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 포스터 ‘박쥐’의 이미지는 ‘밤, 피, 이중성’이란 면에서 제대로 뽑은 제목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영화 속의 박쥐는 이미지가 명쾌하지 않다.

▲ <박쥐> 포스터 ‘박쥐’의 이미지는 ‘밤, 피, 이중성’이란 면에서 제대로 뽑은 제목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영화 속의 박쥐는 이미지가 명쾌하지 않다. ⓒ 모호필름

"영화가 뭐 이래요? 박찬욱 영화는 소문만 무성하지 결국 <올드보이> 빼면 뭐 시원한 구석이 없다니까. <박쥐>는 최악인 거 같아요. 뭘 말하려고 하긴 하는데 전혀 관객이 같이 호흡해 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길기는 또 왜 그렇게 길데요. 지루하게."

딸아이의 불평을 들으며 영화관을 나왔다. 박찬욱 감독의 모든 영화를 싸잡아 끌어내리는 딸애의 말엔 동의하지 않지만 <박쥐>에 대한 생각은 나도 다르지 않다.

솔직히 기대 좀 했다. <박쥐>는 2009년 개봉 영화 중 최고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하며 전력 질주할 듯 보인다. 1일 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 측에 따르면 개봉일인 지난달 30일 17만7506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나흘만인 3일 현재 관객 96만483명을 동원하는 기염을 토하며 승승가도를 달리고 있다.

①광고효과 : 소문은 소문일 뿐?

그러나 그 흥행 성적을 계속 이어갈지 사뭇 궁금해진다. 나 같은 생각을 가진 관객들이 많고 그들이 입소문을 내면 초반의 기록은 만만하게 깨질 승산이 크다. 광고와 프리뷰 기사들에 현혹되어 19세 관람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노출이 심하다는 사전 지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온 가족이 볼 생각을 했는데, 결국 소문은 과대포장이었다.

박찬욱 감독 자신이 "<박쥐>는 내 자신이 투영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고 말하지만 않았어도 그렇게 실망하진 않았을 거다. 복수 3부작 이후 더 농축된 박찬욱 감독 특유의 이미지가 살아있다는 사전 유출 정보들은 적어도 내게는 거짓이었다.

에로티시즘과 신앙심 사이의 갈등, 살인과 피를 먹어야 하는 뱀파이어의 내적 갈등, 뭐 그런 갈등들이 영화에 심도 있게 펼쳐질 줄 알았다. 그러나 피를 갈망하는 그냥 뱀파이어가 등장한다. 그럴싸하게 신부를 등장시켜 신앙과 도덕적 딜레마를 그려보려고 하다 실패한 그림이다.

박 감독이 이 영화를 위하여 10년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거나, 이미 10년 전에 송강호를 캐스팅했다는 등의 이야기는 영화 내용과 하등의 상관이 없는 듯하다. 영화를 본 후 입맛이 씁쓸하다. 그래서 <공동경비구역 JSA>,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등 그의 문제작들이 자꾸 마음에 밟힌다.

<박쥐>는 봉준호 감독의 <마더>와 함께 제62회 칸 국제영화제에 동반 진출하기도 했다. 현지시간으로 4월 23일(목), 칸 국제영화제는 박찬욱 감독의 <박쥐>가 '경쟁부문'에, 봉준호 감독의 <마더>가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각각 초청되었다고 전했다. 우리 영화들이 본상에 오르기를 소망하지만 <박쥐>가 본상을 수상하면 칸만의 독특한 시선 때문이라고 여길 것 같다.

②관점1 : 멜로, 치정, 노출 신은 그냥 호들갑?

 상현과 태주의 만남은 불에 기름을 붙는 꼴. 둘은 그렇게 멜로물의 수위를 높인다.

상현과 태주의 만남은 불에 기름을 붙는 꼴. 둘은 그렇게 멜로물의 수위를 높인다. ⓒ 모호필름


신부 상현(송강호 분)은 죽어가는 환자들을 돌보는 병원의 신부로 사역하며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없애려는 비밀 백신개발 시도의 하나로 진행되는 연구에 자진하여 동참한다. 결국 바이러스에 감염돼 정체불명의 피를 수혈 받고 뱀파이어가 된다.

사람들은 500명 중에 유일하게 살아난 그를 '붕대감은 성자'라 부르며 치유기도를 부탁한다. 그 중 한 명이 어릴 적 친구인 강우(신하균 분)인데 그도 성현의 안수 기도를 받고 치유된다. 이후 자연스럽게 드나드는 강우의 집에서 강우의 아내 태주(김옥빈 분)를 만나게 되는데, 태주는 히스테리컬한 시어머니에 눌리고 무능한 남편 때문에 욕구불만인 상태다.

상현과 태주의 만남은 불에 기름을 붙는 꼴. 둘은 그렇게 멜로물의 수위를 높인다. 욕정에 몸부림치다 칼로 허벅지를 자해하는 태주의 모습은 마치 조선시대의 어느 여염집 과부를 보는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그 상처의 원흉이 남편이라고 거짓말을 태연하게 해댄다.

김옥빈의 연기가 단연 돋보인다. 태주는 남편의 친구인 상현을 만나 억눌렸던 욕망과 매력을 발산하는 요부다. 하나님을 안 믿기 때문에 지옥에 안 간다는 천연덕스런 발언은 악랄하기 그지없는 마귀의 모습이다. 그의 눈빛 연기와 몸짓 연기가 한층 더 성숙한 연기자로 만들지 않나 생각한다. 그나마 송강호의 멜로 연기도 좋은 점수를 줄 수 있다.

하지만 영화가 멜로물이며 치정물인가? 격렬한 정사 장면이 시야를 자극함에도 불구하고 진정 멜로물이라고 말하기에는 쑥스럽다. 야하다는 소문은 그저 소문일 뿐이다. 둘의 정사장면을 빼놓고 보면 하나도 야하지 않으니까. 송강호의 성기노출 또한 그저 군더더기일 뿐이다. 관객의 시선을 모으기 위한 문제화를 노린 장치라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

③관점2 : 신앙 혹은 도덕적 갈등 그리고 구원?

 뱀파이어의 갈등? 그렇다면 몰라도 신부의 모습은 그저 장치에 불과하다. 피를 빨아먹는 뱀파이어만은 실컷 보여준다.

뱀파이어의 갈등? 그렇다면 몰라도 신부의 모습은 그저 장치에 불과하다. 피를 빨아먹는 뱀파이어만은 실컷 보여준다. ⓒ 모호필름


목사인 내게는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어떤 사명감이 있었다. 죄와 구원 사이의 갈등, 피를 먹기 위해 사람을 죽일 것인가 그냥 굶어죽을 것인가 사이의 갈등, 에로티시즘과 신부의 소명 사이의 갈등 등, 나에게 <박쥐>는 신앙적 갈등과 구원의 딜레마라는 짙은 농도의 그림이 있어야 했다.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하려는 감독의 의도는 충분히 읽힌다. 하지만 깊이가 없다. 산만하다 못해 지루하다.

백화점 식으로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고자 해서인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난해한 스토리 때문인가. 도저히 감이 안 잡힌다. 죄와 양심, 구원의 갈등을 이야기하는 건지. 도덕적 관습에 초점을 둔 건지. 처음에는 갈등하는 것 같은 시퀀스도 등장하는 듯하더니, 이내 갈등 없이 난잡함으로 흐른다.

복잡함과 모순, 난잡함과 난해함, 에로와 종교적 색채, 신부인 것 같으면서 뱀파이어인 것 등이 감독의 메시지라면 성공적이다. 그러나 종교적 갈등이나 도덕적 딜레마, 구원과 에로의 경계선에 선 종교적 구도자, 신부와 뱀파이어 사이의 경계인 등이 메시지라면 분명히 실패작이다. 태주를 통해서는 전혀 없고, 상현을 통해서는 깃털만큼만 종교적 갈등과 구원이라는 논지에 접근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아니 그것도 목사의 눈이 아니면 전혀 눈에 띄지 않을 것이다. 뱀파이어의 갈등? 그렇다면 몰라도 신부의 모습은 그저 장치에 불과하다. 피를 빨아먹는 뱀파이어만은 실컷 보여준다. 흡혈 장면만으로 '피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느니라'는 기독교 진리에 접근할 수는 없다. 피는 피로되 질적으로 다른 피다.

'박쥐'는 '밤, 피, 이중성'이란 면에서 제대로 뽑은 제목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영화 속의 박쥐는 이미지가 명쾌하지 않다. 다만 자살이라는 문법을 통하여 구원을 이야기한다면 몰라도. 억압된 성(性)을 지옥이라고 비유하고, 쾌락을 구원이라고 비유한다면 영화는 그럭저럭 봐줄 만하다.

하지만 죄와 구원이라는 구도로, 즉 종교적 구도로 말한다면 영화는 혼란 그 자체다. 사이비종교, 뱀파이어교의 그것이다. 그렇다고 에로티시즘으로의 탈출을 사회적 구원으로 부각하기에도 구도적인 면이 빈약하다. 적나라한 장면들에도 불구하고 구심점이 없다. 무엇인가를 말하려다 너무 말이 많아진 박쥐 한 마리 보고 싶다면 적극 추천이다.

그러나 나처럼 종교적 구도자의 심도 있는 갈등을 보려고 한다면 <박쥐>는 리스트에서 빼라. 종잡을 수 없는 주제의 넘나듦 속에서 러닝타임의 지루함까지 경험하고 말 것이다. 알레고리의 알레고리화? 신앙도, 갈등도, 구원도 생각하게 하는 뒷심이 부족하다.

덧붙이는 글 *<박쥐> 박찬욱 감독/ 송강호, 김옥빈 출연/ 모호필름 제작/ CJ 엔터테인먼트(주) 배급/ 상영시간 133분/ 2009년 4월 30일 개봉
*이 기사는 뉴스앤조이,세종뉴스 등에도 보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박쥐 박찬욱 사이비종교 뱀파이어 영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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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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