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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는 여러 직함이 따른다. 허나 '엄홍길 대장'이 역시 제일 잘 어울린다
 그에게는 여러 직함이 따른다. 허나 '엄홍길 대장'이 역시 제일 잘 어울린다
ⓒ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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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엄홍길'이란 이름이 세간에 다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히말라야 눈보라 속에서 악전고투하는 모습에 이어지는 "집 나가면 개고생"이란 말, 그렇게 잘 어울릴 수 없다. 허나 이보다 엄 대장에게는 훨씬 더 잘 어울리는 '새로운 도전' 소식은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그는 작년 말 사진집 <불멸의 도전>을 출간하면서 '기후변화 현장 탐험가'로서의 청사진을 밝혔다. 앞으로는 환경파괴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보다 널리 알리겠다는 각오를 천명한 것이다. 마침, 그에게 딱 맞는 일이다 싶었다. 그야말로 '개고생'을 해가면서 기후변화의 '최전방'을 목격했을 '엄홍길' 아닌가.

더구나 그는 도봉산 중턱에서 자라났다. 학교에 다니며 숱하게 산길을 오갔을 것은 물론이다. 그 후에도 몇십 년 동안 틈날 때마다 도봉산과 북한산을 오른다고 했다. 서울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남다르게 느꼈을 듯했다. 엄홍길 휴먼재단 4월 정기산행에 동행했던 것도 그래서였다.

실제로는 어떤가 "집 나가면 행복하죠, 행복해"

엄홍길 대장
 엄홍길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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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토요일 아침 9시 30분, 불광역 부근은 산악인들로 장사진이었다.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얼굴이 그렇게 밝을 수 없었다. 엄홍길 휴먼재단 회원들은 더욱 활기차 보였다. 엄홍길(49) 대장과 함께 하는 산행이니 더욱 그런가 보다.

헌데 '주인공'이 잘 보이지 않는다. "어이쿠! 진짜 오랜만이네. 얼굴 잊어버리겠어"란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한 사람, 한 사람,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인사하는 엄 대장, 실제 보니 체구가 생각보다 작았다. '작은 탱크'란 별명이 그제야 실감났다. 일단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광고 이야기부터 꺼내봤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는 뜻이 담겨 있는 광고 콘셉트가 나와 맞는다는 생각에 출연을 결정했어요. 개고생이란 말, 사실 비속어도 아니잖아요. 엄연히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말이고, 등반을 희화화했다는 말도 있던데, 절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도전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전달할 수 있었다고 봐요."

'개고생'이란 말,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어려운 일이나 고비가 닥쳐 톡톡히 겪는 고생'을 뜻한다. 실제로 '집 나가면 개고생'이란 말에 동의하느냐고 물어봤다. "집 나가면 행복하죠, 집 나가면 행복해"라며 시원하게 웃어버린다. 역시 '엄홍길'답다. 그만큼 불안해졌다. 나는 그 말에 99% 동의하는데, 애당초 '산'과는 담을 쌓은 놈인데.

"어후, 어후(한숨 소리, 아파트 공사 현장을 가리키며) 저거 봐요, 저거. 산을 건물로 빙 둘러쌌잖아요. 누구나 볼 수 있고, 누구나 올 수 있어야 하는 산인데, 저게 뭐냐고. 완전히 흉물 아니에요. 산이 훤히 드러나게끔 건물을 지어야지, 저런 공사들이 허가 났다는 자체가 참 답답한 겁니다. 산이, 숲들이 잘려나가고 있어요."

그랬다. 북한산 족두리봉으로 향하는 길, '아파트 담'이 올라가고 있었다. 그는 연신 "어후, 어후" 한숨을 내뱉었다. 그럴 만도 했다. 그는 지금까지 산을 떠난 적이 없다. 어렸을 때는 도봉산 골짜기에서 자랐고, 지금은 삼각산 자락 수유동에 살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히말라야 곳곳을 누비고 다닌 엄 대장이다.

"지금도 틈만 나면 산에 올라요. 가능하면 오전 스케쥴을 비워 놓는 것도 그래서죠. 산에 올라 땀 쫙 빼고, 오후에 일을 보는 편이죠. 어렸을 때야, 세 살에 산 중턱으로 이사 왔으니, 학교 다니려면 오르락내리락, 비가 오나 눈이 오나, 365일 산길을 끼고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47년을 산에서 산 셈이죠."

"해발 3500미터 마을에서 반 팔 차림이라니"

엄홍길 대장이 '서울 하늘'을 이야기하고 있다
 엄홍길 대장이 '서울 하늘'을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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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만 해도 서울 하늘이 참 맑았을 것 같습니다.
"(다시) 어후… 맑았죠, 참 새파랬지. 진짜 맑았지. 산 자체가 놀이터였어요. 계절 따라 열매도 따 먹고, 가재나 물고기도 잡아먹고, 반딧불도 있었고, 또 그때만 해도 눈이 많이 내렸거든요. 여기저기 산토끼 발자국이 굉장히 많았지. 아무래도 도심지에서 자란 사람과는 다를 수밖에 없죠."

- 줄곧 서울 기후변화를 목격한 셈이네요.
"그렇죠. 지금이야 그럴 때가 과연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잖아요. 시내에 일 보러 나갈 때 확실히 달라요. 공기 레벨이라고 할까? 어느 지점에 딱 이르면, 코에 받는 느낌 자체가 달라져요. 어렸을 때부터 '오지'에 살아 그런지, 공기에 굉장히 민감하거든요. 오후만 되면 멍해지고, 띵해지고. 그런 차이가 있어요."

그 차이를 '내 식대로' 느끼고 있다. 호흡이 가쁘다. 하악, 하악, '개고생 광고'에서 흘러나오던 그 거친 숨소리다. 오르막에 접어든 지 얼마나 됐다고, 참, 내가 듣기에도 창피할 정도다. 반면 엄 대장은 여유가 넘친다. 물론 보조를 맞춰주느라 그랬겠지만, 그렇게 빠른 걸음 같지는 않은데, 도대체 쉼이 없다. 가끔 멈출 때는 '동료'들 등산 장비를 꼼꼼하게 챙겨줄 때 정도다.

지금은 한 어린이 '알파인 스틱(등산용 지팡이)' 길이를 조절해 주고 있다. "올라갈 때는 짧게, 내려올 때는 길게, 알았지?"란 엄 대장의 친절한 설명이 뒤따른다. "인사 드려야지"란 아빠 말에 아이 입에서 "고맙습니다. 대장님"이란 말이 튀어나온다. 이 짬을 이용해 잠시 다리 쉼을 하고 있는데, '야속한 엄 대장님', 곧바로 채근이다. "갑시다, 힘내고", 아… 오늘 인터뷰 진짜 숨 가쁘다.

"내가 85년부터 히말라야 갔잖아요. 거기도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는데요. 최근 들어 놀란 게, 해발 3500미터 마을이면, 1월 말이 가장 추울 때입니다. 이번에 거기 갔다 왔는데, 아침 기온이 영상이야, 너무너무 더운 겁니다. 반 팔 입고 다녔다니까요. 눈이 녹아서 바위가 다 드러나 있는 거에요. 해발 3500미터에서… 이게 말이 되냐구요."

그래도 자신감, 긍정의 힘 "남산 밤하늘 별 보고 울컥"

산행을 함께 한 어린이에게 포도를 쥐어주는 엄홍길 대장
 산행을 함께 한 어린이에게 포도를 쥐어주는 엄홍길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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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엄 대장은 대중교통을 고집한다고 했다.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 다소 불편한 점이 있어도 그렇게 한다"고 했다. '기후변화자'가 아닌 '기후보호자', '기후변화 현장 탐험가'로 살아가겠다는 생각 역시 어느 날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닌 셈이다.

"지구, 우리가 잠시 살았다 가는 곳이잖아요. 후손들에게 빌린 거잖아요. 원 상태 그대로 보존하고 물려주는 것이 우리 의무입니다. 그런데 저렇게 마구잡이로 개발하고, 환경파괴하고, 그러니 산불이 자꾸 나고, 생태계 교란이 일어나고, 계절 감각까지 없어지는 겁니다. 이건, 봄이구나 하면 벌써 여름이야. 어후."

허나 엄 대장은 한숨만 뱉지는 않았다. "최근 들어 서울 공기가 많이 맑아졌음을 느낀다"며 "다양한 노력이 있었던 결과"라고 했다. 경제 위기와 관련하여 한 마디를 부탁했더니 "좋아질 것"이라고 "그런 힘이 우리 국민들에게 있다"고도 했다.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감과 긍정의 힘이 없었다면, 히말라야 16좌 완등이란 결과도 없었을 테니까.

"일전에 남산에 갔는데 세상에, 별이 보이더란 말입니다. 당연한 일인데도, 참 감회가 새롭더군요. 울컥하더라구요. 우리 하늘도 그래도 많이 깨끗해졌어요. 지금이 전환점인데요. 기후변화 문제, 정부 노력만으로는 안 됩니다."

-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교육이 중요합니다. 초등학교부터 환경교육을 중점적으로 해야 돼요. 그렇게 의식 전환이 이뤄져야, 작은 실천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겠어요?"

- 기후변화 문제야말로, 이렇게 놔두면 '개고생'이겠군요.
"죽을 고생이죠. 기후변화는 인류의 재앙입니다. 그것도 우리 자신을 서서히 옥죄어 오는 재앙 말입니다. 여기저기서 이야기하니까 그저 '그런가보다'하고 남의 일처럼 여길 때가 아닙니다. 기후변화의 '최일선'에 있다 보니, 그 심각성을 생생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더 많은 관심과 실천이 필요해요. 반짝 관심은 안 됩니다. '죽을 고생'합니다."

엄홍길 휴먼재단 첫 프로젝트 '팡보체 학교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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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30일 엄홍길 대장이 히말라야로 다시 떠난다. 다음 달 5일, 어린이날, 팡보체 마을에 경사가 있기 때문이다. 해발 3950미터 오지 마을에서 초등학교 기공식이 열린다. 지난해 5월 설립된 엄홍길 휴먼재단의 첫 프로젝트 사업이다. 동시에 오래전부터 엄 대장이 스스로에게 했던 '약속'이기도 하다.

김정배 엄홍길 휴먼재단 사무과장은 "팡보체 마을은 1986년 엄 대장과 히말라야 등정에 나섰다가 추락사한 셰르파가 살던 마을"이라며 "그때 유가족을 만나면서 마을 어린이들이 초등학교도 없어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는 현실을 알고 엄 대장이 학교를 짓겠다고 다짐했었다"고 설명했다.

김 과장 역시 로체 원정대에 참여했던 산악인. 그는 "엄홍길 휴먼재단은 엄 대장이 히말라야 16좌 등정을 마친 작년 5월 '자연사랑, 인간사랑, 꿈과 희망을 가진 불굴의 도전정신'을 기본 취지로 설립된 공익단체"라며 "대표적인 사업은 휴먼사업과 기후보호 사업"이라고 소개했다.

먼저 휴먼사업은 다양하다. 작년 11월에는 장애청소년 34명과 함께 도봉산 산행에 나섰고, 등반 도중 숨진 산악인 가족을 위한 지원사업도 빼놓을 수 없다. 더불어 네팔 등 빈곤국의 교육과 의료 환경 개선을 통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갖고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 등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작년에 엄홍길 대장이 환경재단 기후변화센터가 주관한 '기후변화 리더십 과정'에 참여한 것에서 알 수 있듯, 기후보호도 역점 사업이다. 말 그대로 "기후변화의 대칭점"에서 환경파괴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구체적으로, 세상에 더욱 널리 알리는 것이다.

엄홍길 휴먼재단은 장기적으로는 재단을 UN 산하 단체로 등재해 한국 산악인의 봉사정신과 도전정신, 모험정신을 세계에 널리 알릴 계획도 갖고 있다. 또한 세계 산악단체·세계 자선단체와의 연계를 통해 재단의 가치를 국제사회에 확산시킨다는 구상이다.


태그:#엄홍길, #휴먼재단, #히말라야, #기후변화, #도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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