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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7일(월) 오전 11시, 사천YWCA 강당에는 조금은 이국적인 여성들과 어린 꼬마들, 그리고 40~60대로 보이는 주부들이 다소 점잖게 앉았다.

 

이날은 사천으로 시집 온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중국, 일본 등 여성결혼이민자와 자원봉사자들이 딸과 친정엄마로 1대 1 결연을 맺는 날. 그래서 조금은 긴장하는 듯 보였다.

 

곧 새로운 엄마와 딸로서 상대에게 사랑과 정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는 시간을 가지니 분위기는 더욱 엄숙해졌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흥을 돋우기 위해 등장한 레크리에이션 강사가 이끄는 대로 따라하다 보니 서먹함은 어느새 사라졌다. 엄마와 딸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웃집 새댁이나 아주머니쯤으로 보기에 넉넉해 보인다.

 

결혼이민자와 사천의 여성자원봉사자를 딸과 친정엄마 관계로 맺어주는 이 행사는 지난해 이어 두 번째다. 이를 위해 3월부터 신청을 받았고, 모두 50쌍이 맺어졌다. 이날 참석한 이는 모두 37쌍. 나머지는 시간이 여의치 않았다고 한다.

 

사천YWCA 김분자 사무총장에게서 이 행사의 뜻을 들었다. "결혼이민자들이 친정에 한 번 가기가 힘들고 우리나라 문화를 낯설어 하는 이도 많은데, 자원봉사자들이 친정엄마가 되어 정착을 돕고 외로움도 달래주기 위한 행사다. 경남도에서 지원하는 사업이다."

 

그러나 오랜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엄마와 딸로 거듭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모양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사람끼리도 쉽지 않은 일이 언어와 문화가 다른 사람끼리 어찌 쉬울 리 있겠는가.

 

지난해에도 50쌍이 태어났지만 연말까지 관계가 이어진 쌍은 절반 정도. 그 가운데서도 정말 두텁게 정이 쌓인 친정엄마와 딸은 몇 안 된단다. 일종의 시행착오를 겪은 셈이다.

 

그래서 1년간 '친정엄마 맺어주기'를 진행할 신선자 간사의 고민이 깊다. "결혼이주여성들과 얘기를 해보면 자기들이 알고 싶거나 기대하는 것이 다른 데도 친정엄마가 일방적으로 이해시키려 한다는 불만이 많았다. 무조건 '퍼 주는 식'도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올해는 친정엄마들에게 다문화 이해 교육을 더 시킬 계획이다."

 

신 간사의 얘길 들으니 사천YWCA 구정화 대표가 인사말을 통해 친정엄마들에게 한 말이 더욱 와 닿는다. "일방적으로 도와준다는 생각은 마세요. 재능이 많은 사람들이니 우리에게도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러니 가르치겠다는 생각보다는 이해하겠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친정엄마와 딸로 새롭게 태어난다는 게 쉽지 않음이 묻어난다. 그렇다고 꼭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지난해 친정엄마와 딸로 맺어진 최명순씨와 필리핀에서 시집 온 이유페미아씨의 얘기를 듣노라면 진짜 가족을 보는 듯하다.

 

"진짜 엄마는 필리핀에 있어서 볼 수 없고 전화도 마음껏 할 수 없지만 친정엄마는 마음껏 부를 수 있고 만날 수 있어서 좋아요. 우리 우영이, 혜영이 두 딸에게도 이모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오빠들이 생겨서 너무 좋아요. 남편이 엄마 집에 가서 돼지우리 청소도 해주고 동생 생일에 가서 용돈도 주었대요. 하지만 엄마 심장이 안 좋아서 늘 걱정이 돼요. 엄마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세요, 사랑합니다."

 

보육교사 양성과정을 배우느라 행사장에 참석하지 못한 딸 이유페미아씨가 쓴 글의 일부다. 친정엄마 최명순씨도 청중들 앞에서 딸 자랑, 사위 자랑에 침이 말랐다.

 

"처음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했지만 일단 친해지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자주 전화를 했어요. 우리는 사소한 일로도 자주 이야기를 나눴어요.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있으면 아이들 선물도 주고 온 가족이 식사도 하곤 해요. 한 번은 농사지었다고 쌀을 찧어서 갖고 왔는데, 정말 가슴이 찡했어요. 저희 집은 돼지를 키우는데, 하루는 사위가 아침 일찍 찾아와 돈사 일을 도와주었지요. 말려도 막무가내로 그 냄새나는 일을 해주다니, 페미아를 만나 받은 게 더 많습니다. 딸 하나만 두어 늘 외로웠는데, 페미아를 만나 딸이 하나 더 생겼고, 사위와 외손녀들도 얻어 행복합니다."

 

이쯤 되면 진짜 딸과 친정엄마 사이 못지않다. 올해도 시시때때로 만나 정을 나누는 사랑방모임과 한국문화체험활동 그리고 바깥나들이 등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이어진다. 또한 친정엄마와 딸 관계 뿐 아니라 언니와 동생 사이로 맺어지는 쌍도 있다. 나이 차이가 많지 않은 경우다.

 

'2009 새로운 가족 탄생'을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사천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뉴스사천, #사천YWCA, #결혼이주여성, #친정엄마,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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