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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가나 실업자가 있는 사회에서 이제는 노숙인구 또한 늘어만 간다. 번화가 역의 청년 노숙인들 또한 늘어 전보다 쉽게 마주치게 된다. 그러나 정부는 실업상태가 호전됐다고 통계를 인용한 발표를 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실업자 수가 고작 백만? 이게 말이나 되나. 한참 전에 대한민국 다섯 가구 중 한 가구가 실업과 빈곤에 시달린다는 말이 나왔는데. 이명박 정부의 발표는 현실에서 느끼는 것과 동떨어져 있다.

 

아마도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인구는 실업자로 치지 않은 것일 터. 그러나 물가가 치솟는 지금의 한국에서 불안정 고용인 아르바이트로 살아간다는 것은 겨우 생존이나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17일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약 500만명 가량의 프리터에 증가된 구직 단념자 등의 수를 더한다면 실업과 빈곤에 처한 사람들은 기존의 발표를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인원이 될 것이다. 현실의 대한민국 사회는 급박한 위기 상황이다.

 

 

더군다나 계속되는 구조조정으로 대량 해고가 줄을 이을 것이라니. 무거운 마음으로 다른 곳을 취재하러 가던 도중 전국 철도노조 조합원들의 농성장이 있어 들어가 봤다. 이명박 정권 아래 허준영 전 경찰청장이 코레일 사장으로 부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대량 해고안이 이사회를 통과했다고 한다. 천막을 치고 농성에 들어간 노조원들은 해고되면 자신들도 굶어죽고 시민들의 안전도 죽으니 침묵할 수 없다고 한다.

 

실제로 그곳에는 해고가 결정되기도 전에 퇴사 압력을 받고 있다는 노동자들이 많았다. 그들 가운데엔 차량정비와 기관사, 안내원 등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인원들도 다수 있었다. 지난 달 말에는 실제로 1급과 2급 노동자가 50여명 이상 대기 발령을 받았다고 한다. 노조는 탄압도 각오하고 있다고 한다. 천막을 치던 날 아침 서울 지방 본부장과 조합원들 60여 명이 몰려와 설치를 막는 기차역과 실랑이를 벌여야만 했다. 사업장 안에서의 노조활동 마저도 방해받을 뻔 했단다.

 

"직원들 잘라낸다고 선진화가 되겠습니까. 특히나 안전과 서비스의 질을 높여야 하는데. 선진화를 하려면 오히려 인원을 더 많이 배치해야 한다고요. 실제로 계속 해고 하니까 교통약자(장애우)들을 도와줄 인원마저도 턱없이 부족해요. 얼마 전에 그래서 사고도 있었어요."

 

"노사상생은 대등한 관계로 합의해야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말로만 노사상생 한다고 하면서 뒤로는 노조탄압하고 해고하고 그런 거잖아요."

 

강석훈(가명)씨는 쥐죽은 듯 있으면 동료들에게 더 큰 희생이 있을 것이기에 피곤한 야간 근무 후에도 농성장에 들렀다고 한다. 그래, 쥐가 죽지 않은 이상 침묵은 있을 수 없다.

 

"가만히 있으면 앞으로 더 힘들어집니다. 여기서 관두고 요즘 세상에 일자리를 어떻게 구합니까. 누군가 희생을 각오해야 바뀌는 것이 있을 테니까 각오하고 있어요."

 

당장 굶어죽게 생긴 사람들이 큰 문제다. 실제로 가장 밑바닥 경제를 꾸려가며 하루하루 버티던 일용직 노동자들의 고용이 또 줄었다. 만원으로 장 봐서 얼마나 먹고 살 수 있냐 하면 며칠뿐이다. 근데 그것마저도 벌기가 힘들다. 정부가 예산을 쏟아붓는 토목공사가 고용창출에 도움은커녕 반짝하는 효과도 없단 말이 돼버렸다. 오죽하면 건설 노동자들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총파업 시위에 참여하겠다고 했을까. 그런데도 정부는 전면전을 선포하며 무조건 제압하겠단다.

 

이 땅의 가난한 사람들이 갈 곳은 어디인가. 열악한 처지의 노동자들은 방값도 못 내게 될 테니 노숙인구는 더욱 늘어날 것이 뻔하다. 더불어 빛 때문에 자살하는 자영업자, 실업자, 대학 졸업자 등 사회가 돌아가는 꼴이 이게 뭔가. 그런데도 정부는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구조조정 타령이다. 관료들은 현대 사회에서 이렇게 가난을 방치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분노하고 또 분노한다.

 

역대 정권들 가운데서도 현정부의 뻔뻔함은 하늘을 찌를 듯하다. 선진화라는 명목으로 서민들의 목을 조르는 친기업, 반서민 정책들. 사교육 야간학습에 대해서까지 정부가 내세우는 자율성. 그 자율성은 그를 반대하는 가난한 시민들 앞에서는 탄압과 봉쇄로 변해버린다. 용산학살 현장에서도 알 수 있듯 이명박 정부는 사람 밀어버리는 불도저가 분명하다.

 

가난한 사람들이 거리로 터져 나오면 이명박 정권의 최후를 재촉할 것이다. 분명 작년보다도 더욱 심각한 퇴진위기에 몰릴 것이다. 하지만 그건 별로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 당장 굶어 죽게 생겼고 거리로 내몰리게 생긴 국민들이 가장 큰 문제다. 한국사회에서 노숙인이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다.

 

내가 누구인지 알려 주세요

 

최근 서점에 출간된 노숙인들의 이야기가 있으니 읽어보시길 바란다. 아쉽게도 당사자들이 쓴 책은 아니다. 다만 노숙인들과 가까운 곳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며 함께 시간을 보내온 '다시서기센터'의 임영인 신부가 그들의 목소리를 모은 것이다.

 

사실 노숙 상태에 빠지면 글 한 편 쓰기도 쉽지 않다. 글을 쓸 만큼 심신에 여유가 보장되지도 못함은 물론 그러한 작업으로 인하여 소모되는 에너지를 채워줄 열량의 섭취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숙 상태에 처하게 되면 불안정한 잠자리와 불규칙한 급식으로 영양결핍이 심각해진다고 한다. 열악한 위생 환경 때문에 건강은 악화되고 정상적인 생활은커녕 일반적인 육체노동도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안정된 주거를 가진 시민들보다도 질환 발병률이 무척이나 높다. 사망률도 매우 높아 매년 거리에서 최소 300여명 이상 죽어간다고 한다.

 

그러한 노숙인은 도심을 걸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스쳐 지나는 유령 같은 상태에 있다. 개인주의로 인한 파편화가 일반화된 사회에서 자신들과 의식주 형태가 다른 이들에 대한 연결고리를 느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러나 노숙인들은 분명 우리 모두와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다. 같은 인간이며 국민이기 때문이다.

 

임영인 신부가 노숙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낸 책의 제목 <내가 누구인지 알려 주세요>는 실제로 저자가 받았던 하소연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자영업자부터 법대나 기자 출신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치다가도 노숙상태로 전락한 경우가 등장한다. 한번 경제적 추락을 맛보면 다시 일어서기 힘든 이들은 우리 사회의 복지제도가 실종상태임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나 또한 누구인지를 스스로에게 묻고 싶다. 나는 과연 노숙인이 되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도저히 자신이 없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스쿨 오브 오마주>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세요 - 임영인 신부의 노숙인 이야기

임영인 지음, 삶창(삶이보이는창)(2009)


태그:#가난확산, #노숙인, #대량해고, #대량실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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