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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남자 아이를 둔 어느 엄마가 컴퓨터를 앞에 두고 고민에 빠졌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아들의 미니홈피 비밀번호. 좋아하는 여자 아이가 생겼다더니, 엄마에게 시시콜콜 죄다 이야기하던 아들이 변해버렸다. 요즘 들어 부쩍 숨기고, 감추는 것들이 많아지는 듯싶더니 급기야 엄마 모르게 미니홈피 로그인 비밀번호도 바꿔 버린 것이다.

아들이 여자 친구와 미니홈피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 궁금해서 못 참겠다는 이 엄마는 바뀐 비밀번호가 무얼까 한참을 궁리했다. 하지만 알 수 없었다. 공개수업 참관을 끝내고 모인 자리에서 아들의 여자 친구와 미니홈피 이야기를 꺼내자, 어느 어머니가 기다렸다는 듯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더라는 이야기를 쏟아냈다. 밤새 주고받는 문자 연애에서 비밀 일기까지.

철없는 아이들의 그럴듯한 연애 이야기에 놀란 나는 뛰는 가슴을 토닥이며 집에 돌아오자마자 책장 안에 고이 모셔둔 성교육 책을 부랴부랴 들춰 보았다.

여자친구 생긴 아들이 달라졌어요

성에 대한 개념이 아직 확실히 서지 않은 어린 아이들이 실수를 저지르는 일은 많다. 사진은 최연소 엄마, 아빠 탄생이라는 화두로 많은 논란이 됐던 영화 <제니 주노>의 한 장면.
 성에 대한 개념이 아직 확실히 서지 않은 어린 아이들이 실수를 저지르는 일은 많다. 사진은 최연소 엄마, 아빠 탄생이라는 화두로 많은 논란이 됐던 영화 <제니 주노>의 한 장면.
ⓒ (주)컬처캡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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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다르게 아이들이 크는 걸 보면 대견하고 뿌듯하지만 그와 함께 걱정거리도 늘어나기 마련이다. 여자 아이를 둔 어머니들은 행여 초경이 빨리 시작돼 성장이 멈출까 초조해 하고, 성폭력 뉴스라도 뜨면 불안해서 딸에게 자신의 몸을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부터 가르쳐야겠다고 주먹을 '불끈' 쥔다.

남자 아이를 둔 엄마들의 고민은 좀 더 복잡, 난감하다. 엄마들이 아들의 성교육에 관해, 어느 시기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막막할 수밖에 없다. 아들과 성별이 다르니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가르친다는 게 처음부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책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 가르쳐줄 수 있다지만 판에 박힌 일반적인 내용을 전달하는 데 그칠까 염려스럽다. 더구나 요즘은 아이들과 함께 성교육 관련 서적을 함께 읽는 것도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된다고 하지 않나.

어떤 엄마는 어느 학습만화의 성교육 편을 사서 아이와 함께 보려고 책장을 열었다가 몇 장 읽지도 않아 생각지도 못한 장면에 화들짝 놀라 책을 덮었다면서, 그런 책을 어린 아이가 봐도 괜찮은 건지 묻기도 했다. 단편적인 지식 전달도 문제지만 실질적이라는 이유로 노골적 묘사와 표현을 너무 일찍 접하는 것도 문제일 것이다. 이렇듯 아이의 나이에 맞는 수위 조절 또한 엄마들에겐 어려운 숙제다. 

야영장에서 여학생 몰카 찍는 아이들

성에 대한 개념이 아직 확실히 서지 않은 어린 아이들이 실수를 저지르는 일은 많다. 2학년 어느 반의 장기자랑 시간, 교탁 위에 올라 신나게 춤을 추던 한 남자 아이는 아이들이 환호하는 소리에 흥분해서 선생님이 말릴 사이도 없이 바지를 쑥 내렸다. 그런데 그만 팬티까지 딸려 내려가고 만 것.

여자 아이들은 손으로 눈을 가리기 바빴고 다른 남자 아이들은 덩달아 흥분해서 괴성을 지르고 담임선생님은 아이들 진정시키기에 바빴다는데, 나중에 이야기를 전해들은 아이의 엄마는 낯뜨거워 한동안 두문불출했다고 한다.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아직 잘 모를 아이는 아마도 뜨악해서 일장 훈계를 늘어놓은 엄마의 반응이 이해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잠깐의 실수에 과민 반응할 필요가 없음에도 역시 이런 사고가 일어나면 엄마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이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커질 즈음이면 저학년 때의 사소한 실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일들이 종종 터진다. 학교 앞뜰에 텐트를 치고 야영하던 고학년 학생들 중 남학생 하나가 호기심에 여자 아이들의 텐트로 몰래 들어가 휴대전화로 여자 아이들 잠자는 모습을 찍었던 사건이 일례다.

학교에서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과장, 확대되지 않도록 쉬쉬했지만, 사실 덮어서 끝날 일이 아니었다. 물론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겠지만, 성교육 시간에 아이들에게 어떤 점들을 조심해야 하고 어떤 일들을 해서는 안 되는지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가르쳤다면 그와 같은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이들 성교육 선생님, 부모가 딱인데

혼자서 하자니 어렵고, 학교에서 형식적으로 진행하는 성교육은 못 미더우니 몇몇이 팀을 짜서 강사를 초빙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부모가 신경 쓰지 않으면 인터넷 음란물이 아이의 교과서가 되어 올바르지 않은 성지식을 쌓을 수도 있다며 조기교육을 통해 미연에 방지하고 차단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가 관심도 없고 받아들일 준비도 전혀 안 되어 있는데 무턱대고 가르치는 것 또한 이로울 리 없을 듯하다. 한편 아이의 사춘기를 이미 겪어본 선배 어머니는 엄마가 아는 체하고 너무 요란하게 나서도 아이가 거부감을 느낀다면서 예민하게 반응하지 말고 적당히 눈감는 게 최선이라고 충고했다. 아이가 몽정을 시작하게 되면 모르는 척, 방 안에 휴지가 떨어지지 않게 신경이나 쓰라는 것이다.

역시나 정답은 없다. 아무리 열심히 책을 들여다보고 경험담을 들어도, 이론과 실제는 다른 법. 그래서 아빠의 도움이 절실하다.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아이 교육은 아내에게 일임한 채 뒷짐 지고 바라보지만, 성교육 문제에서만큼은 아빠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고, 엄마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콘돔 챙겨주는 '쿨'한 엄마, 가능할까

딸아이가 성인이 되면 콘돔을 챙겨주겠다는 어느 여배우의 말은 여전히 멀고 어렵게만 느껴진다.
 딸아이가 성인이 되면 콘돔을 챙겨주겠다는 어느 여배우의 말은 여전히 멀고 어렵게만 느껴진다.
ⓒ 이덕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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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5학년 남자 아이의 어머니를 다시 만났다. "비밀번호 알아내셨어요?" 하고 조심스레 물었다. 이성교제를 하는 요즘 아이들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 들을 수 있을까 내심 기대하며. 그런데 실망스런 대답이 돌아왔다.

"글쎄, 몰래 보기를 포기하고 아이한테 직접 물어보니, 그 애 하고는 벌써 헤어지고 '쿨~' 하게 그냥 친구로 지내자 했다네요. 혼자 생쑈 했지 뭐예요."

아이 엄마는 허탈한 듯, 시원하게 웃었다. 요즘 아이들처럼 엄마 또한 '쿨~' 해지려면 과연 얼마나 내공을 쌓아야 할는지. 딸아이가 성인이 되면 콘돔을 챙겨주겠다는 어느 여배우의 말은 여전히 멀고 어렵게만 느껴진다.

아무렇지 않게 아들에게 이성 친구 이야기를 물어볼 용기도, 자연스럽게 성에 관한 이야기를 꺼낼 뻔뻔함도, 어떤 성교육 방법이 옳은지 확신도 없는 엄마는 목욕을 끝내고 알몸으로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아들들을 쳐다보며 오늘도 그저 걱정만 하고 있다.

'누가 이 어려운 숙제 좀 대신 해주면 안 되겠니?'    


태그:#초딩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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