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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현대사에서 사상과 양심때문에 감옥간 이들이 많다. 많은 이들 중 '비전향 장기수'로 살았던 이들은 어느 누구도보다도 고통 속에서 살았다. 사상과 양심을 국가 권력 앞에 굴복할 수 없다는 이유로 국가 권력은 그들을 옥죄였고, 수 십년을 0.5평 속에 가두었다.

 

하지만 비전향 장기수들은 한때는 같은 사상과 양심을 공유했던 이들이 전향을 하고, 준법 서약서를 쓰고 감옥으로부터 벗어났지만 그들은 몸은 0.5평에 갇혔을지라도 사상과 양심만은 자유를 지향했다. 그들이 살아 온 삶이 가치 있는 이유이다. 그 사상과 이념을 지지하지 않더라도.

 

이들의 삶을 돌아본 작은 책이 있다. 책세상 문고 우리시대 예순 두 번째로 나온 최정기가 쓴 <비전향 장기수-0.5평에 갇힌 한반도>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상과 양심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감옥이라는 체계를 변화시켰고, 분단 체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 나아가 레드 콤플렉스를 약화시키는 일을 했다. 장기수 문제에 대한 이론적 접근을 통해 한국 현대사를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하는 책이다

 

이들이 오랜 전부터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억압받으면서 0.5평 감옥에 갇혔지만 우리 사회가 이들을 알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쯤이다. 엄청난 형벌과 완전 분리된 독거 상태에서 수형 생활을 해왔다. 이들에게는 늘 절대적인 침묵과 인간 이하의 생활이 강요되었고. 폭력적인 억압이 끊임없이 가해졌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어떤 이들에게는 '알아서도 안 되는 비밀'이었으며,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알 수 없는 비밀'이었다고 최정기는 말한다.

 

내 기억 속에 '비전향 장기수'가 뚜렷하기 자리매김한 것은 1993년 3월 '이인모' 노인의 북한 이송을 통해서다. 장기수들이 몇 십년을 닫힌 공간에서 살았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빨갱이'로 낙인찍힌 그들에게는 인권과 존엄, 사상의 자유는 사치에 불과한 것임을 알게 되면서 감옥 살이 한 번 해보지 않았던 나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럼 비전향 장기수는 누구를 말하는가? 민가협 말을 빌면 월북 및 행방 불명자 가족 사건, 월남자 사건, 납북 귀환 어부 사건, 재일 동포 사건, 일본 관련 사건, 민주화운동 관련 사건, 월북 기도 사건, 조직 사건, 남파 공작원, 방북사건(통일 운동 포함) 따위로 감옥에 갇혔던 이들을 말한다. 물론 사람과 시대에 따라 비전향 장기수 개념은 다르다.

 

정치권력은 그들을 어떻게 통제하였을까?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데 1950년대부터 60년대는 비전향 좌익수들은 완전 격리와 절대 침묵을 강요받았고, 열악 처우와 폭력이 중요한 통제 수단이었다고 최정기는 말한다. 고립을 통한 통제로 전향을 요구한 것이다. 함께 살아가야 할 인간이 고립되었다는 것만큼 힘든 일이 어디 있겠는가.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은 어떻게 통제했을까?

 

"이 시기 수형자 통제는 비밀 경찰형 감옥 체제를 연상시킬 정도로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규율 강화, 교정 관료의 폭력과 고문, 일반 수형자들의 폭력, 일상 생활을 영위하기 힘들 정도의 수형 조건 따위, 이 과정에서 고문이나 폭행으로 사망한 사람, 그에 항의하거나 또는 그것이 두려워 자살한 사람이 10여 명이나 발생했다."(48쪽)

 

1980년대 중반 이후 조금 나아졌지만 사상과 이념의 완전한 자유는 보장받기 힘들었다. 이토록 통제 받았던 비전향 장기수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저항했다. 고립을 통하여 전향을 시도했지만 그들은 취미 생활과 소일거리, 아무것도 없는 속에서도 무엇인가 창조적인 삶을 살면서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이뿐 아니다. 아무리 고립과 통제를 하더라도, 면회와 의무(병원)과를 이용, 운동과 목욕 시간을 이용하여 그들은 다른 이들과 생각을 나누었고, 공동 투쟁을 하였다. 어떤 때는 단식을 통해서 투쟁했다.

 

0.5평 공간에 갇혔던 그들은 몸만 갇힌 것이 아니라 생각까지 통제받았다. 자기가 추구하는 사상과 이념이 집권세력과 맞지 않는다고 국가권력은 철저히 그들을 고립시켰다. 그것도 수십년 동안.  우리는 그런 시대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었느냐고 반문하겠지만 과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사상과 자유를 마음대로 말할 수 있는가.

 

이번 재보선 선거가 진행될 때 한나라당은 '좌파척결'을 입에 올렸다. 서울시청 광장에서 집회하는 보수단체 단골 문구는 '빨갱이'이다. 오늘(3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소환되자 보수단체는 "친북! 종북! 좌파! 노무현 구속!"외쳤다.

 

0.5평은 공간은 사라졌을지라도 아직 우리 사회는 사상과 이념을 통제하고 증오하는 일을 거두지 않았다. 이것을 해결하지 않는 한 우리 사회의 참된 진보는 없다.

덧붙이는 글 | <비전향 장기수-0.5평에 갇힌 한반도> 최정기 지음 ㅣ 책세상 펴냄 ㅣ 4,900원


비전향 장기수 - 0.5평에 갇힌 한반도

최정기 지음, 책세상(2002)


태그:#비전향 장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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