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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변두리 주택가에서 가끔 만날 수 있는 뻥튀기
 요즘도 변두리 주택가에서 가끔 만날 수 있는 뻥튀기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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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뻥이야! 귀 막아!"
"엄마, 갑자기 왜 그래?"

물가를 걷던 40대 아주머니와 아들로 보이는 초등학생이 가벼운 승강이를 벌인다. 같이 걷던 엄마가 갑자기 아들의 두 귀를 손으로 막아주자 아들이 놀라서 하는 말이었다. 길가 벽 쪽에는 밀짚모자를 쓴 노인이 뻥튀기 기계 앞에 앉아 있었다.

"에이! 엄마도, 저 할아버지 지금 뻥 튀기 안 하는데 뭘!"

그러고 보니 노인 앞에 뻥튀기 기계는 놓여 있었지만 기계는 돌리지 않고 있었다. 그냥 전시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몇 걸음 앞에는 커다란 로봇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서 있는 모습이 늠름하다.

"달려라 마루치 날아라 아라치 마루치 아라치 마루치 아라치 태권동자 마루치 정의의 주먹에 악의 무리 십삼호는 납작코가 되었네."

1970년대 유행했던 '로보트 태권V'였다. 어린 아들과 함께 걷던 아빠가 아이를 무동 태우고 로봇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자신이 어린 시절에 열광했던 로봇 태권시리즈의 '태권 동자 마루치'가 생각났던가 보았다.

로보트 태권V
 로보트 태권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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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 이발사 아저씨가 일하는 종로이발관
 대머리 이발사 아저씨가 일하는 종로이발관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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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나타난 풍경은 대머리 이발사 아저씨가 이발기계로 이발을 해주는 '종로이발관'이었다. 지난 토요일(9일) 찾은 청계천 상류 광통교 근처 물가엔 잊혀가고 있던 옛날 풍경들이 재현되어 있었다.

다음에 나타난 풍경은 역시 1960~70년대의 초등학교 교실이었다. 흑판 위에는 태극기가 붙여져 있고 한쪽엔 교훈, 또 다른 쪽엔 급훈이 붙여져 있는 모습이었다. 교훈은 '서로돕자 명랑하자 씩씩하자' 그리고 급훈은 '사랑하자 성실하자'라고 적혀 있었다. 부모들과 함께 나들이 나온 초등학교 1학년쯤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작은 책상이 있는 의자에 앉아보기도 한다.

"에이! 꼬질꼬질해! 난 싫어!"

남자 아이는 앉았던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며 싫다는 표정을 짓는다. 너무 작고 초라한 책상과 의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가 보았다.

추억의 초등학교 교실풍경
 추억의 초등학교 교실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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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양장점
 서울 양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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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나타난 것은 '서울 양장점' 옛날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여성의류 맞춤 가게였다. 뻥튀기 노인, 이발관과 함께 변두리 어느 곳에는 드물지만 어쩌다 아직도 남아 있는, 그러나 사라져가고 있는 풍경이었다.

다음 풍경은 거리의 '버스 정류장'이었다. 정류장에는 두 갈래로 땋은 머리를 어깨 위에 걸치고 세라복(?)이라고 불렸던 교복을 단정하게 입은 여학생이 상큼한 표정으로 서 있다. 버스정류장 표지며 여학생의 교복과 가방이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역시 옛날 거리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버스정류장에 서있는 상큼한 표정의 여학생
 버스정류장에 서있는 상큼한 표정의 여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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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미용실, 거울에 비친 추억 한 자락
 희망미용실, 거울에 비친 추억 한 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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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나타난 풍경은 '희망 미용실' 빨간 머리띠를 하고 원피스를 입은 미용사 아가씨의 손에는 가위와 빗이 들려 있다. 당장 누군가의 머리카락을 손질이라도 해주려는 자세다. 아주머니들이 지나다가 벽에 걸려 있는 그림들을 바라보기도 하고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기도 한다.

"가난했던 시절이었지만 그리운 풍경이네요."

50대 중반쯤의 아주머니들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 속에서 옛날 추억이라도 한 자락 떠올렸던가 보았다.

다음은 '담배 가게' 그런데 가게에 앉아 있는 주인 아주머니의 표정이 아주 넉살스럽다. "어린 학생이 웬 담배야? 아버지 심부름 왔나?"하는 표정이다. 그리고 가게 한쪽 의자에 호루라기를 입에 물고 앉아 있는 여성경찰관의 복장과 표정도 재미있기는 마찬가지.

그다음은 '고무신 가게'였다. 그런데 검정 고무신과 흰 고무신을 번갈아 가지런하게 진열해놓은 모습이 가히 예술적이다. 그러나 저 고무신은 당시 가난의 상징 같았던 신발들이었다. 얼마 신지도 않아 찢어지고 닳아버리는 고무신이었지만 그나마 살 돈이 없어 맨발로 다니거나 짚신을 신고 다녔던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담배가게 아주머니와 여경의 복장과 표정이 재미있다
 담배가게 아주머니와 여경의 복장과 표정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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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런하게 진열되어 있는 검정고무신과 흰 고무신
 가지런하게 진열되어 있는 검정고무신과 흰 고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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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코디언을 연주하는 노인들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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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마지막은 물가에 앉아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두 명의 노인이었다. 그런데 노인들의 연주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흘러간 옛날 가요를 아주 능숙하고 멋진 솜씨로 연주하는 노인들 주변에는 옛 가락의 향수를 달래려는 듯 노인들 몇이 둘러서서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따뜻한 봄날 청계천에 재현해 놓은 옛날 거리풍경은 어린이와 젊은이들에게는 그저 꼬질꼬질 궁상맞은 풍경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절을 지나온 나이 든 사람들에게는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그리운 풍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꼬질꼬질, #그리운 풍경, #이승철, #봄날 ,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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