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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파워콤 광고의 한장면. 더 이상 여자 목욕탕에 갈 수 없게된 어린 남자아이의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lg파워콤 광고의 한장면. 더 이상 여자 목욕탕에 갈 수 없게된 어린 남자아이의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 lg파워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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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야동(야한 동영상)이 뭐예요?"

며칠 전 수업을 시작하려는데 우리 반(2학년) 남자 아이가 난데없이 물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남자 아이들도 같이 물었습니다.

"선생님, 야동이 뭐예요?"
"그거 야한 거죠?"

그러자 또 다른 아이는,

"선생님, 야한 게 뭐예요?"

하고 묻고 이 질문에 다른 아이는 또,

"그거 변태야."

그러자 또 다른 아이는 "변태가 뭐예요?" 묻더니 한 아이는 '히히' 웃으면서 "그거 남자랑 여자랑 뭐 하는 거야" 합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뭐? 뭐하는데?" 하고 묻습니다. 이런 얘기가 나오자, 그 시간 공부할 내용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그동안 어디서 들은 얘기, 궁금했던 얘기를 다 쏟아놓습니다.

아이들의 질문을 받자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초등 2학년인 아이들에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을 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제 머리 속에 갑자기 불이 환하게 켜졌습니다.

"선생님, 야동이 뭐예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초등학생들이 잘 보는 저녁 시간대 시트콤에서도 '야동'은 등장한다.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야동을 보다 걸린 할아버지 순재. 실제 이 배우는 이 드라마로 '야동순재'라는 별칭을 얻었다.
 초등학생들이 잘 보는 저녁 시간대 시트콤에서도 '야동'은 등장한다.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야동을 보다 걸린 할아버지 순재. 실제 이 배우는 이 드라마로 '야동순재'라는 별칭을 얻었다.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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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잖아도 학년 초에 한 학부모한테 같은 동네에 사는 4학년 아이가 자신의 아이를 불러 이상한(?) 얘기를 해 줘서 그 형이랑 놀지 못하게 한다는 얘기를 들었고, 그 아이가 교실에서 자기도 모르게 하는 말에서 이상한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또, 최근에 한 남자 아이는 엄마한테 "섹스가 뭐냐고 물었다"고 들었습니다. 해서 언젠가는 아이들과 이 이야기를 해 보려고 했는데 마침 이날 아이들 질문이 터진 것입니다. 이런 얘기와 정보는 아이들 사이에 은밀히 떠돌아서 어른들이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아직 어려서 그런지 우리 반 아이들이 드러내놓고 말해주니 참으로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이런 얘기가 나올 때는 아이들이 '야동'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에 따라 지도 방법이 달라집니다.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들어보니, 아직 얘기만 들었지 '야동'을 직접 본 것은 아니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야동? 그 얘기 어디서 들었니?"
"4학년 ○○ 형이 얘기해 줬어요."

학년 초에 우리 반 아이한테 이상한(?) 얘기를 해 줬다는 그 아이입니다. 

"야동은 나쁜 거 같아, 좋은 거 같아?"

하자 아이들이 머뭇거리더니 

"나쁜 거 같아요."
"근데 야동이 왜 나쁜 건데요?"
"야해서 나쁜 거야."
"그거 변태라서 나쁜 거야."

아이들이 답합니다.

"그러니까 야한 것도 나쁜 거고, 변태도 나쁜 거네?"
"……."

"사람들은 옷을 벗어도 되는 때가 있고, 속살을 남에게 보여줘도 괜찮을 때가 있어요. 예를 들면, 목욕탕 같은 데서는 여러 사람이 있을 때 옷을 벗는다거나 속살을 보여줘도 괜찮죠? 그런데 옷을 벗지 않아야 할 곳에서 아무 때나 옷을 벗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속살을 보여줄 때 사람들은 야하다고 해요."

그러자 한 아이가, "선생님 이렇게요?" 하면서 한쪽 어깨를 드러내 보여줍니다. 그때 다른 아이들은 손으로 눈을 가리며 '꺅' 비명을 지릅니다.

"야동은 '불량식품' 같은 거네요?"
남녀의 성교장면을 표현한 인형. 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에서 직접 제작했다.
 남녀의 성교장면을 표현한 인형. 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에서 직접 제작했다.
ⓒ 나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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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동이라는 것은 야한 영화인데,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안 되는 것들을 찍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돈을 벌려고 만든 거예요."
"나쁜 어른들이요?"

"그러니까 야동은 '불량식품' 같은 거네요?"
"네, 맞아요! 야동은 영화의 '불량식품', 그러니까 '불량영화'예요. 불량식품이 먹으면 먹을수록 몸을 망가뜨린다면, '야동'은 보면 볼수록 마음을 다 망가뜨리지요. 그런데 이런 나쁜 것을 어른들이 왜 만들까요?"

"돈 벌려고요."
"맞아요. 사람들 몸과 마음이 망가지든 말든 야동은 쉽게 돈 벌려고 하는 나쁜 어른들이 만든 것인데, 어른들이 봐도 좋지 않은 걸 어린이가 보면 어떻겠어요?"

"어린이들 마음이 더 망가져요."
"그러니까 야동은 나쁜 거예요."
"또 변태란 말은 원래 나쁜 말이 아니에요. 나비가 낳은 알이 애벌레가 돼서 번데기가 돼서 나비가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또 다른 뜻으로, 사람들이 하지 말아야할 이상한 짓을 하는 것을 말하기도 해요. 그러니까 옷을 벗지 않아야 하는 곳에서 옷을 벗어서 다른 사람에게 속살을 보여주는 야한 짓을 하는 것도 변태고, 보여주면 안 되는 것들을 찍어서 야동을 만드는 것도 변태고, 야한 장면과 야동을 많이 찾아보는 것도 좋지 않은 말로 변태라고 해요."

"좋은 변태가 나쁜 변태가 되었네요."

벌레에 관심이 많은 아이가 대답합니다.

"'형들이 재미있는 얘기해 줄게, 이리 와' 해서 야한 얘기나 야동 얘기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싫다고 해요."
"나쁜 거니까 하지 말라고 해요."
"도망쳐 와야죠."
"그래요, '싫다'고 하고, '하지말라'고 하고 그 자리를 피해야 해요. 그리고 그런 얘기를 들었으면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얘기하는 게 좋아요." 

성교육의 시작, 아이들의 관심은 '야동'

옛날 아이들이 "아기는 어디서 나와요?" 하고 묻는 것으로 성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기 시작했다면, 요즘 아이들은 '야동' 얘기부터 시작합니다. 원래 성에 대한 얘기는 하기가 꺼려지고 어려운데, '야동' 얘기부터 꺼내는 아이들에게 성에 관한 얘기를 풀어놓기는 훨씬 더 어려워졌습니다. 옛날처럼 그냥 둘러대거나 '넌 아직 몰라도 돼!' 하는 정도로 지나갈 수가 없게 됐습니다.

요즘 우리 아이들 주변에는 어른들이 상상하기 힘든 장면들이 널려있습니다. '몰라도 돼' 하거나 '보지 마!' 하는 말들이 무색하게 아이들이 보지 않으면 좋을 장면들이 이미 아이들 주변에, 막을 수 없을 정도로 가까이에 있습니다. 더욱이 호기심이 많은 아이들은 이 세상 모든 것이 궁금합니다. 보지 말라는 것은 더 보고 싶고, 하지 말라는 짓은 더 하고 싶은 것이 바로 초등학생 시절입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2월에 발표한 '2008 청소년 유해환경 접촉 종합실태 보고서'를 보면, 초등학생들이 야동을 처음 보게 된 때가 4학년이 가장 많다고 합니다. 또 대부분 집이나 친구집에서 부모님이 안 계실 때 많이 본다고 합니다.

옛날 어린이들이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는 것으로 '탈선'을 시작했다면 요즘 아이들의 '탈선'은 야동을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어른들이 보기에도 충격적인 장면이 많은데, 감당할 수 없는 나이인 어린아이들이 야동을 보는 것은 그 무엇보다 아이들의 바른 성장에 걸림돌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그래서 될 수 있는 한 아이들을 야동에서 보호해야 합니다.

야동으로부터 내 아이를 보호하려면

아이들이 컴퓨터만 켜면 한 쪽에 야한 장면이 늘 깜박거리고 있으니 아무리 애써도 아이들에게 야동을 절대 보지 않게 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아이들이 컴퓨터만 켜면 한 쪽에 야한 장면이 늘 깜박거리고 있으니 아무리 애써도 아이들에게 야동을 절대 보지 않게 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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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야동에서 보호하려면 우리 집 남의 집할 것 없이 아이들이 야동을 볼 수 있는 장치를 없애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컴퓨터만 켜면 한 쪽에 야한 장면이 늘 깜박거리고 있으니 아무리 애써도 아이들에게 야동을 절대 보지 않게 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렇잖아도 호기심 많은 아이들에게 컴퓨터에 나타난 야한 장면을 클릭하지 말라는 것은 아이들에게 지나친 요구입니다.

그 다음에 할 일로 아이들이 성에 대해서 물을 때는 아이들이 알고 있는 정도를 물어서 솔직하게 얘기해 주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드러내 놓고 묻는 아이들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숨기면 숨길수록 아이들의 세계는 음지로 들어가서 더 큰 문제가 됩니다. 성에 대해 아이들과 솔직하게 얘기하다보면 어른이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 수준에서 스스로 답을 찾는 일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야동을 비롯한 성에 지나치게 관심을 많이 보이는 아이들을 살펴보면,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마음 붙일 곳이 없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자존감이 없는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은 알아낼 수 없는 좋지 않은 정보를 먼저 알아내서 동급생이나 저학년 아이들에게 퍼뜨리면서 유대감을 느끼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어합니다.

충분히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자라는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이 야동 아니라 더 나쁜 것을 보여주더라도 크게 호기심을 갖지 않을 뿐 아니라, 본다하더라도 깊게 빠져들지 않습니다. 담배나 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야동, 담배나 술같은 유해환경에서 아이들을 보호하는 방법 중에서 가장 특효약은, 유명한 성교육 전문가에게 성교육을 몇 십 시간 시키는 것보다 아이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사랑, 그리고 아이에게 자존감을 갖게 하는 일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세상은 어른뿐 아니라, 아이들이 살아가기에도 너무나 힘든 세상입니다. 열 살도 안 된 아이들과 야동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아이들이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태그:#초등교육, #성교육, #초등학생, #야동이뭐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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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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