행된 회의에서, 축제 평가 보고를 포함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진행된 인터뷰에서 선생님들은 축제 진행을 하면서 느끼는 고충, 아쉬움, 욕심 등을 털어놓으셨습니다.

- 이번 축제에서 아쉬웠던 것은요?
"너무 많지만... 고르라면 준비 시작이 늦어진 탓에 꼼꼼하게 구성하지 못했던 것, 그리고 홍보부족으로 인해 많은 참여를 이끌어 내지 못한 것이 아쉽다."

- 매년 축제 진행을 하면서 힘든 점이 무엇인가요?
"욕심은 많은데 그 욕심을 자원과 인력이 따라주지 못 하는 것. 올해도 도우미들 도움 덕에 간신히 넘겼다. 행사장도 좀 폼나고 그럴 듯하게 꾸며보고 싶은데, 그러기에는 자금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것저것 참신한 프로그램을 시도해 보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매년
식상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이 가슴 아프지만 어떡하겠는가. 우리가 이리 가난한걸(웃음)."

- 예산을 충당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었나요?
"2회부터는 교육청에서도 어느 정도 지원을 해왔고, 한빛회 같은 데서 도움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턱없이 부족하다. 내년부터는 군청의 예산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중이다."

- 프로그램에 대한 불만이나 욕심이 있으실텐데요.
"우선 먹거리. 1년에 한번이라고는 하지만 자극적이고 건강에 유해한 것들이 대부분이다.솜사탕, 달고나, 어묵...다 그렇지 않은가. 아이들은 한 번 먹어보고 마음에 든 음식은 계속 먹고 싶어한다. 화전처럼 우리 전통음식이면서 함께 만들기 좋고, 건강에도 좋은 음식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까도 말했듯이, 식상하다는 평가가 자꾸 나온다. 몇 번씩 오는 아이들은 매년 프로그램이 비슷비슷하니까 실망하기도 한다. 더 재밌고, 새롭고, 유익한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아휴 욕심이야 끝이 없지."

- 맨 처음에 축제를 시작할 때의 취지, 기대, 소망...그런 것들이 듣고 싶어요.
"그냥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문화행사를 선물해주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어려운 가정형편, 불리한 지역적 조건같은 게 1년에 단 한번 있는 어린이날마저 시시하게 보내게 만든다고 생각하니까 맘이 아프더라. 그래서 '이 날 만큼은 어린이가 왕'인 축제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소망이라...많은 것 안 바란다. 그저 버들피리 축제가 평창의 지역행사로 자리잡았으면 좋겠다. 후원도 막 들어오고, 관심도 높아지고, 더 많은 아이들이 신나는 어린이날을 보내고...그렇게만 되면 전교조의 이름이 빠진다한들 무슨 상관이겠나. 우린 그저 교육청이나 군청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해줘야 할 일을 대신 하고 있을 뿐이다."

따뜻한 욕심을 가진 이들에게 보내는 소박한 응원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정말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서건 어린이들은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 존재여야 합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건강하고 창의적으로 자라나는 어린이들은 장차 이 나라를 푸르게 메울 묘목같은 존재들입니다. 그런 면에서 버들피리 축제가 가지는 의미가 작지만은 않습니다. 8명 남짓한 선생님들이 아니라 군청과 지역주민이 힘을 모아 마련했어야 하는 축제가 아닌가 하는 반성이 듭니다.

"버들피리 축제가 이 지역 행사로 자리잡을 수만 있다면 그저 행복할 것 같다"던 지회장님의 말씀이 머리 속을 빙빙 맴돕니다. "축제를 알차게 꾸미고픈 욕심이야 끝이 없다"며 웃으시던 선생님들의 모습도 생각이 납니다. 모든 고민과 걱정을 떨쳐버리고 신이 나야 할 어린이날, 갈 곳이 없어 시무룩한 아이들을 위해 발벗고 나선 사람들. 열악한 환경에서 축제준비를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도 행복한 사람들. 그들의 따뜻한 욕심에 소박한 응원과 격려를 보냅니다.


태그:#버들피리축제, #어린이날, #평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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