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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경제난으로 소비가 줄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이 봄, 입을 게 없다"는 딸의 하소연에 "옷장부터 정리하라"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괜한' 소리로 들리지 않는 요즘입니다. 비단 아껴 쓰는 것에서 나아가 '다시' 쓰고, '나눠' 써도 "괜찮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쓸모없이 버려지는 나무조각 등 남들 눈엔 하찮은 쓰레기들을 특별한 예술작품으로 변신시키는 젊은 화가가 있어 만나 보았습니다. [편집자말]
지난 3일, 새벽 산책길에 정진숙(38, 이하 앨리스)씨와 마주쳤습니다.

"이른 아침에 어딜 가시나요?"

건조한 인사를 대신한 물음에 가슴을 흔드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나무들과 대화하기 위해 걷고 있어요."

아침 산책길에 만난 앨리스. 그녀는 이른 아침에 헤이리를 한바퀴 돌면서 온갖 나무와 풀들과 대화하는 게 하루 일과의 시작입니다.
 아침 산책길에 만난 앨리스. 그녀는 이른 아침에 헤이리를 한바퀴 돌면서 온갖 나무와 풀들과 대화하는 게 하루 일과의 시작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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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는 경기도 파주 헤이리 더스탭 작가동의 8평 공간에서 2년째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입니다. 넓지 않은 공간에 2평 정도는 숙식을 위한 공간으로 따로 구분해 놓아, 정작 작업 공간은 여느 화가들의 스튜디오보다 턱없이 작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언니와 형부가 당분간 쓸 일이 없다며 조건 없이 내준 이 공간이 호화스럽다고 야단입니다. 여러 화실을 전전했던 2년 동안에 비하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10년 전, 잘 나가던 내셔널 브랜드의 의류회사 디자인 팀장을 그만두고 붓을 잡았습니다. 자신을 찾아가는 도구로 그림을 선택한 것입니다.

썩거나 갈라져 버려진 나무토막이 '캔버스'

마대자루에 담겨 버려진 송판조각들은 그녀에 의해 또다시 생명을 부여받습니다.
 마대자루에 담겨 버려진 송판조각들은 그녀에 의해 또다시 생명을 부여받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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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동안은 아파트 발코니가 화실이었고, 1년 동안은 한 대학의 복도를 화실 삼아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림에 대한 그녀의 열정을 지켜본 이웃 대학 교수님께서 아파트 발코니보다 대학 복도가 차라리 좋겠다고 생각해서 한 배려였습니다.

다른 3년 동안은 가평 현리 명지산 자락 폐교에서 혼자 작업했고, 그 다음 1년은 서울 태릉의 방치된 컨테이너 박스에서, 다른 1년은 자신의 침실에서 작업을 이어왔습니다. 좁은 공간에서도 그녀의 작업이 가능했던 것은 사용하는 그림 재료의 독특함 때문이었습니다.

앨리스는 캔버스 대신 버려진 나뭇조각들을 사용해 작업합니다. 가운뎃손가락만한 크기의 나뭇조각에서부터 부분적으로 썩거나 갈라져서 버려진 것들이 그녀의 캔버스를 대신합니다.

지난겨울 누군가가 사왔던 붕어빵은 사라졌지만 그 봉지는 천진한 소년 소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화구들은 대부분 쓰레기통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아이스크림 컵과 햇반을 담았던 플라스틱 그릇의 재활용입니다.
 지난겨울 누군가가 사왔던 붕어빵은 사라졌지만 그 봉지는 천진한 소년 소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화구들은 대부분 쓰레기통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아이스크림 컵과 햇반을 담았던 플라스틱 그릇의 재활용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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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도 폐기된 나뭇조각뿐만 아니라 버려진 붕어빵 봉지, 편지봉투, 냅킨, 케이크 받침, 곶감상자, 발부리에 걸린 작은 돌, 깨진 기와조각, 종이접시, 과자포장지, 골판지박스, 뭉치로 버려진 수료증 인쇄물 등 눈에 띄는 모든 것이 그녀에게는 그림 재료가 됩니다.

그림 재료뿐만 아니라 화구 또한 대부분 돈 들일 필요가 없는 것들입니다. 팔레트는 햇반을 담았던 플라스틱 밥그릇을 재활용한 것이고, 수채화용 물통은 쓰레기통에서 분리 수거된 일회용 플라스틱 아이스크림 통이나 음료수 페트병입니다.

돌이켜보면 10년간 그녀가 그림을 그렸던 공간도 모두 용도가 전환된 재활용이었으며, 그림의 모든 도구는 누군가에 의해 쓰임을 다하고 버려진 것들이었습니다. 이것들이 앨리스의 손을 거치면 누구나 집에 모셔두고 싶어 하는 작품이 됩니다.

그림 그리는 화가가 초대전 거절한 까닭


배낭여행을 좋아하는 그녀는 세계 각지에 많은 친구들을 두고 있습니다. 여행지에서 초상화를 그려주면서 정이 든 사람들입니다. 그런 연유로 일 년에도 몇 번씩 해외 친구들로부터 초청을 받습니다. 함께 작업을 하자는 요청입니다.

이태 전에는 인도에서 2개월 동안 머물렀으며 작년에는 프랑스와 노르웨이 그리고 미국에서 각각 1개월씩 머물며 작업을 했습니다. 그 여행에서도 단지 쓰던 붓 몇 자루만 배낭에 담으면 그만입니다. 어느 나라에도 그녀의 그림 재료가 되는 폐기된 보석들은 곳곳에 널려려 있으니까요.

그녀는 지금까지 개인전에 욕심이 없었습니다. 그림을 단지 마음을 닦는 도구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올 3월에는 인사동 성보갤러리에서 일주일간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올해 초 2개월 동안 미국의 한 지인이 사무실 한 켠을 내주어 그곳에 머물며 인근의 목공소에서 버려진 나무토막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때 그린 그림 일부를 한국으로 부쳤고, 택배회사에서 포장을 하시던 분이 그림이 너무 좋다며 갤러리에서의 전시를 강권했습니다. 좁은 작업실에 그 작품들을 둘 공간을 찾을 수가 없어 첫 전시회를 열게 되었다는 앨리스.

전시된 대부분의 그림은 일주일 만에 동이 났고, 그 갤러리의 관장님은 그 전시가 끝난 지 한 달이 지나지 않아 다시 초대전을 제의했습니다. 그러나 앨리스는 그림 그리는 일이 욕심이 될까 싶어 정중히 사양했습니다.

그녀를 단 한번이라도 만났다면 이제 화가를 꿈꾸는 어느 누구도 돈이 없어서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소리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길거리에 널린 것이 그림의 재료이며, 여전히 건축이 끝난 현장 어딘가에는 방치된 컨테이너박스가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누군가가 주인이 되어주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선물한 그림 팔아 식량 사는 사람도"

사람들은 아름다운 그림에 모두 자신을 투영하나봅니다. 앨리스가 어린 조카를 그린 이 그림을 보고 지나치는 엄마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딸을 쏙 빼어 닮았다고 말하곤 합니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그림에 모두 자신을 투영하나봅니다. 앨리스가 어린 조카를 그린 이 그림을 보고 지나치는 엄마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딸을 쏙 빼어 닮았다고 말하곤 합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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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작업실에서 3시간 동안 수다를 즐겼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녀처럼 행복해졌습니다(그녀와 알고 지낸 지난 2년 동안 저는 '콩'이라 불렀습니다. 그녀가 격의 없도록 그렇게 불러주기를 원했고, 저도 그녀의 밝은 모습과 '콩'이라는 어감이 썩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형부가 이 공간에서 나가라고 하면 어떡하죠?
"제발 그랬으면 좋겠어요. 더 자유롭고 싶거든요. 전 한곳에 정주하는 것보다 세계를 떠돌고 싶어요."

- 여행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지 않은가요?
"큰 돈이 들지는 않아요. 인도에는 언니가 5만 마일 항공 마일리지를 제게 선물해 주어서 갈 수 있었고, 현지에 가면 오히려 돌아가지 말라고 저를 잡아요. 동네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려주기도 하고, 수다로 그들을 즐겁게 해주기 때문이죠.

아주 가난한 사람들은 제가 그려준 자신의 초상화를 팔아서 가족들을 위한 식량을 사기도해요. 제가 선물한 그림을 외국 관광객들에게 팔아버리는 그 사실에 속상하기보다, 오히려 제 그림으로 인해 잠시나마 그 집안 사람들이 궁핍을 잊는 데 도움이 되는 현실이 더 기뻤어요. 제 그림이 돈과 바뀐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 화가들은 대부분 공들인 자기 작품이 좀 더 오래 보존되기를 원하고, 좀 더 비싼 값이 매겨지길 원합니다. 재료에 따라 그림 값이 매겨질 수는 없지만, 썩은 나무 조각이나 붕어빵 봉투에 그리는 콩의 그림을 사람들이 비싼 값을 지불하고 사려고 할까요?
"그림은 제가 성장하는 도구이며, 제가 그림을 그릴 때 가장 행복하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저는 명예나 돈에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에 전혀 그림 값에 연연할 이유가 없습니다."

- 조각난 나무토막이나 찢어진 과자 포장지가 같은 모양일 수 없는데, 정형화된 캔버스에 하는 작업에 비해 구상이 어렵지 않나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신의 '빛'이 있고 고유한 '미'를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송판의 옹이 때문에 버려진 구멍 난 송판조각도, 모서리가 잘려나간 모난 나뭇조각도, 세월 때문에 한 쪽이 썩은 나무도, 갈라진 나무판도, 심지어 못자국조차도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제게 다가온 이 재료들을 저는 따로 다듬지 않습니다. 단지 붓질을 할 수 있게 한 면을 살짝 사포로 매끄럽게 할 뿐입니다. 그러면 그 재료들이 제게 말을 겁니다. 어떻게 그림을 그리면 좋을지……. 그 재료가 주는 느낌에 따라 즉흥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제 그림은 구상이나 스케치 같은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방식 오히려 본질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구상을 하게 되면 관념이 묻어나고 정형화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금이 가서 버려진 송판조각에 저는 나무를 그렸습니다. 갈라진 흠이 있는 그림을. 부러진 긴 판자에는 여덟 마리의 오리를 그렸습니다. 그 부러진 유선형의 조각이 오히려 개울 같아서 그 속의 오리들이 더 생동감이 있습니다. 물소리도 들리는 것 같고 오리가 숨을 쉬는 것 같기도 합니다."

"버려진 것에서 아름다움과 쓰임 다시 발견해요"

- 이 재료들은 직접 쓰레기통을 뒤져 찾아냈나요?
"물론 쓰레기통에서 나뒹구는 재료를 주워오기도 하지만 주로는 인테리어 일을 하시는 분이 자루에 담아다 줍니다. 그분들은 따로 돈 들여서 쓰레기를 버릴 필요도 없고 간혹은 제가 그것에 그린 그림을 선물도 하니까요. 간혹은 이웃들이 앨리스가 생각났다며 버릴 것들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그 분들은 저 때문에 버릴 것이나 버려진 것에서 다시 아름다움과 쓰임을 발견하려고 애쓰게 되었다고 고백도 합니다. 그분들이 '이 세상에 못 생긴 것은 없다'는 제 생각을 닮아가니 이 또한 보람입니다."

-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없나요? 미혼의 여자가 홀로인 것에 대해 가족들이 염려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제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오직 현재만 있을 뿐입니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으니 걱정이 있을 수 없지요. 주어진 오늘만을 열심히 살면 유유자적할 수 있고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강박은 미래를 계획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되니까요. 비교적 현실주의자이셨던 아버지께서도 저에 대한 염려를 많이 하셨지만 제가 현재의 삶을 너무 행복해하기 때문에 이제 저의 모든 생활을 양해해주세요.

제가 회사에 근무할 때 제가 디자인한 옷을 입은 사람들을 길에서 만나고 그들이 맵시를 뽐내는 것을 보면서 성취감을 못 느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성취감이 저의 삶을 아는 도구가 될 수는 없었어요. 저는 지난 10년간 저의 성찰과 구원의 도구였던 이 그림을 언제든지 그만둘 수도 있어요.

제게 그림보다 더 좋은 도구를 만난다면 말이지요. 그리고 수년 뒤에 다시 그림으로 돌아올 수도 있겠지요. 몇 년간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고 도태한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성장이고 그림은 그것의 반영이기 때문에 역시 그림도 성장했다고 볼 수 있지요."

- 그럼 콩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림이 아닐 수도 있겠네요.
"그림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삶이 중요합니다. 제가 잠실에서 명지산 밑 현리 상판리 폐교를 3년 동안 오갈 때 편도 4시간 정도가 걸렸어요. 전철 2번 타고 버스를 3번 갈아타고 다시 자전거로 한 시간쯤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6시간쯤을 작업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귀가시간도 4시간이 소요됩니다. 주위 분들이 제가 그림에 미쳤는지 알았어요.

하루에 8시간을 길거리에서 버리는 그 고생을 왜하냐고 혀를 찼지만 저는 오가는 시간을 즐겼던 것입니다. 그 시기 제가 아마 초상화를 제일 많이 그렸을 것입니다. 새벽 지하철에서 졸고 있는 사람들을 그렸지요. 자신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했지만 일 년에 몇 번은 찢기고 욕을 먹는 경우가 꼭 있었어요.

버스 속에서는 변해가는 현리의 풍경을 감상하고 자전거를 타면서 풀들에게 말을 걸었어요. 폐교에 머문 6시간도 그림만 그린 것이 아니에요. 혼자 큰소리로 노래하고, 기타치고, 교실을 뛰어다니며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붓으로 점하나만 찍고 올 때도 있었어요. 낡은 교사의 빈 교실에서 혼자 제가 하는 짓을 누군가가 보았다면 필시 저를 무언가에 홀린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때 폐교에서의 경험은 제게 붓을 잡는 시간 외에도 생활의 모든 행위가 그림이라고 믿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작가라는 호칭을 위해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다.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도 아닙니다. 그림은 누구나 그릴 수 있습니다. 단지 그리지 않을 뿐입니다."

- 콩의 그림은 모두 콩을 닮은 것 같아요. 그림을 그리면서 진아(眞我)에 다가간다고 느끼나요?
"바깥에서 보이도록 창가에 놓인 저의 조카를 그린 그림을 보고 대부분의 엄마들이 자기 딸을 닮았다고 합니다. 모두가 그림을 통해서 자기를 보나 봅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예요. 제게 그림은 저를 바라보는 도구이고 본래의 용도에서 쓰임이 다한 것들로 작업을 하는 것은 버려진 것에서 조차도 빛을 내는 각각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발견을 즐기기기 때문입니다."

- 콩의 모든 작품은 액자를 하느라 다시 돈을 들일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맞아요. 간혹 붕어빵 봉투에 그린 그림을 사가지고 가셔서 액자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제 작품의 대부분은 그냥 구석에 던져두거나 선반에 올려두면 그만이에요. 프레임을 만드느라 또다시 아크릴이나 유리가 낭비될 필요가 없습니다. 옆집의 기타공방에서 수제기타를 만들면서 버려진 이 원형의 나무 조각들처럼 줄로 연결하면 늘 모양이 바뀌는 모빌 작품이 되기도 하구요."

앨리스에게 그림은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길에 만난 도반이었습니다. 그녀가 그림의 매체로 삼는 버려진 것들은 단지 재활용의 의미뿐만 아니라 큰 성찰의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진정한 자아(眞我)를 찾는 첩경은 곧 자기(個我)를 버리는 일이기도 합니다. 앨리스는 일찍 버려진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방법을 통해 집착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는 이치를 이미 깨닫고 있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태그:#엘리스, #재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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