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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수업이 끝나면 천안지역 도심의 A지역아동센터를 찾는 영철(가명·10)군. 연립주택에서 아버지와 살고 있는 영철군은 방과 후 대부분 시간을 기초생활수급자나 저소득 가정 등 빈곤계층의 아동들에게 급식과 학습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역아동센터에서 보낸다.

아버지가 밤 늦도록 일하는 탓에 집에 가도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집에 있는 동안 영철군이 가장 많이 하는 일은 TV시청. 주중 하루에 3~4시간 이상 TV를 본다. 아침에는 아버지가 먼저 출근하고 나면 일어나 씻고 등교 한다. 혼자 밥 먹는 것이 싫어 일주일에 아침밥을 먹는 횟수는 고작 1~2회. 지역아동센터 이용 아동의 건강조사에서 영철군은 "평상시 스트레스를 많이 느낀다"고 응답했다.

천안 도심의 다른 B지역아동센터의 미선(가명·13)양. 아버지와 함께 사는 한부모가정으로 상가 건물내 주택에서 거주한다.

아침밥을 전혀 먹지 않는 미선양은 TV시청 할 때 가장 큰 즐거움을 느낀다. 하루 평균 5~6시간 TV를 본다. TV 시청 시간은 많은 반면 일주일에 하루 30분 이상 운동을 하는 날은 하루도 없다. 지역아동센터 이용 아동의 건강조사에서 미선양은 "가정문제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응답했다. 최근 1년 동안 "죽고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미선양과 같은 지역아동센터의 다른 한부모가정 아동인 은희(가명·10)양.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은희양 역시 건강조사에서 가정문제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밝혔다. 은희양은 자신이 우울증도 있다고 대답했다.

저소득층 초등생 18%, 아침 거의 안 먹어

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 주최로 열린 '빈곤아동의 건강행태 현황 및 건강증진을 위한 토론회' 모습.
 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 주최로 열린 '빈곤아동의 건강행태 현황 및 건강증진을 위한 토론회' 모습.
ⓒ 윤평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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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의 복지영역 시민단체인 '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복지세상)은 천안지역 빈곤아동의 건강실태 파악을 위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2008년 12월부터 2009년 4월까지 진행된 설문조사는 천안지역 32개 지역아동센터의 저소득층 아동 522명을 비롯해 자치단체에서 도시락을 전달받는 초등학생 244명 등 총 766명 빈곤 아동들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복지세상은 지난달 28일 '빈곤아동의 건강행태 현황 및 건강증진을 위한 토론회'를 갖고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조사결과 지역아동센터 이용 아동들을 비롯해 저소득층 초등학생들의 건강행태에 '빨간불'이 켜졌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아침밥을 전혀 먹지 않는다고 응답한 아동이 7.3%,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정도 먹는다고 응답한 비율이 10.7%로 나타났다. 18% 정도의 아동은 아침식사를 거의하지 않는 셈.

아침식사 결식율은 한부모가정에서 높게 나타났다. 가족 유형별 아침식사 결식율은 부자가정 31.7%, 모자가정 24.7%, 조손가정 9.1%로 조사됐다.

휴일 결식율은 주중 아침 결식율보다 더 높았다. 휴일이나 지역아동센터를 오지 않을 때의 결식경험 여부를 묻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26.6%가 '그렇다'고 답변했다. 휴일 결식율도 한부모 가정에서 높았다. 휴일 식사 결식율은 부자가정이 41.1%로 가장 높았다. 모자가정이 29.7%로 뒤를 이었다.

휴일 식사를 거르는 이유는 '먹고 싶지 않아서'라는 응답이 58.5%를 차지했다. '부모님이 일하느라 챙겨줄 시간이 없으셔서'라는 응답도 31.7%로 나타났다. 부모님이 아프시거나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라는 응답도 각각 6%, 3.8%로 조사됐다.

저소득층 초등생 2명 중 1명 스트레스 경험

스트레스 인지율을 묻는 질문에는 저소득층 초등학생의 절반 이상이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응답했다. 스트레스를 느끼는 원인은 공부문제가 37.9%로 첫 번째로 꼽혔다. 다음으로 가정문제 24.1%, 친구문제 17.6%을 보였다. 기타 의견으로 건강문제, 괴롭힘, 형제자매간 갈등,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이 있었다.

2007년 청소년건강행태 온라인 조사 결과 전국 청소년의 스트레스 인지율은 46.5%. 이번에 조사된 천안의 빈곤아동 초등생 스트레스 인지율은 59.5%로 앞서 조사된 전국 평균을 웃돌았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저소득층 초등생 766명 가운데 35.7%는 "지난 1년동안 2주 이상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기분이 쳐지고 우울했던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우울감에 이어 지난 1년 동안 자살을 생각해 보았는가 여부를 묻는 질문에 21.6%가 '그렇다'고 답변했다. 2007년 보건복지가족부의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나타난 청소년 자살 생각율 18.5%와 비교해 3% 이상 높은 수치이다. 자살 생각율에 대한 지역별 결과는 동지역 거주 저소득층 아동이 24%로 읍면지역 아동 15%에 비해 9% 이상 높았다.

빈곤아동이 경험하는 스트레스와 우울감, 자살 생각율은 상관 관계가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스트레스를 많이 느낀다고 응답한 아동 가운데 자살을 생각해 본 경험이 있는 응답자가 48.8%로 집계됐다. 우울감을 경험한 아동들 중에서 63.1%는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

저소득층 초등생 62.2% 저체중, 10세 이전 음주.흡연 경험

저소득층 초등학생 중에는 저체중이 많고 10세 이전 음주.흡연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행태 조사결과 24.3%의 아동이 지금까지 1잔 이상 술을 마셔본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첫 음주 경험 나이는 8세가 18.6%로 가장 많았으며 10세, 7세 순으로 나타났다. 음주 이후 음주 지속여부를 묻는 질문에 음주 경험이 있다고 답변한 180명 가운데 16.3%(23명)의 아동이 술을 계속 마신다고 응답했다.

흡연 경험율과 지속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전체 응답자의 9.6%(72명)가 흡연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첫 흡연 연령은 9.3세. 흡연 경험자의 남.녀 학생 분포는 남학생이 77.5%로 월등히 많았다. 11명의 아동은 첫 흡연 이후 지금까지 흡연을 지속중이라고 밝혔다. 흡연 경험은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약 3.5배 높았지만 흡연 지속은 여학생이 남학생 보다 4배 정도 높았다.

흡연 및 음주 경험이 있는 아동 중 두 가지를 모두 경험한 아동은 5.4%(40명)로 나타났다. 흡연과 음주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담배를 피워 본 경험이 있는 빈곤아동 중 술을 마셔본 경험이 있는 아동은 22.5%로, 마셔본 적이 없다는 5.5%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최근에 측정한 키와 몸무게에 따라 체질량 지수를 확인한 결과 빈곤아동의 62.2%가 저체중으로 판명됐다. 정상과 과체중은 각각 30.2%, 4.5%로 조사됐다. 체질량 유형에 따른 학년별 분포는 저학년의 저체중이 44.3%로 높았다. 과체중 등 비만은 상대적으로 고학년에서 높은 비중을 보였다.

아침 결식율 개선체계 모색 필요

굶는 아이들 비율이 낮아지도록 지원체계 서둘러야
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복지세상)은 지난달 28일 오전 '빈곤아동의 건강행태 현황 및 건강증진을 위한 토론회'를 주최했다. 천안시영상미디어센터 비채 3층 강당에서 열린 토론회에는 지역아동센터 종사자들과 아동복지 관계자 등 1백여명이 참석했다.

발제자인 김진영 복지세상 간사는 "건강행태 조사결과 아침 결식과 휴일 결식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며 "등교 이후 빵이나 우유 등 식사 대용 식품을 지원하는 등 결식율 개선을 위한 지원체계 모색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김 간사는 또 "저소득 아동의 건강증진을 위해 지역아동센터나 학교, 가정에서 실천하고 체크할 수 있는 아동건강증진 매뉴얼을 개발해 실질적인 아동건강행태가 개선되고 증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자인 낮은울타리 지역아동센터 문미영 교사는 "지역아동센터를 이용하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몸이 마르고 키가 작아 같은 학년의 친구들에 비해 외소한 편"이라며 "못 먹어서라기보다 집에서의 생활 습관이 끼니를 제때에 챙겨먹거나 영양가가 있는 음식을 잘 섭취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문 교사는 "아이들의 부모는 대부분 가정생계를 위해 아침 일찍부터 늦은 저녁까지 노동일을 하고 지친 몸으로 집에 들어오기 때문에 한 끼라도 정성껏 준비해 아이들을 위해 영양가 있는 음식을 차려 먹이는 것이 버거울 때가 많다"며 부모의 고충도 전했다. 문미영 교사는 빈곤아동들의 건강증진을 위한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전경자 순천향대 간호학과 교수는 토론에서 "지역사회는 빈곤아동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보호해야 할 책임이 크다"며 "고위험 아동은 사례 관리자를 정하고 전문가들의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천안지역 주간신문인 천안신문 525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빈곤아동, #건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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