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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내가 구독하는 월간지에서 맛있기로 소문난 한 음식점 주인의 인터뷰를 읽고 공감을 느낀 적이 있다. 음식점 하면서 가장 기쁠 때가 언제인지 묻는 물음에, 주인은 "손님이 음식을 다 드시고 나가면서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라는 인사를 전할 때"라고 답했다.  
 
언뜻 생각하면 손님이 음식 값으로 낸 돈을 돈 통에 넣을 때이거나 수십 명이 한꺼번에 단체로 식당에 음식을 먹으러 왔을 때일 듯 싶은데 정작 음식점 주인은 그게 그렇지가 않단다.

 

인간의 노동을 포함한 모든 것의 가치를 돈으로 매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논리에 물들지 않고 온전히 노동 그 본래의 가치로 인정받는 것을 볼 때마다 신선한 자극을 받고는 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직업인 내게도 역시 가장 기쁜 순간이라면, 한 달 동안 열심히 일한 대가로 통장에 들어온 월급을 확인할 때가 아니라, 내가 가르친 아이들이 한 단계 성장하거나 상급학교에 올라가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확인할 때이다.

 

그런 의미에서 매년 5월 15일 스승의 날은, 원치 않는 잔칫상 앞에 앉아 절 받는 느낌도 없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교사로서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확인하고 교사만 느낄 수 있는 뿌듯함을 느껴볼 수 있는 날이다. 

 

 

음식점 주인과 나, '가장 보람 있을 때는'

 

그런데 난 지난해 겨울 일제고사와 관련하여 학부모와 학생에게 자기선택권을 주었다는 이유로 해직되었다. 그만한 일로 교단에서 내쳐질 줄이야 상상이나 했겠는가? 난생 처음 겪는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서 어찌해야 할지 몰라 움츠려 있을 때 제일 먼저 내 편이 되어 힘을 준 것은 내가 가르친 아이들이었다.

 

사실 졸업했으면 남남 아닌가. 집회에 참가하는 것이 학생의 신분으로 나름의 결단이 필요한 일일 텐데 집회에 나와 나를 격려해주고, 온갖 공·사 조직을 다 동원해서 탄원서도 모아주었다. 몇몇은 나를 응원하는 카페를 만들고 1인 시위까지 자발적으로 나서 주었다.

 

그래서 혹한의 겨울바람에 맞서 농성을 하고 앉아 있어도 추위를 느낄 수 없을 만큼 뜨겁게 달구어진 몸과 마음으로 세상이 강요하는 불의에 맞설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 반 아이들은 나보다 더 뜨거운 겨울을 보냈다. 그러면서도 눈앞에 벌어지는 상황을 감당하지 못해 당황해 하는 나를 오히려 진정시키고 힘을 주었다.

 

'선생님, 우리더러 나서지 말라는 말씀 그만하세요. 이건 선생님 문제이기도 하지만 우리 문제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나서는 것은 선생님이 해직되어 교문 밖에 서 계시는 것이 불쌍해서가 아니라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담임인 나는 학교에서 내쫓기고 학교 측에서는 아직 우리 반 아이들을 장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교실 밖으로 뛰쳐나오는 아이들을 말리던 내게 아이들이 해 준 말이다.

 

교단 밖으로 쫓겨난 내게 보여준 아이들의 온정

 

며칠 전, 지난해 겨울 내게 가르침을 받은 학생이면서 선생인 나를 가르쳤던 아이들 몇 명을 만났다. 중학교 가서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중간고사 끝나고 좀 여유가 생겼는지 어찌 지내시나 궁금하다고 문자를 보내 왔기에 반가운 마음에 점심이나 먹을 겸 만날 약속을 했던 것이다. 못 본 지 서너 달, 그새 많이 컸다.   

 

영화도 보고 점심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스승의 날' 만나고 싶다고 해서  학교 교문 앞에서 만나자고 했더니, 아이들이 하는 말이 내 가슴 한구석을 아리게 한다. 

 

'그 지겹고 짜증나는 곳에서 만나지 말아요.'

'우리 못살게 굴던 그 교◯ 딴 학교 갔대. 괜찮아. 그냥 교문에서 보자.'

 

6년 동안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뛰놀았던 초등학교를 지겹고 짜증나는 곳으로 기억하고 있다니. 공부하는 데 도움을 주었던 교장, 교감 선생님을 얼굴도 마주치기 싫은 사람으로 생각하다니. 그럴 거라 짐작은 했지만 아이들은 해직된 나 못지 않게 지난 겨울에 받은 상처가 크고 깊었던 것이다. 

 

내가 해직되지 않았으면 교실로 찾아와서 자기가 초등학교 때 공부했던 의자에 앉아 보기도 하고 사물함도 열어보기도 했을 텐데. 또 자기들 딴에 선배 노릇한다고 칠판에 후배한테 한마디 남기면서 다른 반 친구들처럼 평범한 스승의 날을 보내겠지. 그리고 나는 아이들이 들려주는 낯선 중학교 생활 이야기와 중학교 선생님 험담까지, 장단을 맞추어가며 들어 주었을 것이다.  

 

 

한 녀석이 내 손에 쥐어준 스승의 날 편지

 

교실에서 책상 위에 신문지 깔고 먹는 자장면 맛을 이 아이들은 알기나 할까? 결혼한 뒤 힘들고 아쉬울 때면 찾는 친정 같은 곳이어야 할 초등학교가 안타깝게도 우리 아이들한테는 외면하고 싶은 곳이 돼버린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먹먹한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 걱정뿐이다. 한 녀석이 헤어지면서 스승의 날 선물이라면서 슬쩍 내 손에 쥐어 주기에 집에 와서 보니 편지글이다.

 

민지가 희망으로 시작해서 희망으로 끝맺은 편지에 담아서 스승의 날 선물로 내게 주고 싶었던 것은, 해직된 지금의 생활이 힘겹더라도 다시 교단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말고 생활하라는 것 아니었을까.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칠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역시 아이들은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나의 스승'이다.

 

"선생님과 함께 한 그때가 그리워요"

[편지] 희망을 믿는 민지가, 정상용 선생님께

비록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 같은 정상용 선생님!

 

저와 선생님이 만난 지도 어느덧 1년이 더 넘었네요. 처음 만났을 때, 체험학습 갈 때, 1박2일 야영(이상하게도 '에릭'이란 가수의 'one'라는 노래를 들으면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네요) 갔을 때... 1년 전 일이지만 어제 일처럼 생각이 나요.

 

적어도 학교에서만큼은 언제나 가족 같이 대해주시고 늘 함께 해주셨던 선생님, 가끔씩 선생님과 함께 했던 날들을 떠올리곤 해요. 그때가 어찌나 그립던지. 그러고 보니 개인적으로 선생님께 편지를 쓰는 건 이번이 처음이네요. 마음 같아서는 매일 쓰고 싶지만 말입니다.

 

선생님께 조촐한 선물을 드리려고 했지만  전날 학급자치활동으로 버스비와 기념품 사느라 용돈을 다 써버리는 바람에 편지만 드립니다. 언젠가 또 만날 날이 있으면 그때는 반드시 선물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선물은 정성어린 마음이 가장 중요한 거 아시죠? ㅎㅎ 이제 슬슬 편지를 마무리해야 하겠군요. 내용도 별로 쓴 게 없는 거 같은데 벌써. 편지 디자인 보느라 줄 수를 미처 살피지 못했어요. 그럼 저의 특유의 인사로 편지를 마무리하겠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수면 위 갈매기 한 마리가 날아간다. 나의 슬픔과 함께 저 멀리. 어딘가 있을 희망을 향해.'

 

2009년 5월 9일 토 희망을 믿는 민지 올림.


태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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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고사 학부모학생의 자기결정권을 주었다는 이유로 해직된 해직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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