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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23일에는, 아침부터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설렜다. 제8기 시민기자 기초강좌에 참석할 것이냐,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함평 나비축제에 참석하고 14년 만에 고향 하의도를 방문한다는데, 거기를 따라갈 것이냐를 놓고 고민하다 하의도를 택하고부터 뛰기 시작한 가슴이었다.

 

 

비록 40%를 밑도는 지지율로 임기를 마감했지만, 국민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쳤고, 남북 대화의 물꼬를 트고,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전직 대통령과 짧은 시간이나마 함께 한다는 것은 영광이자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아침밥으로 누룽지를 끓여 먹은 아내가 승용차로 기차역까지 태워다 주고 익산-함평 KTX 고속 열차표까지 끊어주어 고마웠다. 표를 보니까 5호 차여서 '출발하기 전부터 행운이 따라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대통령 일행은 6호 차에 타고 있기 때문이었다.

 

경비는 얼마나 들지 다녀와야 알겠지만, 숙박료와 식대, 여객선 요금 등은 생활비에서 지출하고, 왕복 기차표는 아내가 사주기로 해서 부담이 덜했고, 대명동에 있던 기차역이 금강하구둑 부근으로 이전하고 처음 이용하는 날이어서 감회가 새로웠다.  

 

용산역을 출발, 홍성, 대천, 군산, 익산, 서대전을 거치는 무궁화호를 타고 군산선을 달리는 기분은 남달랐다. 군산-개정-대야-임피-오산-익산까지가 군산선이었는데, 대야역에서만 잠깐 쉬고 모두 통과했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도 1시간 후쯤 만날 대통령 내외와, 훗날 시민기자 기초강좌에도 보내주겠다는 아내의 얼굴이 그려졌다 지워지곤 했다.

 

# 익산역에서

 

오전 10시 13분에 군산에서 출발한 기차는 거북이 운행을 하면서 10시 40분쯤 익산에 도착했다. KTX 고속열차 출발시각이 11시 5분이어서 기다리는 동안 흥분을 가라앉히려고 가져간 책을 꺼내 읽었지만,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마음도 정리되지 않았다.  

 

 

대통령 일행이 탄 열차는 지루하게 기다릴 것도 없이 정시에 도착했다. 심호흡을 두어 차례 하고는 기차에 올라 자리를 확인하고, 윤 비서관에게 전화했더니 반가워하며 대통령 내외가 있는 5호 차로 오라고 했다.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하려 애쓰며 5호 차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김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객실 중간쯤에 다정하게 앉아 있었다. 2005년 어버이날과 신년단배식 때 지근에서 몇 차례 뵌 적은 있지만, 떨리는 가슴을 억제할 수는 없었다.

 

주치의와 박지원 의원, 김옥두 전 의원을 비롯한 비서관들이 수행하고 있었는데, 객실 분위기는 차분했으나 한가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하의도까지 동행하게 해준 윤 비서관은 중국인민외교학회의 초청으로 5월 초 중국을 방문, 베이징대학에서 강연하게 될 김 전 대통령의 신변문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윤 비서관 옆에 앉아 숨을 돌리고, 얼굴을 아는 사람들과 인사를 하면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명함도 건넸다. 윤 비서관에게 "대통령님 관련 기사는 쟁쟁한 기자들이 많아 쓸 엄두도 내지 못하고, 저는 주로 사는 이야기를 씁니다. 요즘엔 기억력도 전만 못한 것 같아 고민이에요"라고 했더니 "기사를 읽어봤는데 작은 것 하나도 지난 일들을 기억하고 계시던데요"라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말은 안 하지만 오마이뉴스에 들어와 기사를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윤 비서관이 "대통령님께 인사는 하셨습니까?"하고 묻기에 지나칠 때 고개만 숙였다고 했더니 웃으며 함께 가자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 비서관은 대통령 내외에게 다가가 후광 카페 운영자이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는 아무개라고 자세히 소개했고, 김 전 대통령의 육성 메시지를 소형 녹음기에 담을 수 있었다.

 

"여러분께서 내가 어디를 갈 때나, 또 평소에도 나를 잊지 않고 항상 성원해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나는 여러분의 그러한 성원으로 큰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회원 여러분, 모두가 건강하시고 더욱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1분도 안 되는 짧은 멘트였지만, 카페 회원들에게 대통령의 육성을 전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보람이 있었고, 가장 중요한 목적이 순조롭게 이루어져 마음도 홀가분했다. 대통령의 육성메시지와 1박2일 일정을 사진과 글로 남기려고 무리를 해가며 따라나섰기 때문이었다. 

 

박지원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손전화로 들어온 뉴스를 설명해주었다. 박 의원은 최시중 방통위원장과 있었던 일을 소개하면서 "삼풍백화점 무너진 것은 박정희 책임, 성수대교 가라앉은 것은 전두환 책임, 외환위기의 65%는 김대중 책임이라고 우기는 YS는 무척 편하게 사는 양반"이라며, 대변인 시절 "경복궁이 무너지면 대원군 책임이냐?"라고 따졌던 일화를 얘기해서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 함평에서

 

갑자기 '정들자 이별'이라는 글귀가 떠올랐다. 긴장이 조금씩 풀리고 웃기도 하면서 대화에 익숙해질 만하니까, 곧 함평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들렸기 때문이었다. 빨리 달리는 기차가 원망스러웠는데, 익산에서 함평까지는 1시간 5분가량 소요되었다.

 

 

함평 역에는 박준영 전남 도지사를 비롯한 함평 지역 기관장들과 군민들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도착과 동시에 기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똑딱이 카메라에 어설픈 촬영기술이라서 열 번을 찍어도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고르기가 어려워 항상 남보다 서둘러야 했기 때문이었다.

 

'목포의 눈물'과 '고향의 봄'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함평역 앞에서 간단한 환영식이 열렸다. 민주당 당원으로 보이는 주민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님을 사랑합니다"라고 적힌 펼침막을 들고 환영했고, 건물 여기저기에 "김대중 전 대통령님의 '녹색의 땅 전남' 고향방문을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은 "저는 일생동안 여러분들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면서 "여러분의 성원덕택으로 국민과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약 7분에 걸쳐 함평 군민들에게 인사말을 전했다.

 

환영식이 끝나고 골프장이 있는 식당으로 이동해 짱뚱어탕으로 점심을 먹었는데, 매콤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일품이었다. 끼니는 내 돈으로 사먹고 따라다니는 것만도 감사하다고 생각했는데 공짜여서 더욱 맛있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점심을 마친 대통령 일행은 제11회 함평 나비축제가 열리는 함평엑스포 공원으로 이동해서 이석형 함평군수의 안내로 친환경농업전시관, 다육식물관, 국제 곤충관 등을 둘러보고 나비 곤충 생태관 앞 화단에 21년생 팽나무를 식수하는 기념식을 가졌다.

 

 

'나비=희망'이라는 주제로 24일부터 5월 10일까지 열리는 함평 나비대축제는 화려한 나비와 신비한 곤충, 아름다운 꽃들이 어우러져 감동의 생태현장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어 곤충에 관심이 많은 청소년과 어린이들이 많이 찾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개막 하루를 앞두고 생태현장과 전시관을 돌아본 김 전 대통령은 어린이들과 함께 나비 날리기도 하면서 구경나온 주민들과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대통령은 "축제장이 매우 웅장하면서도 아기자기하고 다양한 꽃들이 아름답다"면서 "이것이 진정한 지방자치의 성과일 것이다."라며 축제 관계자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목포에서

 

나비 축제장을 둘러본 김 전 대통령은 오후 3시쯤 정치적 고향인 목포로 향했다. 필자는 기자들이 타는 버스에 동승해서 갔는데 도로에 무안이라고 쓰인 안내판을 보니까, 39년 전 총선을 앞두고 지원유세를 다니던 도중 목포-무안 도로에서 일어났던 의문의 교통사고가 떠올라 마음이 무겁고 심란해지기도 했다.

 

함평에서 목포 시내로 진입하기까지는 30분 남짓 걸렸다. 6시에 만찬이 열리는 신안 비치호텔로 가는 거리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 목포방문 환영"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여기저기에 걸려 있어 김 전 대통령 고향방문을 환영하는 목포시민의 열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하게 했다.

 

 

대통령 일행은 오후 4시 조금 못되어 호텔에 도착했다. 주변 경관이 좋았는데 5시가 넘으니까 만찬에 참석할 환영객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김홍업 전 의원 얼굴도 보였는데, 만찬이 시작되는 6시가 가까워지자 호텔 로비는 환영객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만찬에 앞서 목포 시립국악원 꿈나무들의 가야금 병창과 판소리, 목포대 음악과 김철웅 교수의 '청산에 살리라.'와 가수 해바라기의 '사랑으로' 이중창, 그리고 시립합창단은 '그리운 금강산', '만남', '고향의 봄'을 불러 분위기를 무르익게 했다. 이어 '신라의 달밤'을 '목포의 달밤'으로 개사해서 불러 박수를 받았고, 민족의 한이 서린 '목포의 눈물'을 환영객들과 합창하는 것으로 축하공연 마지막을 장식했다.

 

공연이 끝나고 정종득 목포시장의 환영사와 김 전 대통령의 고향방문에 대한 인사가 있었는데, 유신과 5공 시절에 온갖 고초를 당했던 일들을 회고하는 대목에서는 환호성과 함께 우렁찬 박수가 터지기도 했다.  

 

만찬은 8시 조금 넘어 끝났고, 숙소로 이동하는 대통령 일행을 따라갔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여객선 터미널 부근에서 잠을 자는 게 돈도 적게 들고 몸도 편할 것 같았다. 해서 윤 비서관에게 24일 아침 8시 50분까지 여객선터미널로 나가겠다고 말하고, 시내버스를 타고 가서 6년 전에 투숙했던 여관을 찾아 들어갔다.

 

"아주머니, 하룻밤 자는 디 얼만가요?"

"맻 분인디요?"

"저 혼자 잘 겁니다."

"혼자라, 그라믄 3만5천언만 주씨요. 방이랑은 깨끗항께." 

"하이고, 너무 비싸네요. 6년 전에 하의도 갈 때도 이 여관에서 자고 갔는디, 좋아서 또 왔으니까 3만 원만 합시다."

"6년 전 하의도 갈 때도 왔었다고라. 음~ 그르믄 그렇게 하씨요." 

"그럼 내일 아침 7시 30분에 깨워주셔야 합니다. 그러고 컴퓨터 인터넷도 할 수 있지요?"

"컴퓨터 있는 방은 4만언씩 받는디라, 그냥 3만 5천언만 주씨요."

"아이참 아주머니도, 저 밑에서 여인숙 간판을 보고도 그냥 왔으니까, 컴퓨터 있는 방에서 3만 원에 하룻밤 묶읍시다."

"아 그릉께 4만언씩 받는디 5천언 깎아준다고 안 허요."

"......" 

 

아주머니의 상냥한 말씨와 친절에 어쩔 수 없이 숙박료를 치르고 키를 받아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컴퓨터가 워낙 오래되어 화면이 느리게 뜨고, 음성저장은커녕 사진 한 장 편하게 올릴 수 없었다. 나갈까도 생각해보았으나, 내일을 위해서는 일찍 자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샤워를 하고 카메라 배터리를 충전기에 꽂아 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계속)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http://www.shinmoongo.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김대중, #하의도농민운동, #함평나비, #목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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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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